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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4. 2022

[애니 감상문] 데스노트

신념을 가진 천재는 얼마나 위협적인가

혼재된 선악의 개념, 흑백으로 양분되지 않는 캐릭터성의 대립. 두뇌싸움, 상반되는 이미지들의 대립이 훌륭했던 애니.



라이벌 구도는 명확하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경계가 모호하고 쉬이 정답을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굳이 따지자면 서로에게 우정까지 느끼고 있었던 라이토와 L의 사이를 보면 라이벌 구도도 명확하게 분리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 성경의 천사와 악마로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통념상, 백이 선의와 정의의 편(천사)이고 흑이 악행을 저지르고 나쁜 일을 도모한다(악마).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라이토는 경찰청장의 아들이자,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인물이며, 사신 류크와 함께 범죄자를 죽이는 키라이기도 하다. 이런 무차별적인 살인을 막고자 하는 L(류자키)은 범죄자의 목숨을 내세워 키라를 꼬여내며, 이후에도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키라를 대표하는 것은 검은색, 사신이며 L을 대표하는 것은 흰 바탕의 L 이미지와 흰 티셔츠이다. 여기서부터 둘을 양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며, 그것을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 악인을 처벌하는 키라는 정의의 편인가, 아니면 악인인가. 키라를 잡아들이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내세우는 L은 명백히 선으로 볼 수 있는가. 이는 천사(백)와 악마(흑)가 거의 모든 인류에게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인 클리셰 뒤틀기로 볼 수 있겠다. 비슷한 사례로는 악인을 처벌하는 다크 나이트와 이를 잡아들이려 하는 하비 덴트(white knight였어야 하는 존재) / 잘못된 제도를 부수고 브리타니아를 꺾고자 하는 를르슈(코드 기어스)의 흑의 기사단과 이를 반대하고 내부에서 바꾸어나가고자 하는 스자쿠의 흰 란슬롯 / 집행관으로서 악을 처벌하는, 검은 착장의 코가미 신야(Psycho-pass)와 시빌라 시스템 자체의 모순을 인지하고 세상을 본인의 방식으로 바꾸고자 했던 흰 착장의 마키시마 쇼고 등이 있겠다.



결국 돌고 돌아 시스템 내부의 인간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 귀결된다. 시스템 내의 플레이어인 라이토와 류자키는 각자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본인의 정의를 규정하였다. 하지만 그 정의가 올바른 것인지 본인들이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본인도 그 시스템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의 행동을 감독하고 규정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본인의 행동은 본인이 합리화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시스템 내에 속한 인물들 중 가장 뛰어났을 뿐이지, 그 시스템을 탈출할 수는 없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세상의 정점을 향해 다가갈 수는 있으나 그 장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무지몽매한 것보다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최악의 사례를 보여준 작품이다. 그릇된 신념을 가진 자가 능력을 얻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 되는지에 대해 라이토와 L은 본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라이토는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며, 키라를 처단하고자 하는 L도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목적 달성을 위해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인들을 합리화하며 둘은 각자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까지 머리를 굴릴 수 없거나, 혹여 훌륭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본인을 합리화하는 데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 둘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너무나 똑똑했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본인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영리했기 때문에 그들 안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그릇된 신념을 더 견고하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체 2부 구성 중 1부의 라이토-L 구도가 너무 치밀하게 잘 짜여 있었기 때문에, 2부의 라이토-니아/멜로의 구도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두 명으로 구성하여 차별점을 둔 것이 다행이었다. 흑-백의 구도를 한 번 더 활용해서는 1부의 전개를 뛰어넘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우회하는 것이 차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개 방식이나 문제 해결 방식이 1부에 비해 조악한 것은 사실이다. 결말의 경우에도 공격→  반사 → 무지개 반사.. 느낌으로 좀 억지스러운 내용이긴 해서 대서사시의 결말로는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연출이나 결말 방향 자체는 적절하나, 문제 해결 방식이 조금은 빈약했던 것 같다. 이와는 별개로 합성 요소로 쓰이게 된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사용한 자는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못하고 인간 악기가 되어버렸다는 밈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이런 전반적인 구도와 별개로, 두뇌싸움 구성도 굉장히 훌륭했고 연출도 뛰어났던 작품이었다. 물론 다소 과한 연출도 꽤나 있지만, 대표적으로 레이 펜버, L의 죽음 등 각 인물들의 죽음에 대한 연출이 훌륭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볼 수 있었던 라이토의 진정한 내면이 그들의 죽음을 더 비참하게 했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죽은 라이토의 아버지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어버렸다. 의미 있는 죽음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기는 하나, 이와 같은 전개는 죽음을 아무 의미도 없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의미를 훼손시켰다.



테니스를 치면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외적으로는 굉장히 격정적이나, 내적으로는 마치 체스 대국을 하는 것처럼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 대비가 의도 전달에 효과적이었다. 오히려 바둑이나 체스 같은 정적인 경쟁을 하면서 이와 같이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했다면, 내용 상으로는 좀 더 다양하게 풀어나갈 방향이 많았겠으나(포진이나 전략을 통해 그들의 의중을 보여준다던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둘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이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클리셰 비틀기, 선악의 모호함, 사회 체계(시스템)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잘 구성한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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