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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5. 2022

[영화 감상문]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레시피도 잘 짜고 손기술도 훌륭한 요리사(크리스토퍼 놀란)의 회심의 작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치밀한 설계와 섬세한 고증, 꼼꼼한 미장센 배치, 생각을 시각화하여 구현해내는 것, 시의적절한 음악 활용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분류하여 정리하자면

1) 의도를 가지고 구성된 스토리의 복잡성

2) 복잡하거나, 실재하지 않거나, 실재하더라도 상상만 해본 상황이라도 관객의 눈앞에 구현해내는 능력

위의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의도한, 만들어진 혼란을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메멘토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한 타임라인 배치, 프레스티지의 마술 트릭 숨기기, 인셉션에서의 현실과 꿈, 꿈과 꿈 사이의 혼란 등 감독은 의도적 왜곡이나 정보의 통제를 통해 관객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나가도록 유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민할 거리가 많은 영화가 좋다.


단순히 스토리 구성만 완벽해서는 관객들의 호응을 잘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감독의 역량이 드러나는 두 번째 능력은 시각화이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실존하지 않거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장면들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연출도 탁월하며,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의 병원 폭파씬이나 비행기 납치, 덩케르크에서의 전쟁 고증 등 현실적인 장면에 대한 장면들도 훌륭하다. 이를 위해 각본가인 동생이 물리학을 공부하거나, 실제 회전하는 세트장을 제작하거나, 비행기를 실제로 추락시키고 병원을 폭파시키는 등 실제가 아닌 영화를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정도가 남다르다고 생각된다.


테넷은 감독이 가진 위의 두 강점을 가감 없이 잘 표현해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엔트로피 역전이라는 설명하기도 어려운 소재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낸 훌륭한 영화였다.


작품의 구성만 놓고 보자면, 메멘토의 서사 구조를 실제로 구현해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멘토의 전체 구성을 보면, 일직선의 타임라인을 U자로 접어 1~101의 이야기를 1, 101, 2, 100, 3, 99,... 49, 51, 50의 순서로 전체 타임라인의 중간지점에서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테넷의 경우에도 순서가 혼재되어 있기는 하나, 오페라 공연일을 시작으로 하여 캣이 총에 맞는 인버전 시점을 기준으로 다시 오페라 공연 시점으로 이어져나간다. 전체 타임라인을 그려보면 테넷도 U자 형태의 구성으로 볼 수 있다.


덧.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


영화 초회차 관람 때 인버전의 개념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순서가 잘 이해가 안 됐었다. 입구와 출구가 모두 보이는 회전문의 존재가 시각정보와 시간을 동시에 보여주어 혼란을 가중시켰던 것 같다. 인버전하면 시간이 역행하기 때문에, 회전문을 들어갈 때 반대쪽의 내가 안전하게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굉장히 복잡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VOD를 구매하여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3시에 내가 회전문을 통과한다면, 2시 59분 59초에 나는 문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고, 반대쪽 문의 시간을 역행하는 나는 3시에서 2시 59분 59초를 향해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2시 59분 59초의 순행하는 내 입장에서는 반대쪽에 내가 나오는 것이 맞는 상황인 것이다.


감독이 선호하는 미장센이 이제는 어느 정도 보인다. 기차와 비행기가 감독의 작품들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인셉션 -꿈속에서 도로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기차, 테넷 -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사로잡힌 기찻길. 다크 나이트 라이즈 - 첫 장면에서의 비행기 하이잭, 테넷 - 공항에서의 비행기 추돌 등이 떠오른다.


회전문을 기점으로 하여,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양쪽이 구분된다. 이때 순행하는 원래 세상이 빨간색이고, 역행하는 인버전 된 세상이 파란색이다. 빨간약은 진실의 세상, 파란 약은 거짓의 세상으로 가게 된다고 얘기했던 영화 매트릭스의 직접적 오마주라고 생각한다. 성공한 영화의 오마주는 강력해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는 대명사의 역할을 해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빌런인 베인과 그를 지휘하던 진 보스 탈리야의 관계와 테넷에서의 산제이 씽-프리야의 관계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작중 주인공 호칭이 Protagonist로만 언급되는데, 이렇게나 직유적 표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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