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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12. 2022

[애니 감상문] 카우보이 비밥

애니와 재즈를 동시에 입덕 하게 될 당신에게.

작화와 연출, 배경음악 및 캐릭터성 모두 너무 과하지 않고 잘 어우러졌다. 옴니버스 방식의 전개로 이렇게 이야기를 잘 뽑아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사연 없는 무덤 없는 것처럼, 등장인물 하나하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 등장하는 강아지 아인 마저도 사연이 있으니.. 기본적인 틀은 옴니버스이지만 시간 순서 별로 동료의 합류 과정이나 과거 스토리, 이별 장면 등을 순차적으로 배치하여 하나의 스토리로 잘 이어냈다.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일대기적인 구성은 아니며, 주요 사건 및 인물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인생의 핵심적인 부분만 보여준 느낌이다. 덕분에 보여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상상의 여지가 많았던 것 같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능력도 모두 출중하다. 다만 모두 정석적인 완성형 캐릭터는 아니며, 자유롭게 떠도는 부량자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현상금 사냥꾼을 카우보이로 지칭하는데, 이런 분위기와도 잘 맞는다. 인물들의 성격은 배경 음악 테마인 재즈와도 잘 어울린다. 스파이크의 전투 방식도 물 흐르듯 상대를 흘려보내는데, 이런 전체적인 음악 - 성격 - 행동들이 하나로 맞춰져 있으면서도 견고하지는 않은, 구성이 탄탄하면서도 자유로운 재즈와 느낌이 닮아 있다.

비밥호와 제트가 이야기에 있어 집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비밥호에 모여들었다가 한 명씩 떠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의미로도, 정신적인 의미로도 비밥호는 집을 나타낸다.

각자의 우주선이 개성을 잘 나타낸다. 제트의 우주선에는 갈고리로 상대를 잡을 수 있는 작살 같은 닻이 존재한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블랙독에 가장 직관적인 무기 형태이다. 스파이크의 소드피쉬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날렵하고 자유롭게 비행한다. 한 에피소드에서 무조건 수동 비행으로 모든 것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등장하는데, 앞유리에 눈금선을 긋고 수동으로 비행할 때의 기체 묘사는 정말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페이의 우주선은 나머지 두 명의 비행선보다는 작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용이한 형태로 되어있다. 또한 무기 부분도 종종 바뀐다. (총을 장착하거나 집게를 장착하거나) 집게를 장착했을 때의 우주선이 잠입하거나 날렵하게 물건을 빼돌리는 페이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 페이는 예전 시대에서 냉동인간 처리되어 먼 미래에 깨어났다는 설정인데, 이 설정을 생각해보면 우주여행용 캡슐처럼 고안된 우주선 이미지와도 어느 정도 잘 맞는 것 같다.

겉으로는 서로에게 굉장히 쿨한 척 하지만 막상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서로를 걱정하는, 겉으로는 약하지만 속으로는 진한 유대를 참 잘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행하는, 그 결론이 좋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하는 곧은 의지도 보여준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라는 스파이크의 대사가 이 문장 단독으로만 보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배경과 맥락을 보면 이 이야기의 핵심을 관통한다고 볼 수 있다. 비셔스와 줄리아가 있던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물 흐르듯 몸을 내던지며 살아온 스파이크가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도중, 다시금 과거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결국 다시 헤어 나오지 못한 과거로 향하며 스파이크는 저렇게 말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과거 이후로 자신이 살아있긴 한 건지 본인조차 알 수 없는 흐릿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인공안구를 이식받은 이후,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다른 한쪽 눈으로는 현재를 본다는 언급은 여전히 본인의 반절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 대사와 마지막 웃으며 쓰러지는 장면을 보면, 비셔스를 죽이고 삶을 마감하는 그때에야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 살아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인물들도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이 많다. 과거에 살다가 냉동되어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먼 미래에 깨어난 페이는 본인의 존재 자체가 과거에 얽매여 있다. 제트의 경우에도, 움직이지 않는 시계를 계속 간직하며 생각해온 아리사, (당시에는 몰랐지만) 본인의 동료에게 배신당해 한쪽 팔을 잃었던 것 등 과거에 놓고 온 일들이 많다.

 

그나마 과거를 떨쳐냈다고 할 수 있을만한 인물은 제트라고 할 수 있겠다. 페이의 경우에는 결국 자신의 과거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갈등하며 결국 비밥호를 떠나버렸으니 말이다. 스파이크의 경우에도 결국에는 떠나버렸으니, 남은 건 비밥호와 제트뿐이다.


'과거를 이겨내지 못하면 나아갈 수 없다'라는 부정적인 문장과 '과거를 이겨내고 오늘을 살아가자'는 응원의 문장은 같은 말을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똑같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결말이 달라진다는,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를 카우보이 비밥이라는 애니는 26화, 장장 9시간가량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과거를 이겨내는 것이 힘들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한다.


스파이크의 움직임이나 작중 등장하는 대사, 소품, 상대 배역이 이소룡의 오마주라고 한다. 생각보다 세심하게 인물 구성이나 미장센이 구성되었구나 싶다.


각 회차 제목이 노래 제목에서 한 두 단어씩 바꾼 경우가 많은데, 이 제목을 보고 노래를 역으로 찾아서 들어본 것도 많다. 그리고 애니 ost 자체도 좋아서 상당히 많이 들었다. (칸노 요코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노래 자체는 상당히 잘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는 쉬이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그 시대의 감성이 있었던 것 같다.


위상차 게이트, 각종 우주선 등 SF적 요소가 많지만, 정작 게이트를 통과할 때 비용은 종이 영수증으로 나온다던가, 주유소에서 우주선에 급유하는 장면이라던가, 종종 등장하는 점을 보는 원시부족 할아버지 등 최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와 전통의 느낌이 작품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카우보이라는 명칭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동네, 행성 별 기술과 빈부의 격차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 번씩 벽면 광고에 한국어가 쓰여있는 것도 재미 요소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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