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E7EN(세븐), 데이비드 핀처, 1995
원죄에 대한 공포를 설파하고자 스스로 죄악이 된 뒤틀린 신념의 사내
0. 들어가기에 앞서
음울한 분위기의 범죄극을 좋아하는지라 몰입해서 봤던 작품이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더 게임>, <조디악>도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관람했었다. 작품의 주연인 '브래드 피트(데이비드 밀스 역)'와 '모건 프리먼(윌리엄 서머셋 역)'의 연기도 탄탄하며 작품이 주는 인상도 강렬했다. 아래에 이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1. 구성 및 전개
영화의 구성 자체는 명료하다. 서머셋 형사의 은퇴 전 7일이 월요일부터 순차적으로 제시되며, 그 기간 동안 7대 죄악에 모티프를 둔 7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작품의 주된 화자인 서머셋 형사와 밀스 형사는 범인의 단서를 쫓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내막과 진실이 작품의 주된 갈등요소이다.
범인(凡人)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뒤틀린 신념에 사로잡힌 이의 범죄를 잘 풀어냈으며, 억지스러운 전개도 적은 편이었다. 노년의 관록 있는 인물과 혈기왕성하고 저돌적인 두 주연의 조합도 안정적이었다. 다뤄야 할 단서와 상황이 많았음에도 127분이라는 러닝타임 내에 좋은 호흡으로 구성해 냈다고도 생각한다. 작품의 중반부에 범인의 정체가 밝혀짐에도 서사의 긴장감을 끝까지 잘 유지하였고, 그렇게 착실히 고조된 감정은 마지막 순간(7번째 살인) 폭발한다. 엔딩의 비중이 큰 작품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순간의 폭발적인 감정을 위해 앞단에서 착실히 전개와 갈등을 쌓아 올렸기에 종국이 더 빛날 수 있었다.
2. 소재 측면
7대 죄악이라는 소재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상황을 효율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었다. 동일한 상황에서 사건의 동기가 7대 죄악이 아니고 새로이 창작해 낸 내용이었다면 관객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종교를 통해 익히 알려진 7대 죄악을 소재로 사용하면서 시체의 모습이나 살인의 동기를 비교적 이견의 여지없이 관객에게 인지시킬 수 있었다. 창작을 통한 참신함도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필요하지만, 독자의 배경 지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내는 것 또한 창작자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지능범이 스스로 경찰서에 잡혀 들어온 채로 범죄를 이어나가는 플롯은 제한되고 통제된 상황 하에서도 범죄를 이어나가는 범인의 능력을 보여주기에 좋은 방식으로, 이 방식은 이후에도 종종 다른 작품들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2009년 개봉한 <Law Abiding Citizen(모범 시민)>에는 복수를 위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하고 제 발로 잡혀 들어와 감옥 안에서 경찰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등장하며,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도 조커는 제 발로 잡혀 들어오다시피 한 후에 부하의 몸에 심어놓았던 폭탄을 이용해 탈출하고 범죄를 이어나간다. 1991년 개봉한 <양들의 침묵>에서도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감옥에 갇힌 채로 존재감을 한껏 피력하는 '렉터 박사'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 (영화는 아니나, 애니메이션 <PSYCHO-PASS>에서도 감옥에 갇힌 범죄자에게 협조를 구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3. 결말에 대하여
작품의 종국에는 결국 범인의 의도대로 분노를 이겨내지 못한 밀스가 범인을 사살하며 7개의 죄악에 대한 살인이자 세상을 향한 범인의 설교가 완결되는데, 이를 통해 7대 죄악에 대한 두려움이 강조되었고 범인의 치밀함과 집요함 또한 배가될 수 있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는 밀스가 인간의 원죄를 떨쳐내고 극복해 내는 것이 적절했겠으나, 결국 원죄에 굴복하게 된 밀스의 모습을 통해 범인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원죄의 무서움에 대해 설파할 수 있었다.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만이 성공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두려워하며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 또한 인류가 한 발짝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나, 이것이 허구의 세상을 창조하여 제시할 수 있는 창작물이 가진 매력이자 일종의 소통 방식일 것이다.
4. 마무리하며
다소 불쾌한 장면들이 많아 쉽사리 추천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나, 탄탄한 구성과 강렬한 메시지를 가진 것만은 분명한 작품이다. 이런 장면에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은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