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월이 되면 그녀는
불완전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쌓아 올린다
0. 들어가기에 앞서
<4월이 되면 그녀는>이라는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야마다 토모카즈'감독의 작품이다. 108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은 차분하고 착실하게 서로의 감정을 쌓아 올린다. 이에 대한 감상을 아래에 남긴다.
1. 주요 인물과 서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화자는 '후지시로 슌(사토 타케루)'이라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자신의 환자로 병원을 찾았던 수의사 '사카모토 야요이(나가사와 마사미)'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대학 시절 사랑을 나누었던 '이요다 하루(모리 나나)'에게서 몇 통의 편지와 이국의 풍경이 담긴 사진이 도착한다. 그리고 얼마 후인 야요이의 생일이었던 4월 1일 아침, 그녀는 흔적도 없이 후지시로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후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후지시로가 야요이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그려내며, 이 과정에서 크게 관련이 없어 보였던 하루를 포함한 세 명의 여정이 한 점을 향해 수렴하며 작품은 끝을 맺는다.
2. 전개 방식과 활용된 소재
작품은 시계열을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되거나 시간의 흐름을 강조하기보다는 각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단편적 시점으로 담아내는데, 이는 작품의 주된 소재인 사진의 특성과 닮아있다. 후지시로의 여정은 연속성 있는 기록물보다는 강렬했던 순간들을 포착해 낸 기억의 조각들 같은 인상을 전달해 준다. 108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구성 방식 덕분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은 연속적이지만, 이에 대한 기억은 분절된 파편에 가깝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후지시로의 기억을 관객이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각 장면의 채도가 사랑과 감정의 농도를 대변해주기도 하는데, 이 또한 사진의 특성과 함께 연상된다. 서먹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후지시로와 야요이, 야요이를 찾지 못하고 낙담한 후지시로가 근무하는 병원 등을 보여주는 장면은 주로 단조로운 색과 낮은 채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야요이와의 과거 회상에서 등장하는 벚꽃, 하루와의 대학 생활, 작품의 마지막 순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 후지시로와 야요이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다채롭고 높은 채도의 색들로 이루어져 있다.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 요소를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대학 시절 후지시로와 하루는 볼리비아와 프라하, 아이슬란드에 가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나려 하나, 하루는 자신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를 뿌리치지 못하고(하루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결국 둘은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병을 얻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하루는 후지시로를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을 찾고자 홀로 여행길에 오른다. 그렇게 다다른 곳에서 그녀가 본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제야 그녀는 중요한 것이 장소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는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수려한 풍경은 되레 감정의 낙차를 더 크게 만들어주는 장치로서 기능하였다. 이국의 절경 속 외딴섬 같은 하루의 모습은 대학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후지시로와 함께 본 해돋이 장면과 대조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역설적인 장치와 설정이 작품 내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초상화를 찍지 않던 후지시로는 사람을 그 누구보다 깊게 바라보아야만 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야요이는 행복하고 사랑을 느끼는 순간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린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하루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밝게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후지시로의 미소를 담아낸 것 또한 하루였다. 이런 면면이 이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가공된 허황된 세상이 아니라 조금은 불완전한 우리들의 초상을 담아낸 세상이었음을 은연중에 보여주기도 한다.
3. 불안이라는 감정
작품의 큰 줄기는 후지시로와 야요이, 하루 사이에 얽힌 사랑이지만 이보다 한 단계 아래에서 작품을 밀고 나가는 감정은 불안이다. 이는 서로에 대한 불안이기도, 서로 사이에 놓인 사랑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서로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게을렀던' 둘 사이에서 야요이가 느꼈던 불안감이 작품의 시작점이었고, 이 감정을 고조시켰던 것이 하루가 보낸 편지였을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행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슬퍼하던 야요이, 하루와의 진심 어린 사랑을 이뤄내지 몰하고 사람과 더욱 거리를 두던 후지시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약간은 소원한 사랑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안일하고 미온한 사랑이 누군가의 진솔한 사랑(후지시로와 하루 사이의 마음)을 앗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야요이는 일종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해소하고자 야요이는 하루를 찾아가 만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을 것이고, 그곳에서 그녀는 결국 병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하루를 마주하게 되었다. 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존재를 직감한 야요이와 하루는 서로의 진심을 나눈다. 야요이는 하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하루는 야요이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행복을 사과하는 야요이에게 되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었다.
4. 마무리하며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울림이 상대적으로 적다. 본 작품은 사랑의 이면에 위치한 불안이라는 감정을 담담하면서도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며, 이윽고 그 위에 더욱더 공고해진 사랑을 꽃피워낸다. 감정 묘사도 인상 깊고 매 장면을 공들여 촬영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영상미도 수려한 편이어서 한 번쯤은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