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의 이야기
<아이리시맨>은 2019년에 개봉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작품으로, 미제 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 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등 당대를 호령했던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며, 위 세 명의 인물은 디에이징이라는 기술을 통해 작중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직접 연기하기도 했다. 209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 있게 관객의 시선을 이끌어갔던 작품이었고, 아래에 여러 감상을 남긴다.
(작품의 세부 전개와 등장인물이 상당히 방대하기에, 아래에 핵심인물과 서사 중심으로만 설명하였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해설자 역할을 하는 것은 '프랭크 시런'이라는 인물로, 노년의 프랭크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 형태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 그는 '러셀 버팔리노'라는 인물과 지인의 결혼식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 시점의 프랭크는 러셀과 처음 만나게 된 순간을 회상하며 또다시 액자 형태로 과거의 모습이 보인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세 개의 시간선이 액자 형태로 병치되어 있다.
1) 프랭크와 러셀의 만남
2) 프랭크와 러셀이 결혼식으로 향하는 순간
3) 노년 시기 프랭크의 회상
3번 시점에서 2번 시점의 과거를 회상하고, 2번 시점에서 1번 시점의 과거를 회상하며, 1번 시점에서 미래를 향해 이어지는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각 액자를 빠져나와 종국에 3번 시점으로 연결된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한 서사가 프랭크와 러셀, 그리고 '지미 호파'라는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화물기사로서 고기를 운송하던 프랭크는 우연한 계기로 마피아인 러셀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러셀이 맡기는 여러 의뢰를 수행하며 뒷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던 중 프랭크는 러셀의 소개로 트럭 노동조합 위원장이던 지미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그와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된다. 가족들도 지미와 친하게 지낼 만큼 프랭크는 그와 막역한 사이가 되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의 선을 넘어버린 지미를 러셀은 처리해야만 했고, 프랭크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러셀을 죽이게 된다. 이 시점이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 시간선이다. 지인의 결혼식으로 향하던 프랭크와 러셀이었지만, 이 여정은 사실 러셀이 지미를 처리하고자 계획했던 일이었다. 프랭크가 지미를 처리한 후에 러셀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며 작품은 마지막 시점으로 향하고, 종국에 홀로 남은 프랭크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서사와 구조, 시각적 연출 등 깊이감을 연출하기 위한 감독의 다양한 노력을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 노력들이 결국 관객이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은연중에 작용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중의 액자 형태로 한 인물의 수십 년간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레 액자를 타고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단순하게 직선적인 위인전 같은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시계열상 정돈된 느낌을 주었겠으나, 209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공간적 깊이 또한 이런 작품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롱테이크로 양로원의 복도에서 전진하며 깊이 이동하는데, 이렇게 한 공간에서 깊이 파고드는 시각적 연출과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가 일맥상통하였다. Establishing shot을 잘 활용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에는 열린 문틈 사이로 프랭크의 모습이 보이면서 마무리되는데, 문틀이라는 직사각의 앵글에 담긴 그의 모습이 액자 구조로 구성된 작품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선 관점에서도 회고를 시작한 시점의 프랭크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과거를 거쳐 다시 현재의 시점에 도달하여 마무리되는 구조를 재차 강조해주기도 하였다.
시대극은 아니지만 워낙 긴 시간을 그려내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시대상이 묘사되었다. 결혼식 장면, 세례, 식사 장면, 장례, 카지노 및 호텔 등 다양한 면면이 표현되었고, 몇몇 장면은 <대부>가 연상되기도 했다. 오마주라기보다는 비슷한 시대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프랭크의 긴 고해성사이자 남겨진 자의 회고록 같은 이야기였다. 긴 이야기의 마지막은 홀로 남아 관을 고르고 이름이 새겨질 자리를 바라보는 프랭크의 모습이었다. 그토록 친밀하던 러셀과 동료들도 살해당하거나 죽었고, 가족들에게선 공포의 대상으로서 이미 멀어진 후였다. 해피엔딩은 없었고, 그렇기에 이야기의 완결이 깔끔했다.
새롭고 참신하다기보다는 진한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물론 담긴 이야기가 아름답고 현학적이지는 않지만, 세상의 어두운 일면을 날것 그대로 잘 보여준다. 긴 러닝타임이 관람에 망설임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나, 한 사람의 생애를 지긋이 톺아보는 여정이 흥미롭기에 이런 장르나 소재에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은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