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짐이 되곤 한다
<자몽 살구 클럽>은 가수 '한로로'가 펴낸 소설의 제목이자 3번째 EP 앨범의 제목이다. 이전부터 한로로의 노래와 가사들을 좋아했기에 새 앨범에 대한 소설을 낸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바로 책을 구매했었다. 그러고 나서 앨범도 구매했지만, 좀체 이런저런 핑계로 읽어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아래에 소설에 대한 감상을 짤막하게 남겨본다.
본 작품은 모종의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네 명의 여중생(소하, 태수, 유민, 보현)들이 '자몽 살구 클럽'이라는 모임에서 각자에게 자살 전 20일의 유예를 주고 그 안에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을 순차적으로 풀어낸다. '나는 살구 싶나'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뒤이어 '이보현은 살구 싶다', '하태수는 살구 싶다', '나유민은 살구 싶다', '김소하는 살구 싶다' 순으로 마지막을 향해 달려 나간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슬픔을 손에 쥐고 있다. 우선 보현은 폐암 투병 중인 어머니,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동생 보훈이와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지만, 경제적인 사정과 투병으로 인한 빚 때문에 끝내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클럽원들은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어있는 바다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바다와 그녀들을 캠코더에 담았고, 끝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클럽원들과 함께 감상을 나눈다. 그렇게 보현은 생을 이어나가게 된다.
태수는 학생회장이자 이 모임을 창설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겉보기에는 쾌활하고 밝은 인물이었고, 클럽원들의 고민을 세심하게 들어주면서 그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남들에게 잘 털어놓지 못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는 학교에 찾아온 태수의 어머니가 그녀를 교무실에서 때리는 장면을 통해 클럽원들에게 표출된다.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슬픔과 눈물은 마음 안쪽으로 흘러 사람을 곪게 한다. 끝내 태수는 20일의 유예를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그런 태수와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였던 유민은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상심했으며 공허함을 느꼈다. 음악실의 보관실에서 상기된 얼굴과 밀린 교복 단추 차림으로 소하에게 발견되었던 태수와 유민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관계였을 것이다. 소심하고 내향적이던 유민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주었던 태수의 부재는 그녀에게 있어 너무도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다시금 살아가게 해 준 존재 또한 태수였다. 클럽원들은 보현이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해 주었던 작품에서 등장했던 토마토를 각자 한 그루씩 학교 옥상에서 키우고 있었는데, 태수의 토마토를 화분에 옮기던 유민은 태수가 흙 밑에 묻어놓았던 편지를 발견한다.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며 남긴 마음을 읽고 난 유민은 이윽고 다시금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그녀는 노래를 만들어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훗날 태수와의 재회를 꿈꾸며 유민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렇게 이제는 소하의 때가 되었다. 소하는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화자이기에 그녀 자신의 가정사와 힘듦은 작품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알코올 중독이고 여자를 밝히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어머니, 그런 아버지에게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비하를 당하던 그녀는 줄곧 세상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며 빨리 어른이 되어 아버지에게서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아버지가 대충 던져준 신발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그녀의 발을 옥죄어온다. 그녀 또한 자신의 고통과 속내를 쉽사리 남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몽 살구 클럽원들에게만큼은 진실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클럽원들은 이내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 헤맨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갔던 목욕탕에서 친절하게 어머니와 소하를 맞이해 주었던 한 여인을 목욕탕에서 다시 만난 소하와 아이들은 작년까지도 소하의 어머니가 목욕탕에 방문했었다는 사실과 함께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어머니와의 재회를 꿈꾸던 소하는 클럽원들과 함께 한달음에 어머니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한 남성과 아이와 함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하는 이내 그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 그 무엇도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음을 느끼며 본가로 돌아간다. 그런데 돌아간 집에서 그녀는 이전에 태수의 납골당에 가져가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에게 술을 훔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구타당한다. 피를 흘리고 부은 눈으로 누워 절망하던 소하는 이 모든 상황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식칼을 들고 와서 거실에 자고 있는 아버지를 찌른다. 날이 밝아오고, 소하는 자몽 살구 클럽의 모임 장소인 음악실로 뛰어가며 자몽 살구 클럽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짧지만 날카로운 이야기였다. 괜스레 손을 꽉 쥐게 되는 애잔함과 먹먹함이 퍼져 나왔다. 가장 아름답고 빛나야 할 학창 시절의 아이들이 겪고 있던 슬픔은 충분히 이 세상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었고, 그렇기에 그 고통이 더 피부에 와닿았다. 책의 첫 장에 쓰인 아래 문장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소하, 태수, 유민, 보현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자몽 살구 클럽의 네 인물들은 모임 해산 시 '살구 싶다'를 세 번 외친 후에 헤어진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들에게 있어 숨 쉬듯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 세상은 그들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가혹했다. 굳이 입 밖으로 살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행위에도 이 명시적 외침이 마음 한 구석에라도 닿기를 바라던 이들의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끝내 한 사람(태수)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었고, 다른 한 사람(소하)은 살아갈 수 없을 길을 살고자 선택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나 복잡한 일이다. 작품을 보며 생존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