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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Jun 30. 2022

엔지니어와 고객의 구심점 잡기

최신의 전기차에서 흘러나오는 70년대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생각들

얼마 전에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창원으로 내려온 때가 있었다. 터미널 택시 승강장에서 순서대로 차례를 기다리다가 타게 된 택시는 아이오닉 5 차량이었다.

요즘은 택시 기사도 많이 줄었다면서, 사람들이 뛰어와서 타지 않으면 기다리는 택시가 더는 없어서 택시를 못 탈 텐데 왜 이렇게 여유롭게 걸어오는지 모르겠다는 기사님의 말에 반사적으로 공감하며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때였다. 전기차 실내가 엄청나게 조용하구나 싶은 생각을 하던 찰나에 차에서 익숙하지만 단번에 생각나지 않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억이 날듯 말 듯 머리를 간질이던 그 노래 결국엔 스마트폰 검색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 평화-한동안 뜸했었지 (1978)

전기차 특유의 미래 표방적인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20세기의 울림에 새벽잠이 달아났다. 당대 최신의 기술력이 탑재된 차량에서 흘러나오게 되는 것 결국 FM 라디오의 1978년 노래인 것에서 이질감이 들었지 않을지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놀랄 상황은 아니었다. 취향대로 노래를 듣는 것이 그렇게 새로운 자극은 아니지만, 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왠지 모르게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기에 이에 대해 기록을 남겨보기로 한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었음에 대해 소비자에게 기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수치화되거나 정량화되는 항목이라면 더더욱 간단할 것이다.


이전 세대 대비 XX% 처리 속도가 빨라진 CPU
최고 속도 XXXkm, 최대 XXX마력 차량
피지 제거 효능 XX%의 화장품
유해물질 XX% 제거 가능한 기술 등...


하지만 이런 스펙 향상을 바탕으로 한 메시지는 그 효험의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기술의 발전은 대체적으로는 지수함수보다는 로그함수의 형태를 띤다고 생각한다. 초반엔 그 성장이 돋보이나, 갈수록 기술력은 포화된다. 종국에는 수치화는 가능하나 고객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는 시점까지 도달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HW와 SW가 모두 미흡했던 초기에는, 다음 세대의 제품이 괄목상대라고 할 만큼 빠르고 편리해진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스펙이 계속 올라가고 있지만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그 폭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중급 기를 구매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스펙 경쟁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Second key는 부차적 요소들이다. 사용 편리성, 연결성, 디자인, 감성 등 Add Value가 주무대로 탈바꿈하게 되며, 이는 레드오션이 된 성능 시장을 떠나서 아직 상대적 블루오션인 부가가치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연결된다.


엔지니어에게 엔지니어적 사고와 관점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쉽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장의 성능 수치 개선을 눈앞에 두고 편리한 손잡이, 고객이 선호하는 액세서리 등에 리소스가 집중되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B2C의 종착지는 Customer이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회귀식을 만들어 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변수가 말도 못 하게 복잡하고 시점에 따라 계속 바뀌는 골치 썩는 회귀식이다.


소비자 입장이라는 것은 결국엔 구체적인 사용 씬이라고 생각해본다. 소음이 몇 dB이고, 어떤 브랜드의 스피커가 위치별로 몇 개가 들어있고, 블루투스 버전 X를 지원한다는 등의 사양 위주 메시지는 이제는 이전처럼 효과적이지는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결국엔 So what?이다.

 '그래서 그게 날 어떻게 좋게 해 주는데?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건데?'에 대해 제조사는 이전처럼 수동적인 스펙 제공이 아닌 능동적 씬 제공을 해야만 한다.

회사 업무와 직장 상사의 압박에 지친 하루를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아니나 다를까 도로는 만원. 고단한 하루였지만 적어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금 만큼은 나만의 시간이다. 음악 리스트를 열어 예전에 즐겨 들었던 '한동안 뜸했었지'를 튼다. 조용한 적막이 감돌던 전기차 내부에 옛 추억이 담긴 노래가 흘러나오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정숙성, 스피커 성능 등을 단편적으로 어필하기보다는 위처럼 실제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간접경험의 형태로 제시해주는 것이 요즘의 시점에는 더 적합한 것 같으며, 실제로도 요즘은 이와 같은 요청을 받게 된다.




고객 입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어찌 보면 메시지 전달 방향이 반대인 이와 같은 역순의 추정이 쉽지만은 않다. 무조건 세 보이는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서기보다는, 적에 맞는 무기를 고르고 골라 참전해야만 겨우 타격을 입힐까 말까 한 세상이지 싶다. 그렇다고 마냥 피드백에만 의존하다 보면 good for good이라고 좋아 보이는 것들만 잔뜩 붙여놓은 근본 없는 키메라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요 근래 회사 업무를 보면서 이와 같은 고민도 많았고 지시도 많았기에, 그날 택시에서 들었던 노래가 뇌리에 더 깊숙이 박혔던 것 같다. 어렵긴 하지만 좀 더 고객의 시선과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돌고 돌아 든 생각은 결국 이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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