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보면서 녹록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자기반성과 점검
소설은 보기보다 생각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인칭은 어떻게 정할지, 인물들의 생각은 어느 수준까지 보여주고 숨길지, 현재 시제로 서술할지, 회고의 형태로 서술할지, 인물의 생각과 대화 중에서 어떤 쪽 위주로 글을 풀어나갈지, 인물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 서술 방식이나 사용하는 단어가 그 인물에 적합한지, 글의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고 강조할지, 나의 입장이나 경험이 소설 속 인물에 너무 지나치게 투영되지는 않았는지, 기존 소설이나 실화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아서 표절이 될 여지는 없는지, 글의 호흡은 너무 빠르거나 늘어지지는 않는지, 문체가 상황 및 인물 설명에 적절한지 등...
제목을 짓는 것이 꽤나 어렵다. 내용을 내포하면서도 지나치게 직관적이지는 않아서 상상의 여지를 남겨놓을 수 있는 제목이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위에서 설명한 사례와 맞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고전부 시리즈 중에서 '빙과'라는 소설의 제목이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생략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 제목에 관련된 사건까지는 읽어보시면 후회하시지 않을 것 같다.)
제목과 비슷하게,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성격과 내용에 맞는 어감과 느낌을 살려내기가 어렵다. 여기에 의미까지 담아내려고 하면 한층 더 머리가 아플 것 같다.
고슴도치처럼 자기 글에 관대 해지는 감이 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외부의 피드백을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고여있는 저수지 물이 될 것 같다.
겪어본 일과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한 글의 깊이 차이가 크다. 글을 쓸 때 취재를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지 새삼 느꼈다.
단어나 표현도 개인적으로 선호하거나 자주 쓰는 것만 반복해서 쓰게 된다. 게임도 손에 익거나 DPS가 높은 기술을 자주 쓰게 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이 정해져 있고, 그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게 대중에게 있어서도 효과적이라면 그 작가의 특색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으나, 설령 그렇더라도 오래되면 클리셰화 되어 질릴 것이며 실제적으로 이런 효과적인 표현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문을 병기하게 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글을 쓴 사람 입장에서 보면, 혹시나 동음이의어로 이해하여 내용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소재와 단어들을 잘 엮어내는 것이 정말 기술인 것 같다. 패치워크처럼 단순히 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데이션처럼 스르륵 주제를 옮겨내는 작업이 고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문장이, 이 단어가 쓰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본말이 전도된 형태이기는 하나, 역량이 좋아서 미리 훌륭한 재료들을 만들어놓고 적재적소에 넣을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아직 이런 역량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