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그게 다가 아니었어.
“당신은 어떻게 호흡하고 있나요?”
들숨이 존재하지 않는 ‘음-파’ 호흡법에 의문을 느낀 주말 자유수영 이후 출근한 월요일. 일하는 내내 손은 키보드 위에 있지만 눈은 시계만 바라보며 퇴근 후 수영 강습만을 기다렸다. 이상했던 그 숨쉬기 방식에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문제에 처한 적은 없었는지, 혹은 나만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는 것 이상의 다른 보다 나은 방식이 있는 것일지 궁금했다. 그럴 만했던 게 수영 첫 강습 날 여러 가지 이유로 신경 쓰이는 시선에 정신이 없었고, 물속에 들어간 내 몸이 긴장한 나머지 강사님의 설명을 일부 누락하고 들었을 수 도 있으니까 말이다.
일찌감치 수영장에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형 호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음-파’로 문제없이 숨을 쉴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초급하반 동기 A씨 : “음- 파! 음으로 뱉다가 파 하고 나머지를 뱉는 것이라고 배웠지요. 그때 우리 같이 배운 그대로 저도 똑같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뭔가 숨차고 그래서 눈치껏 그냥 숨 쉬는 중이에요. 고개를 돌렸을 때 코도 나와 있을 때는 짧게 코로 들이마시고, 입만 나와 있으면 입으로 ‘훕’ 하고 들이마셔요. 강사님한테 딱히 정정받은 적은 없어서 그냥 되는대로 하고 있어요. 지금 한창 배영 배우고 있는데 천장 보고 누워서 가니까 숨 쉬긴 좋더라고요.”
초급상반 에이스 B씨 : “아 호흡이요? ‘파!’ 할 때 저는 숨을 내쉬는 게 아니고 들이마셔요. 저는 다른 수영장에서 자유형을 배우고 여기로 옮겨 다니는 건데, 이전에 다니던 곳에서는 ‘음-파’에서 ‘파’는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거라고 알려줬어요. ‘음-.’ 하면서 물속에서 숨을 내뱉고 고개 나오자마자 ‘파!’하고 들이마시는 거죠. ‘음- 파-.’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한 박자 씩이요.”
초급하반 후배 C씨 : “이제 막 호흡하는 걸 배우는 중이긴 한데 강사님한테 저 매번 혼나요. 물속에서 ‘음-.’ 하고 내뱉고 그대로 입을 벌린 채 물 밖으로 나와서 입에 물이 다 들어가고 있거든요. 잔뜩 들이마셔서 콜록거리고 있을 때면 제발 입 좀 천천히 그리고 작게 벌리라고 지적받아요.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몸이 자꾸 말을 안 듣네요 하하. 수영시작한 지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셨는지... 오늘도 아마 여기서 제가 물을 제일 많이 먹고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급하반 동기 언니 D씨 : “아니 도대체 ‘파-.’ 까지는 어떻게 가는 거야? 나는 물속에서 숨을 다 내쉬어 버려서 그런지 정작 물 밖에 나오는 타이밍에 ‘파.’ 할 때 남은 숨이 없어. 그때 그냥 들이마셔야 되는 건가. 내가 박자를 잘못 아는 걸까? 그래서 더 숨이 많이 찬가? 이상하네.”
나름 숨 쉬고 살아보겠다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묻고 있었던 그때, 모여서 작당모의를 하는 줄 알았는지 운동은 안 하고 뭐 하냐는 표정으로 L과장이 상급반 로프 아래로 잠영해 초급반으로 넘어왔다.
상급상반 L과장 : “다들 모여서 무슨 심각한 대화 중 인가했더니 호흡 얘기였네. 이게 하다 보면 다 될 건데 ‘음-파.’ 날숨&날숨 은 맞고 끝에 ‘흡’ 하고 짧게 들이마셔야 숨 쉴 수 있어요. 여태 그럼 숨을 들이쉬지도 못했다는 건데 그럼 힘들어서 퍼지지. 내가 시범 보일 테니 잘 봐요. 이렇게 하는 건데 보이려나 모르겠네.”
상급반 고수님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초급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급스럽고 세련된 동작의 그의 영법이 물살을 가르자 초급반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누구 하나 모이라고 외친 것이 아니었지만, 수영 실력을 상승시킬 비법 한 톨이라도 얻어 보려는 초급 동지들의 열정 어린 눈빛이 담긴 행동이었다.
그 순간 상급반의 한 분도 이 흥미로워 보이는 상황에 끌린 듯 레인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상급반에서 ‘대장님’이라 불리는 중년 남자분이었는데, 수십 년간 갈고닦은 영법과 야생의 물개 같은 스피드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분이셨다. 대장님은 L과장의 자유형을 보며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큰소리로 칭찬함과 동시에 조용히 L과장에게만 들리도록 어떤 동작을 코칭하셨다. 그러고 나서 초급회원들 쪽으로 몸을 돌려서는 바로 내가 궁금했던 부분을 설명해 주셨다.
대장님 : “‘음-파.’에 너무 메이지 말고 끝에 입으로 ‘헙’ 하면서 숨을 들이마시도록 해요. ‘파’는 남은 숨을 아주 짧게 뱉어 내고 바로 숨을 들이마셔 주어야 박자에 맞게 다시 입수할 수 있을 거예요. 수영하면서 호흡이라는 건 어떠한 정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 예요. 계속해서 수영을 해 나가면서 본인만의 편한 방식과 박자를 찾아가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숨이 차지 않게 중거리나 장거리를 헤엄칠 수 있어요. 지금 설명이 머리로 크게 와닿지 않을 거고, 연습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 건데 어쨌든 계속하다 보면 몸이 알아서 해줄 거예요. 살고 싶을 테니까 하하하.”
대장님의 현자 같은 말씀에 모두가 존경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운 듯 초급반 회원들은 호흡 이외에 해결되지 않았던 몇 가지 질문을 더 꺼냈고, 대장님은 초급자가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수영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병아리 같은 우리에게는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한계가 있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던 문제들도 대장님의 도움 덕분에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모두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각자의 연습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숨 쉬는 연습에 몰입했다.
‘음-파.’ 같은 호흡법은 어디에서나 흔히 배우는 기본 수영 호흡법이지만, 그 소리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기본적인 박자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음'이든 '흠'이든, '파'로 내쉬든 '퍼'로 내쉬든, 중요한 것은 물속에서부터 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들여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흡의 기본이며, 물에서 살지 않는 인간이 물속에서 편안하고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요령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필요에 따라 호흡 횟수를 자유롭게 조절할 만큼 자연스럽고 능숙해졌다.
역시 시간이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