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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Nov 01. 2024

제일 느린 수영 2

강사님이 내게 건넨 특별한 아이템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강사대기실 문이 열리며 눈부신 형광색의 손을 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는 밝은 연두색 빛의 고무 같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저건 무엇일까? 웬 말랑말랑해 보이는 그것을 들고 그 남자는 웃으며 6번 초급레인으로, 내 킥판 앞으로 다가왔다.


“이 오리발 착용하세요 회원님.”



  지난 강습시간에 강사님이 내 발사이즈를 물어보셨다. 부끄러워 아주 작게 대답했고, 수영을 하는 데 있어서 발길이가 중요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 발이 더 크면 그 큰 면적으로 물살을 더 잘 가르고 빠르게 나가는 건가? 그렇다면 내 발크기가 작진 않은데… 어디서 신발을 사게 되면 늘 가장 큰 사이즈 코너에서 고르던 나인데 어떻게 된 영문으로 내 발길이와 수영실력은 반비례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저런 궁금증이 들었는데 내 생각이 맞았나 보다. 오리발을 끼면 내 250mm발이 족히 400mm는 될 것이고, 그걸 끼라고 주신 것은 뭔가 더 잘 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리숙했던 나의 추측이 아주 과학적으로 접근한 정답이었다는 것!



  강사님이 건네주신 오리발은 어렵지 않게 신을 수 있었다. 양말을 신듯 오리발을 잡고 쑥 발을 넣으면 되었는데, 뒤꿈치 쪽은 막혀 있지만 발가락 쪽은 오픈되어 있어서 정교하게 내 발 사이즈와 딱 맞지 않더라도 답답하지 않게 늘어나면서 그럼에도 헐렁하지 않게 딱 밀착되는 느낌이 들었다.


“회원님, 이제 킥판 없이 킥으로만 나아가 보세요.”



  지난번 이 강사님으로 바뀌기 전 강사님이 똑같이 킥판 없이 앞으로 가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오리발도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내게 그것은 굉장히 어렵고 두려운 미션이었는데, 역시나 시도하자마자 앞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수직으로 가라앉으며 허우적거렸고 창피함과 물을 들이 마신 곤욕스러움에 한참 고생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이 장비의 추가만으로 그날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처음 껴보는 오리발이라 어떤 상황이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강사님은 자신이 가져온 비밀병기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 예상이 되는지 아주 자신에 찬 눈빛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응원했다.


  그래, 그때 와는 다른 강사님이니까. 나처럼 많이 느리고 뒤쳐진 회원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끌고 가려고 하시는 게 보이니까. 50분 동안 적당히 가르치며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는데 본인 장비를 들고 와서 까지 수영을 가르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강사님을 믿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내 발을 하나씩 떼어 수면 가까이 올라가도록 부력에 맡겼다. 최대한 몸을 ㅡ 자로 만들고 한 발씩 킥을 차기 시작했다. 오리발은 평소에 내가 차던 킥보다 훨씬 묵직한 킥을 만들어 냈는데, 배를 타고 노로 물을 젓는 것처럼 앞으로 나갈 힘을 보태주었다. 내가 평소에 차던 킥이 2라고 친다면 지금 오리발이 차는 킥은 7이 넘는 것 같았다.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리발이라는 건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엄청난 장비구나. 순식간에 치고 나가는 마치 로켓을 탄 것 같은 추진력에 금세 레인의 중간 너머까지 도달했다.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에 덜컥 겁이 나 그대로 발을 멈추었다. 뒤뚱거리며 가까스로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출발했던, 강사님이 서 있는 그곳은 나와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많이 오다니. 작게 말해서는 들리지도 않을 만큼의 거리. 난 큰 소리로 강사님께 소리쳤다.


“너무 무서워요 강사님!”


  강사님도 큰 소리로 내게 대답하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몇 번만 더 왔다 갔다 해보면 적응될 거예요!”


  빠른 속도에 겁을 먹고 상기된 표정인 나와 반대로 강사님은 숙제를 다 마친 아이의 얼굴처럼 신이 나 있었다.




  그날, 부스터를 달은 내 발은 열 바퀴가 넘게 레인을 돌았고 수업이 끝날 때쯤엔 빠르게 나가는 그 속도가 더는 무섭지 않았다. 마지막 두 바퀴는 조금 즐긴 것도 같다. 강사님의 그 특별한 아이템은 내게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드디어 자유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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