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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Oct 25. 2024

초급 수영반의 새로운 인물들

발 사이즈를 묻는 새로운 강사님까지






  강습을 시작한지 벌써 두달째.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물 속에서 킥판을 잡고 몇 미터 발차기로 나아갈 뿐이다. 그나마 예전에 2M 남짓 가고 쉬고 하던 것을 이제는 3~4M 정도 가고 있다는 게 큰 발전이려나. 나에게는 엄청난 이 성과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티가 안나서 ‘저 회원은 두달이라는 시간 내내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뭐 괜찮다. 느리게 갈 거라고 마음먹었으니까.


  두명의 새로운 초급반 친구가 생겼다. 이번달에 신규 회원으로 들어온 초급생이었지만 역시나 초급이 초급이 아닌 그녀들은 단숨에 킥판을 졸업하고 자유형 팔동작을 배우고 있다. 그 중 한 명은 마치 돌고래 같아서 강사님이 동작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해내며 저 멀리 빠른 속도로 나아가 물 속에서 너무도 편안한 모습으로 유영하고 있었다. 멋있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그녀들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강습 중에 레인 시작지점에서 내 차례가 되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녀들이 각자 어느 위치에 있건 나를 바라보며 


“언니~ 파이팅!”


  혹은


“언니, 할 수 있어요 좀더 가보자!”


  라고 해맑고 진심어린 표정으로 응원의 말을 건냈다. 혼자만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달과 달리 이 든든한 지원군들 덕분에 최근 수영강습이 있는 날의 내 모습이 조금 밝아졌다. 퇴근시간 전 두통약 먹고 화장실 가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친근한 얼굴들이 보고싶어 얼른 수영장에 가고 싶어 지기도 한 것이다.


  새로운 인물 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남자 회원이었고, 물 밖에서 걷고 있는 다리의 모습이 누가 봐도 불편해 보여서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눈에 띄는 뉴페이스였다.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그 한쪽 다리는 근육이 많이 손실되어 다른 쪽 다리와는 차이가 확연히 나 보일정도로 매우 얇았다. 


  늘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던 그 남자회원은 항상 일찍 수영장에 도착해서 수업시작을 알리는 호각이 들릴 때 까지 물속에 들어가 연신 걷기 연습을 했다. 다른 도구 없이 물살을 가르며 묵묵히 앞으로만 천천히 걸었고, 끝에 도달하면 다시 돌아오고 돌아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수업이 시작되면 그 남자회원도 나와 같이 킥판 수련을 하는 최상위 초급자 중 하나였기에 늘 내 뒤에 서 있곤 했다. 이 레인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그런 만년 꼴찌인 내 뒤에 한 명이 더 생긴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한번은 내가 출발하고 서고를 반복하며 레인의 중간쯤 도착했을 때, 내 뒤에 사람이 얼만큼 다가왔는지 쫄리는 마음으로 뒤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 회원의 모습이 보였다. 


  킥판을 잡고 발로 차서 나아가는데 몸에 균형이 잡히지 않아 한쪽으로 치우쳐 침몰하는 그의 모습. 다리 때문인 것 같았다. 끊임없이 균형이 틀어져 나아가지 못함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 하며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25M를 그렇게 꽉 채워 나갔다. 그리고는 쉬는 틈에도 계속해서 물속 걷기 연습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타인의 시선 따위 어느 누구의 눈치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몸에만 집중했다.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 본인을 채우기 위한 운동의 시간으로만 이 수영장에서의 한시간을 남김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왜 지난 시간 그렇게도 다른 사람들의 웃음과 L과장의 시선을 의식하며 수영을 해 왔는지 반성 어린 의문이 들었다. 이 수영장에서 보낸 두 달 동안 내가 한 일이 진정으로 나를 위해 했던 운동이 맞을까, 그저 어떠한 기준을 채우기 위한 운동량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표시 로서의 운동이었을까?


  지금 여기 한시간, 그렇게 일주일에 3일, 4주면 한 달이고, 그 두배의 시간으로 두 달이 된 지금 까지. 훨씬 더 나은 신체조건을 가진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단순히 운동량 뿐이었던 걸까. 물이 무서운 나로서는 대단한 도전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보다 공포감이 많이 줄어든 요즘이었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끝에 가서는 해내고 말겠다는 내 다짐도 물론 건설적이었지만 실제로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상세 계획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버티기 뿐이었다. 


  그렇다면 조금은 공포에 익숙해진 한결 나아진 긴장속에서 이제는 변화를 가져야 한다. 처음처럼 버티는 것 말고 더 나아질 행위, 새로운 동작의 연습 혹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등의 방법을 행해야 했다.



 

  남자 회원을 바라보다 스스로를 반성하며 다시한번 더 도약하고 말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던 찰나 멀리서 나를 부르고 있는 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정이 넘치는 모습의 새로 오신 강사님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걸어가는 중인 나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게 헤엄쳐 달려오셨다. 


“회원님, 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오랜만에 또 비밀스러운 나의 사이즈를 취조 당하는 순간이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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