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너무 무섭고, 못하는 내 모습도 창피해 죽겠네
오후 4시, 퇴근을 두 시간 앞둔 무렵
일정이 밀려 골치 아픈 업무도 하나 없었고 어떠한 발표자리도 작은 미팅조차 없는 그런 날. 모두가 오늘 같은 날은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만지며 여유롭게 6시를 맞이한 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려 들뜬 표정을 짓고 있던 금요일 오후.
단 한 사람만이 그 즐거움에 동참하지 못한 채 핏기 없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보통 같으면 두 시간 전부터 화장실에 들락거리면서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머리도 다시 만져두고 옷매무새도 정리한 후 대기하다가 6시가 땡 되자마자 PC를 오프하고 일어났을 그 여자. 그런데 오늘은 그 여섯 시를 밀어내며 퇴근을 부정 중인 여자. 그게 바로 나였다.
‘수영 가기 싫다.’
점심시간 이후부터 미세하게 느껴지던 불편한 기분이 부쩍 커져 오른쪽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젖은 수건을 쥐어짜는 것처럼 나의 핏줄을 쥐어짜는 듯싶게 눈살이 찡그려지는 두통이 찾아왔다. 30분 전에 타이레놀을 두 알 먹어서 나아지는 듯싶더니만 아까 보다 더욱 심해지는 통증에 또 두 알을 추가로 복용했다. 이제는 복부까지 싸르르 아팠다. 몇 시간 뒤면 가야 하는 수영강습 때문에 내 몸은 아직 사무실에 있는데도 그 두려운 느낌이 스멀스멀 찾아와 일찍부터 나를 긴장시켰다.
무릎 정도나 오던 그 깊이에서 음파- 음파- 호흡법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킥판을 잡고 떠서 앞으로 가보라고 할 때 까지도 괜찮았다. 의도치 않게 가라앉아 코로 물을 왈칵 들이마셨어도 0.7M 수심의 유아풀에서는 괜찮았는데, 깊은 풀에 들어가자마자 나타난 그것.
전신에 차가운 긴장감이 퍼지고 피부에 닭살이 싹 돋으면서 마치 콧구멍이 절반사이즈로 줄어든 것처럼 숨쉬기 어려워 가슴이 답답해지던 그것이 무엇일까. 처음 배우는 수영이라 모든 게 낯설었던 그날 만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깊은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이제야 자기소개를 마친 공포감이었을까?
또다시 물에 들어갈 생각에 이 모든 증상이 휘몰아치는 것이 결국 물에 대한 공포증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난 복통을 이기지 못하고 설사배를 부여잡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사무용 의자에 앉은 것보다 변기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은 오후를 보내며 이렇게까지 수영을 다니는 게 맞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다른 어떤 운동 혹은 행위를 한다고 했을 때 이 정도로 긴장하고 두려워한 적은 없었는데, 수영을 이제 막 시작하는 첫 단계부터 부작용(?) 같은 이 증상들을 앓고 있는 지금 이게 과연 맞는 선택인 건지. 몸이 강하게 그건 안된다고 나에게 맞지 않은 운동이라고 저항 중인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내가 그 애처로운 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어야 하는 건 아닐지. 운동이라는 게 잘 못하더라도 열심히 뛰어들 마음의 동기 혹은 그곳에서 느껴지는 재미 등 집중되고 흥미로운 어떠한 요소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내게 그런 어느 하나라도 느껴지긴 하는지. 수영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다 멀리서 업무를 마무리 중인 L과장이 보였다.
L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입 모양으로 ‘갑시다.’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배탈로 잠시 잊고 있던 수영 가기 싫은 이유 하나가 더 떠올랐다. 지난 강습시간에 L과장은 다 보았을 텐데, 유아풀에서 혼자만 뒤쳐서 쪼그라져 있던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 다 곧잘 해내는 동작을 나만 유난히 따라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바보 같고 한심한 꼴을 보인게 너무 창피했다. L도 내가 이 정도로 못할 줄 몰랐을 것이다.
“표정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내 자리까지 걸어온 L과장이 창백한 나를 보며 물었다.
“수영 가려니 긴장이 돼서요."
"물이 무서워요?"
"네 물도 무섭고, 혼자만 너무 못해서 창피하고요."
"무서운 건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창피해요?"
"너무 못하니까요. 이 간단한 동작도 못하는 게 너무 한심하잖아요."
"그건..."
내 말을 들은 L과장이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영장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과 조건으로 운동하러 와요."
“저만 다 큰 어른이 유아풀에서 킥판 잡고 물장구나 찬다고요. “
“물속에서 킥을 차는 것만 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그걸 열심히 하다가 가면 돼요.
얼굴에 살짝 열감이 오르는 정도로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더 멋진 거구요."
"못생겨 보이기나 하지 뭐가 멋져요."
"수영을 배우겠다고 와서는 딴짓만 하다 가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는 수영을 배우려고 왔는데 시시한 동작만 시켜서 운동이 안된다고 불평하면서요.
본인이 운동을 하러 온 시간을 낭비하고 가는 사람,
그게 한심하고 창피한 거예요."
수영장 앞에 다 와갈 무렵 앞서 느끼던 창피함과 다른 창피함이 몰려왔다. 난 수영을 배우러 온 게 아니라 데이트를 왔다고 착각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처음부터 잘 따라 할 거라고 자만했던 걸까. 마치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첫 출근 하루 만에 '난 이 일이 적성에 안 맞아, 소질이 없어, 다른 동료들에게 보이기 너무 창피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정말 한심한 건 운동신경 없는 내 몸이 아니라 이런 경솔한 생각이었다니.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화장실 한번 더 다녀올게요!"
여전히 긴장감에 배가 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자는 건강한 생각과 의지가 생겨났다.
일단 해보자, 천천히 내 속도대로.
그리고 무서운 건, 조금만 더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