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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Oct 11. 2024

어라 뜨네? 신비한 그곳 성인풀

이게 말로만 듣던 부력이라는 건가





  강습 끝나기 5분 전, 깊고 거친 성인풀의 세계로 승급한 초보자 선배님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 강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자습 안 하고 딴짓하며 놀고 있다가 선생님에게 딱 걸린 학생 마냥 놀란 얼굴을 바로 돌려 발차는 시늉을 했다.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 더욱 과장된 입모양으로 ‘음파- 음파-.’ 호흡을 내쉬던 그 순간 유아풀 쪽으로 강사님이 소리쳤다.


“회원님! 이리 오세요!”


  잘못들은 건가 싶어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저요?’라고 되묻자 강사님은 본인 손목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시간이 없으니 얼른 오라며 손짓했다. 강사님은 내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부력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것 같으니 여기 깊은 풀에서 하면 다를 거라고, 몇 분 안 남았으니 여기서 시도해 보자 하셨다. 


  무릎 높이 수심의 유아풀에 있다가 찰랑거리는 물결이 가슴 위까지 올라오는 성인풀에 입수하니 정말 많은 것이 달랐다. 이렇게 깊은 물은 평생 처음 들어와 보는 것 같았다. 코로 물을 들이마실 까봐 겁이 났던 긴장감과는 다른 규모의 공포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곧바로 가슴이 눌리는 듯한 묵직하고 답답한 느낌이 찾아왔다.


  일상에서 호흡하는 콧속의 풍량이 1단이라면 지금은 3단 터보 버튼을 누른 듯 빠르게 들숨 날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달리기 하는 중이 아님에도 숨 쉬는 것이 굉장히 가쁘고 힘들었다. 옆 레인의 사람들이 한참 수영을 하고 있어서 출렁이는 물살 때문에 바닥을 지탱하는 내 두 발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넘어질 것만 같은, 부여잡을 것이 없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발만 떼면 몸이 뜰 거예요. 이거 꽉 잡고 있어요.”


  상기된 내 얼굴을 마주하고 선 강사님이 킥판을 건네며 말했다. 그러고는 고민해 볼 새도 없게 강사님은 ‘시작’이라는 말을 외치며 내가 잡은 킥판을 잡아당겼다.





이게 부력이라는 건가?



  내가 발을 뗀 게 아니었다. 강사님이 킥판을 끌어당기니 상체가 앞으로 따라가다가 얼떨결에 발이 떨어졌다. 이후로도 내가 한 게 아니었다.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무언가가 내 허벅지와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나를 불쌍히 여긴 물이 제 손을 꺼내어 가라앉을 내 몸을 잡아 올려 준 것일까? 천천히 묵직하게 떠오르는 내 몸이 느껴졌다.


“회원님, 빠르게 킥 차세요.”


  두둥실 떠 오르자마자 강사님의 지시대로 몇 번의 킥을 찼고 금세 숨쉬기 어려워 제자리에 멈췄다. 발을 얼른 바닥에 두려 했지만 물이 깊으니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않아 바로 서지 못하고 뒤뚱거렸다. 넘어질까 두려운(사실은 죽을까 봐 무서운) 내 몸이 옆에 떠 있는 기다란 빨간 로프를 잽싸게 끌어안았다. 레인로프는 수영장의 레인을 구분하기 위한 본래의 용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나를 구해주기 위한 구명조끼 혹은 구조대원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로프 덕분에 두 발은 겨우 타일 바닥을 찾았고 무사히 안착에 성공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헤엄쳐(?) 온 거리가 상당히 길었다. 2M 정도.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던 내가 물 위에 뜬 데다가 수영해서 여기까지 오다니 코끝이 찡하게 뿌듯했다. 강습시간 내내 창피함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지금 이 짧은 성공 덕분에 희석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숨 쉬는 일이 다시 갑갑해졌다. 


  이게 물에 대한 공포증 비슷한 건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곧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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