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로만 듣던 부력이라는 건가
강습 끝나기 5분 전, 깊고 거친 성인풀의 세계로 승급한 초보자 선배님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 강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자습 안 하고 딴짓하며 놀고 있다가 선생님에게 딱 걸린 학생 마냥 놀란 얼굴을 바로 돌려 발차는 시늉을 했다.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 더욱 과장된 입모양으로 ‘음파- 음파-.’ 호흡을 내쉬던 그 순간 유아풀 쪽으로 강사님이 소리쳤다.
“회원님! 이리 오세요!”
잘못들은 건가 싶어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저요?’라고 되묻자 강사님은 본인 손목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시간이 없으니 얼른 오라며 손짓했다. 강사님은 내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부력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것 같으니 여기 깊은 풀에서 하면 다를 거라고, 몇 분 안 남았으니 여기서 시도해 보자 하셨다.
무릎 높이 수심의 유아풀에 있다가 찰랑거리는 물결이 가슴 위까지 올라오는 성인풀에 입수하니 정말 많은 것이 달랐다. 이렇게 깊은 물은 평생 처음 들어와 보는 것 같았다. 코로 물을 들이마실 까봐 겁이 났던 긴장감과는 다른 규모의 공포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곧바로 가슴이 눌리는 듯한 묵직하고 답답한 느낌이 찾아왔다.
일상에서 호흡하는 콧속의 풍량이 1단이라면 지금은 3단 터보 버튼을 누른 듯 빠르게 들숨 날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달리기 하는 중이 아님에도 숨 쉬는 것이 굉장히 가쁘고 힘들었다. 옆 레인의 사람들이 한참 수영을 하고 있어서 출렁이는 물살 때문에 바닥을 지탱하는 내 두 발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넘어질 것만 같은, 부여잡을 것이 없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발만 떼면 몸이 뜰 거예요. 이거 꽉 잡고 있어요.”
상기된 내 얼굴을 마주하고 선 강사님이 킥판을 건네며 말했다. 그러고는 고민해 볼 새도 없게 강사님은 ‘시작’이라는 말을 외치며 내가 잡은 킥판을 잡아당겼다.
이게 부력이라는 건가?
내가 발을 뗀 게 아니었다. 강사님이 킥판을 끌어당기니 상체가 앞으로 따라가다가 얼떨결에 발이 떨어졌다. 이후로도 내가 한 게 아니었다.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무언가가 내 허벅지와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나를 불쌍히 여긴 물이 제 손을 꺼내어 가라앉을 내 몸을 잡아 올려 준 것일까? 천천히 묵직하게 떠오르는 내 몸이 느껴졌다.
“회원님, 빠르게 킥 차세요.”
두둥실 떠 오르자마자 강사님의 지시대로 몇 번의 킥을 찼고 금세 숨쉬기 어려워 제자리에 멈췄다. 발을 얼른 바닥에 두려 했지만 물이 깊으니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않아 바로 서지 못하고 뒤뚱거렸다. 넘어질까 두려운(사실은 죽을까 봐 무서운) 내 몸이 옆에 떠 있는 기다란 빨간 로프를 잽싸게 끌어안았다. 레인로프는 수영장의 레인을 구분하기 위한 본래의 용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나를 구해주기 위한 구명조끼 혹은 구조대원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로프 덕분에 두 발은 겨우 타일 바닥을 찾았고 무사히 안착에 성공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헤엄쳐(?) 온 거리가 상당히 길었다. 2M 정도.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던 내가 물 위에 뜬 데다가 수영해서 여기까지 오다니 코끝이 찡하게 뿌듯했다. 강습시간 내내 창피함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지금 이 짧은 성공 덕분에 희석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숨 쉬는 일이 다시 갑갑해졌다.
이게 물에 대한 공포증 비슷한 건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곧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