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남겨진 유아풀, 창피해서 울고싶은 나
출발하라는 강사님의 지시가 세 차례는 되었을까, 더 이상은 주저할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물 위로 몸을 던졌다. 사실 몸을 던질 일 까지는 아니었고 킥판을 가슴에 안고 물에 떠서 참방참방 앞으로 좀 가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도착해야 하는 유아풀 저 끝까지는 고작 6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 내 차례를 기다리며 머릿속 시뮬레이션만 벌써 열 번도 넘게 돌렸지만 실전은 달랐다.
이미 물속에 들어와 있는 몸을 그대로 낮춰 나아가면 될 일이었지만, 마치 5미터 공중에서 다이빙을 시킨 것 마냥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앞서 몇 차례의 출발 지시에도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얕은 수심이었지만 막상 뛰어들으려니 물속이 한없이 깊어 보이며 덜컥 겁이 났다. 물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뜨는 행위자체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앞으로 갈 수나 있는 걸까. 강사님은 이런 나를 알기나 하고 시킨 걸까.
킥판의 평평한 부분을 내 가슴 앞 중앙에 두고 그 위로 내 몸을 찰싹 붙여 물 위에 일직선으로 뜨게 만들자마자 두 발을 바닥에서 떼었다. 발이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자마자 배운 대로 힘찬 킥을 차보려던 그 순간 상체가 앞으로 꼬꾸라지듯 물에 잠겼다. 호흡을 위한 생존 본능이었나 무릎이 재빨리 바닥을 찾았고 요가의 고양이 자세가 되어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잠수에 질겁하듯 놀란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재빨리 물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들이마신 물 때문에 코가 매워 쉽사리 눈이 떠지지 않았는데 양 옆에서 사정없이 튀기는 물세례에 또 한 번 정신이 아찔했다.
‘파파파파파팟’
동시에 출발했던 초급반 동지들은 문제없이 나아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다들 수영을 처음 배우는 거라고 했는데 그들의 처음은 내가 아는 그 처음이 아니었던가.
“회원님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어요.”
당연하죠 또 물먹을까 봐 너무 긴장되고 무섭거든요. 라고 말하진 못했지만 최대한 힘을 빼보려는 시늉을 했다. 아까 물을 들이마신 일로 코가 짜릿하게 아팠던지라 그 고통을 또 맛보게 될까 겁이 나 시간을 끌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더니
"얼른 다시!"
강압인 듯 훈련인 듯 혹은 뺀질거리는 회원을 익히 봐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조치 인듯한 강사님의 무서운 호령이 수영장에 가득 울렸다. 물도 무섭지만 강사님은 더 두려웠기에 다시 킥판을 안고 물에 뜨려 시도했다.
역시나 또 잠수.
그래도 이번엔 아까보다 빠르게 얼굴을 수면 밖으로 구조시켰다. 잠기고 들이마시는 과정이 반복되니 몸에 들어간 힘이 빠지긴커녕 더 다루기 어려운 통나무처럼 무거워졌다. 도대체 왜 못 뜨는 건지, 몸이 왜 이렇게 굳어서는 발만 떼면 바닥으로 가라앉는 건지, 이 정도로 컨트롤이 안된다면 과연 이게 내 몸이 맞긴 한 건지...
울먹임에 가까운 내 얼굴을 발견한 강사님은 단호했던 표정을 잠시 넣어둔 채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드디어 나를 구원해 주려는 것인가! 순간의 찬란했던 기대가 무색하게 '힘을 빼라'는 지겨운 그 말을 남긴 채 강사님은 무심히 떠났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몸이 따르질 못하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단순한 이론을.
제자리에서 물과 씨름한 지 30분이 넘어갈 무렵 젖은 걸레가 된 것 같은 무겁고 너덜너덜한 몸을 물 밖에 걸쳐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이라고 속였던(?) 그 회원들 대다수가 강사님이 시킨 이 동작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 6M를 두 번 세 번에 나누어 가던 사람도 이제는 한 번에 돌파할 만큼 잘 해내고 있었다. 능숙해진 사람들은 깊은 성인풀로 넘어가라는 일종의 승급 통보를 받고 하나 둘 떠나갔다.
그렇게 머지않아 나만 남겨진 유아풀. 여전히 제자리에서 나아가긴커녕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 회원 한 명만을 봐주며 유아풀에 남아있을 수는 없었기에, 강사님은 계속 연습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6번 레인으로 가셨다. 그곳에도 강사님을 필요로 하는 초급반 회원이 수두룩 했기에 이해는 되었다. 머리로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 혼자만 남겨지니 연습할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침울하고 창피했다고 해야 하나.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남들은 다 해내는 것도 못하는 내 몸뚱이가 너무도 짜증 났다. 저 멀리 L과장이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재빨리 이 낮은 수심에서 더 아래로 내려앉아 안 보이게 숨었다. 분명히 '쟤는 왜 혼자 저러고 있는 거지.' 라며 이해가 되지 않아 쳐다본 걸 텐데.
창피함을 넘어 참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