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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Oct 01. 2024

아~ 쪽팔려! 망신스러워 죽겠네.

간식까지 두둑이 먹고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가관이구나.





동료同僚 :

1)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2)  동아리에서 함께 일하거나 활동하는 사람

3)  같이 수영 다니면 안 되는 사람





  L과장이 다니는 수영장으로 같은 시간 강습 등록했다는 말에 회사 사람들과 지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입도 뻥끗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사건을 들은 표정이었다.


“불편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라는 말은 차라리 나았고, 듣자마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무슨 사이야?”


  라고 진지하게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듣게 될 혹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사고를 친 걸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인데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운동이라 현실이 와닿지 않는 걸까?


  나에게 쏟아지는 그 무수한 걱정들은 지금 막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는 나에게는 의미 있게 들리지 않았다. 현재 나에게 가장 큰 결핍의 부분, 실연의 공허함을 채워 주기에 적절하게 임팩트 있는 것. 이렇게 흥미로운 것이 다른 게 또 있을까 싶었다. 해보지 않았던 것이며 평생 막연히 두려웠고 죽기 전에 언젠가는 해 낼 숙제로만 남겨두었던 수영을, 이끌어줄 사람이 옆에 있는 찬스였으니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게 된 첫 강습 날.


  그렇다. 이건 직장동료와 함께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떤 것이 이상한 건지 여태 그런 생각이 없다가 수영복을 다 갖춰 입고 풀(pool)로 나가는 지금에서야 완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동안 눈은 크고 또렷하게 입술은 도톰하고 붉게 단점은 다 가리면서 장점만 부각하는 메이크업에 정성을 쏟고, 헤어 고데기로 볼륨 있는 웨이브를 주어 풍성한 컬의 머리를 완성했다. 안 예뻤던 내 모습 위에 마법을 부려 전장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현관 밖으로, 역삼동 사무실로 향했다. 그 화려한 강철갑옷을 입으면 어디서든 자신이 있었다. 혹여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지각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그 갑옷을 갖추어 입고 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늘 말끔히 차려진 내 모습만 봤을 거다. 내가 그렇게만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수영을 하기 위해선 다른 운동과 다르게 모든 것을 초기화시키고 들어가야 했다. 샤워 후 수영복을 착용해야 하기 때문. 그렇기에 노메이크업은 물론이고, 웨이브 머리 또한 불필요했다.


메이크업을 싹 다 지우니 또렷했던 그 눈은 사라지고 굵은 쌍꺼풀의 졸려 보이는 눈이 드러났다. 컨실러로 가려두었던 피부는 원래의 울긋불긋한 모습을 드러냈고 거뭇하게 착색된 뾰루지 자국들이 도드라졌다. 하이라이터로 눈속임했던 코는 광택 없이 내려앉아 있었고, 붉었던 입술은 핏기 없이 칙칙해졌다. 얼굴살을 가려주었던 긴 머리를 동글동글 하나로 묶어 수모 속에 욱여넣었다. 그 어떤 볼륨 하나 없이 딱 붙은 수모를 쓰고 있으니 거울 속에 커다란 타조 알 하나가 나타난 듯했다.


  게다가 실리콘 수모의 탄성 때문에 눈이 당겨져 가뜩이나 화장기 없어 작아진 눈이 저항하지 못한 채 사선으로 찢어져 있었다. 가관이었다. 잔머리라도 좀 빼보자. 황급히 양쪽 귓가의 애교머리 빼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애교머리라는 것도 다른 머리와 함께 있을 때에나 예쁜 효과를 주었던 것이었다. 그 약간의 빼낸 머리로는 못생긴 타조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얼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점심 먹고 오후 간식까지 먹어 다 소화되지 못한 볼록한 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영복 차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후 3시에 조각 케이크를 먹은 걸까, 그것도 두 조각이나. 대비를 전혀 못한 두꺼운 팔뚝은 어디 한 곳 숨길 데가 없었다. 왜 수영복은 민소매인가! 엉덩이며 허벅지며 실루엣이 그대로 나타나는 이 차림으로는 저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아니 이 모습으로 L을 볼 수가 없다는 게 정확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다니는 운동이었다면 이 착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같이 다니는 동료가 여자였어도 나았을 텐데, 상황이 달랐다.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내가 미련하고 원망스러웠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게 나가보자.’


  하고 발을 내디뎠다가


‘내가 미쳤구나.’


  라고 다시 돌아오길 벌써 여러 번. 강습 시작 시간이 코 앞인데 샤워장 출구에서 뱅뱅 돌고 있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말 미치겠다 싶은 몇 분을 보내다가 L이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아서 큰 한숨을 몰아 내쉬고 수영장으로 나갔다. 언제 들어오나 지켜보고 있었는지 나오자마자 바로 L과 눈이 마주쳤다.


‘아우.. 쪽팔려….’


  그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오지 말라고요. 제발...’


  거의 울음에 가까운 나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눈이 잠시 마주친 이후 나는 L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귀가 한없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렸다. 왠지 다행이었다. 모두 서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체조를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기둥 뒤로 숨었다. 여기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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