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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Oct 22. 2024

제일 느린 수영

회원님은 그냥 나오는데 의미를 두시는 거죠?





  오후 4시의 타이레놀과 배탈은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수영강습에 가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먼저 지나야 하는 애피타이저 같은 것이 되었고 그렇게 오늘도 난 수영장에 도착했다. 수영모를 쓰면 저항하지 못한 채 찢어지던 눈도 이제는 제법 안정적으로 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사실 기존에 실리콘 수모에서 눈이 덜 당겨지는 매시 수모로 바꿨다. 못생김을 좀 줄여보려고 선택한 방법인데 머리를 덜 조이기도 하고 물이 투과되어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것이 처음보다 긴장감이 한결 덜어지는 장점도 있었다.


  뒤늦게 신규 등록하여 새로 온 사람들이 몇몇 다녀가긴 했지만 금방 또 사라져 버리곤 해서 유아풀에는 거의 나 혼자 머물러 있었다. 대략 3주가량 처음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은 실력으로. 내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연습을 했지만 여전히 잘 뜨지 못했고 곧잘 가라앉았고 이따금 물도 먹었다. 일단 다니기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실력일지라도 버텨 볼 심산이었다. 나름 물속에서 발차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안 하던 이전의 삶보다 운동량이 늘었고 소박한 그 운동량에 오늘도 잘 버티었다는 뿌듯함이 드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초급 반인 5번과 6번 레인도 돌봐야 하는 강사님이 여기 유아풀까지 오가며 봐주기가 힘들었는지 깊은 풀로 옮기자고 하셨다. 그래서 저번 시간부터는 여기 6번(초급 하下반) 레인이 나의 출석지가 되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킥판을 하나 들어 출발하려는데 항상 놓여 있던 킥판 더미가 없었다.


“강사님 킥판이 없어요!”


  강사님은 레인의 중간에서 킥판 없이 자유형을 하는 어떤 회원의 팔 동작을 잡아주다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시작지점을 쳐다보셨다.


“회원님도 오늘은 킥판 없이 팔 뻗고 앞으로 가보세요.”


 “네?? 킥판 없이요???”


  개강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킥판 없이 영법을 배우고 있었다. 킥판을 잡지 않고 팔을 앞으로 뻗어 발차기로 나아가는 사람과 양팔을 한 번씩 돌아가며 자유형 동작을 수행하는 사람, 그리고 자연스럽게 팔 동작과 호흡까지 해내는 사람 등등. 아직까지 킥판에 의존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저 킥판 안 잡고는 아예 못해요.”


“회원님 언제까지고 이것에 의지하면 안돼요, 일단 해보세요.”


  이 강사님은 여전히 나를 몰랐다. 킥판 없으면 절대 앞으로 못 가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앞으로 가는 건 둘째치고 물에 뜨긴 할지, 가라앉으면서 허우적거릴 게 뻔한데 왜 일단 해 보라고 하는 걸까. 눈물은 안나도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주저하며 발을 떼지 못하고 있자 한 바퀴를 마치고 온 회원들이 내 뒤에 하나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강사님은 시간을 끄는 나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어서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다들 기다려요, 얼른 출발!”


  강사님이 가르치는 걸 잘 따르지 않고 빤질거리는 모습이 제일 한심하고 창피한 거라고 했던 L과장의 말이 떠올라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두 발을 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킥판을 잡은 것 보다도 못한 꼴을 뽐내며 제자리에 가라앉아 허우적거렸다. 할 수 있다며 시키긴 했지만 강사님 본인도 사실 내가 못해낼 거라 예상했던 걸까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내 팔을 잡아 올려 나를 구조해 주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고 코로 물을 진탕 들이마신 탓에 콜록거리는 기침이 멈추지 않아 줄 서있는 회원들 사이를 헤집고 제일 끝에 가서  얼굴을 가리고 숨을 돌렸다. 물을 마셔서 그런 건지 창피해서 그런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간이 지나 호흡은 고르게 돌아왔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고 안전요원님에게 가서 두통약을 하나 받을 수 있을지 부탁드렸다.




  통증을 진정시키고 다시 돌아오니 레인 끝에서 두어 명의 회원과 농담을 주고받는 듯한 강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실제로 그러진 않았겠지만 마치 그들은 방금까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처럼 나를 응시하며 웃고 있었다. 강사님이 그대로 서서 웃음을 억지로 참은 채 내게 물었다.


“회원님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저 킥판 잡고 할게요.”


  수영장 한편 선반에 있는 킥판을 가지러 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찰나 강사님이 여전히 웃음을 참고 있는 얼굴로 내게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회원님은 나오는데 의미를 두는 거죠?”


  내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길 바라고 묻는 질문이었을까. 한 달 가까이 지켜봤지만 강사입장에서 보기에는 내가 영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수영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질문이었는지. 아니면 더 열심히 하지 않는 내 모습이 한심해서 던지는 꾸지람이었을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티 나지 않게 이를 악 물고, 출석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 게 맞다고. 수영을 빨리 배우려는 욕심이 나는 전혀 없으니 강사님도 조급하게 날 대하지 말라고. 나는 여전히 물이 무섭고 그래서 영법을 배우는 속도가 누구보다도 느리지만 끝까지 버티고 버텨서 언젠가는 해 낼 거라고.


마음속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다짐을 그렇게 담담하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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