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는 것을 실제로 하기.
그냥 내가 재밌어서 순수하게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재미보다는 매일매일 숙제처럼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실력과 비교하게 되었고, 이왕하는거 좀 더 돈이 되게 하고자 했고, 좀 더 사람들의 시선에 맞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필요'를 생각하다보니, 어느순간 내 즐거움을 사라졌고 결국 지속할 에너지를 잃어버렸다.
물론 성공하려면,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우물안의 개구리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물 밖으로 나가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많은 책에서 제대로 삶을 살려면, 죽음을 생각하라고 한다.
내일 죽는다면, 내년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적어도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떄문에, 곧 죽는다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앞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한 행동들이다.
'미래가 있는 행동'과 '미래가 없는 행동'은 다르다.
미래가 없으면, 난 회사를 다니지 않을 것이고, 돈도 모으지 않고, 예술을 할 것이다.
허나 난 회사를 다니고, 미래를 위해 돈을 모은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이러다가 갑자기 죽음이 다가오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을까'라고 후회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산다면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균형이다.
문제는 모두가 균형이 중요한 것을 알지만, 아무도 실제로 균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균형은 '미래'를 향해 기운다.
그래서 반성을 해야 한다. 앞으로 가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물론 이것도, 대부분 사람이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지금까지 살던 방식대로 살게 하는 삶의 관성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으면, 딱 하나를 제외하고 다른 방법이 없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 그래서 내 알을 깨고 나와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