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자기혐오의 악순환
지금 생각해보면 제 사춘기는 좀 독특했습니다.
사춘기는 '반항하는 시기'라는 프레임에 반항했습니다. '반항하는 시기'라는 말은 청소년을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 아직 어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so cool~'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생은 사는 것 그 자체이지, 도대체 고민할게 뭐 있어!"
하지만 그보다 꽤 오랜 시절이 지나 나이를 먹은 저는 오히려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잘 살아온 것일까, 나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때가 어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틀린게 아니라, 달랐던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찾았던 '삶의 의미'는 새로운 경험과 환경 속에서 바뀌어 갑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는 최선의 생각과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너무 후회스러운 행동이 됩니다.
"그때 좀 더 도전해볼껄, 좀 더 열심히 살아볼껄"
이런 아쉬움이 커져가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내 자신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아.. 시간을 돌려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러면 진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나로 살텐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를 계속 비교합니다.
이에 자극받아서 더 노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스스로의 에너지를 갉아먹혀서 노력의 포기하는 유형이었습니다.
포기는 자기혐오를 낳습니다. "나는 안돼"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의 삶은 공허해지고, 대리만족에 빠지게 됩니다.
지난 삶을 현재의 의미로 바라보는 것은 종종 최악의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내 삶 자체를 후회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를 살아간다고 해도, 미래의 내가 보면 또 바뀔 수 있습니다. 아니, 무조건 바뀐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말 열심히 회사를 다녔는데, 나중에 가족과 멀어지고 삶을 후회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라고 말이죠. 허나 사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최선을 다해 일을 해볼껄"이라고 말이죠.
결국, 본질로 돌아와야 합니다. 왜 인생에 대해 고민했을까. 그건 내 과거를 비판해서 현재의 나를 못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는 과거 그 자체로 인정하고,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현재의 내가 가진 단점을 부각시켰습니다. 내가 가진 장점은 그대로 가져가면 되니 볼 것이 없었던 것이죠.
부족한 점을 보는 것은 위험을 피해야 하는 인간의 본성상 너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단점과 위험이 과대평가되는 만큼, 장점과 기회는 자연스럽게 과소평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적으로' 장점과 기회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내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이게 최근에 제가 깨닫은 삶의 이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