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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Y Jan 01. 2022

내가 살던 곳의 역사

나는 내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내 나이 45세.


집을 소유한 것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7세에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3년만에 약 8천만 원을 모았다.

2005년경이었는데 용산에 살던 친구가 용산 집값이 별로 비싸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딱히 돈을 쓸 데도 없고 아파트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를 딱 하나 보고 바로 계약했다.

삼각지 역세권의 22평 아파트였다. 

아파트를 둘러보며 속으로 한 생각은 '나라면 이런데 안산다'였다.

내 마음속 로망은 단독주택이었다. 

그러면서도 덜컥 계약했다.

돈은 있고 뭐라도 사고 싶은데 그나마 안전한 것이 부동산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전세를 끼고 내 돈 8,000만 원에 대출 2,000만 원을 받아 2억 5천만 원 정도의 아파트를 매수했다.

당시는 갭투자라는 말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갭투자의 선구자쯤 되었던 셈이다.


전세를 끼고 산 집은 차츰 가격이 올라 한 5년 후쯤에는 4억 7천만 원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오랜 기간 침체장이 계속 되었고, 2012년경 4억 정도까지 내려갔다.

여전히 그 집에 살고싶은 생각은 없었고,  네이버 부동산으로  내가 산 아파트 가격의 숫자를 보며 때로는 부자가 된 기분을, 때로는 손해를 보는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았는데 남편 사업이 망했다.

남편이 새로 시작한 일은 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나는 아이를 키우느라 로펌을 그만둔 상태였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2013년도 말쯤 급매로 3억 8천 500만 원에 아파트를 팔았다.

돈이 급하던 때라 그 돈이라도 생기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 때부터 아파트 가격이 슬금슬금 올라 2021년 불장에 이를 줄 어떻게 알았겠나. 

아파트를 팔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아파트의 '아'자만 들어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욕이 나왔다.


로펌을 그만두고 저축해둔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까먹으며 5년 동안 아이 둘을 키웠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컸고, 온전히 가정을 돌보는 일이 평화롭고 행복했다.

그러나 돈이 없다는 불안감에 때로 메마르고 강팍해졌다.

남편과도 돈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았다.  

생활비가 떨어져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지경이 될 무렵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일이 무척 잘 되어서 재작년에 땅을 샀고, 작년부터 집을 지었다. 

올해 초 곧 입주를 앞두고 있다.


입주가 얼마 남지 않은 며칠 전 문득 깨달았다.

나... 내 집에서 처음 살아보는 거임?

집을 꽤 오랜 기간 소유했었기에 내 집에서 처음 살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눈물이라도 훔쳐야 하는 건가? ㅋㅋㅋ 


내집에서 처음 살아본다는 감격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냈다는 것에 대한 감격이 훨씬 크다. 


셋집에서만 살았지만 내가 원하는 단독주택 또는 타운하우스에서 살았기에 사는 곳에 대한 만족도는 항상 높았다.  셋집살이가 그렇게까지 서럽고 두렵지 않았다.  집을 옮길 때 정리를 한번 하는 것도 좋고 집을 원하는 대로 꾸미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안좋은 점이 왜 없으랴 만은 모든 일은 좋은 점과 안좋은 점이 있기 마련이다.  주인과 마찰이 있을 때도 있지만 내집이라고 골치 썩고 기분 나쁜 일이 없을리 없다. 전셋집을 옮길 때는 왠지 모를 서러움이 잠시 올라오기도 했지만, 서러움은 잠시뿐 열심히 찾다보면 그 때마다 적당한 가격에 내가 원하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내 집에서 처음 살아보는 소감은... 역시나 좋기는 하다.

내 집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집에 살 수 있어 좋다.

설계부터 집짓기까지 모든 것을 나와 가족의 생각을 담아 만든 집이라니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 때까지 살았던 모든 집에서 나는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셋집이든 자가이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얘들아. 너의 모습대로 살면 된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아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러니 걱정 말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라.  그저 자연과 더불어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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