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언제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요리도 못 하고 살림도 못 하는 빵점 엄마다. 바깥일은 하루 종일 해도 별로 지치지 않는데 이상하게 집안일은 설거지만 해도 쉽게 지친다. 명절에 전이라도 굽고 나면 며칠 드러눕고 만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느 주말 저녁의 일이다. 식탁을 치우는데 그날따라 설거지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TV 앞에 붙어 있었다.
“엄마 너무 피곤해서 설거지할 힘이 없네. 서영이는 언제 커서 설거지하고 청소도 하며 엄마를 도와줄까?”
별 기대를 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저, 설거지할 수 있어요.”
서영이가 선뜻 고무장갑을 끼더니 싱크대에 담가 놓은 그릇을 수세미로 닦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딸아이는 어머니나 내가 식탁을 치우다 “서영아!”하고 부르면 “네!”하고 달려와 주었다. 기특하기도 했지만 설거지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딸의 눈치도 보았다. 서영이는 설거지를 끝내면 싱크대 주변과 식탁까지 행주로 깨끗하게 닦고 행주를 빨아 사각형으로 개어 놓았다. 어쩌면 이맘때 아이들은 설거지 정도는 다들 하는 거 아닌가 싶어 학원 아이들한테 물어보았다.
“얘들아, 너희들 집에서 보통 집안일은 누가 하니? 설거지나 방 청소 같은 거 말이야.”
“엄마가요.”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가 집안일을 한다고 했다.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빨래를 널 만한 베란다 공간이 부족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평수에 비해 베란다 공간이 꽤 넓은 편이라 창문을 열어 두고 빨래 말리기에 딱 좋았다. 그런데 요즘 지은 집들은 거실 베란다 없이 확장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빨래를 어디서 말리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건조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불 빨래도 원 없이 돌리겠다며 들떴던 나의 마음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내 머릿속 건조기는 실재하는 쓰임이 아니라 확보하고 싶은 쓰임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집안일엔 젬병이다 보니 아무리 좋은 도구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서영이는 매일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내가 퇴근하는 시간이면 이미 잠자리에 든 이후라서 교복을 빨아주지 못했다. 친정어머니께서 교복이나 빨아 돌리라며 서영이에게 세탁기 사용법을 알려주신 모양인데 언젠가부터 서영이는 교복 빨래를 할 때 세탁 바구니에 넣어 둔 옷가지까지 함께 돌렸다.
서영이가 빨래 돌릴 시간이 되었다며 세탁기에 세제 넣는 걸 지켜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영이는 냉동실 얼음 칸을 열 듯 세탁기에서 세제 칸을 분리해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구분하여 채워 넣었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익숙하고 날렵한지 나는 그저 감탄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전원을 켜기 전, 빨랫감을 몽땅 세탁기에 쑤셔 넣었다. 옷이나 몸에 향기가 배기를 바라는 듯이, 나는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빨랫감 위에 듬뿍 부어 놓곤 했었다.
‘세제 넣는 칸이 세탁기 안에 따로 있었구나!’
이후 세탁기 세제 칸의 발견은 서영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심지어 친정어머니에게도 말 못 한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다.
올해 봄, 서영이가 정리 수납 자격증 시험 때문에 싱크대며 옷장, 냉장고까지 정리하더니 사진을 찍어 갔다. 자격증까지는 못 땄지만, 수료증을 가져왔다. 저런 자격증으로 뭘 하나 싶었는데 빨래를 개는 모양새가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서영이는 수건 한 장이라도 설렁설렁 포개지 않았다. 반드시 수건을 쫙 펴서 손으로 양 끝을 탁탁 당긴 후에 개었다. 양 끝을 맞춰 두 번, 다시 반대편으로 말 듯이 접고 펄럭거리는 끝은 수건이 살짝 열린 곳으로 단정하게 쏙 말아 넣었다. 살림 빵점 엄마의 눈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묘기였다. 운동복 바지도 손으로 한번 쫙 펴더니 앞섶을 접고 바지선을 맞춘 뒤 3등분으로 접었다. 티셔츠는 백화점 진열대에 올라간 그것처럼 깔끔하게 접혀 옷 주인의 방으로 배달되었다. 딸이 예쁘게 개어 준 옷 덕분에 우리 집 옷장 속은 백화점 진열대처럼 훤해졌다.
서영이의 살림 솜씨는 요리에서도 빛을 발했다. 요리라고 해 봐야 라면이나 계란후라이 정도였다. 나와 남편은 서영이가 누구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를 완성할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 토요일이면 발달 교육센터 친구네 집에 가서 점심도 먹고 도서관도 가고 게임도 하다 오는데 어느 날은 아이들끼리 점심을 해 먹었다고 했다.
“서영이 점심으로 뭐 먹었는데?”
“라면이랑 계란후라이요.”
“서영이 그럼 라면 끓일 줄 알아?”
“네, 저 라면 혼자 끓일 수 있어요.”
서영이가 라면 냄비에 물을 붓고 팔팔 끓였다. 물이 뜨거우니 조심스럽게 생라면을 넣고 남은 라면 부스러기를 냄비에 탈탈 털어 넣었다. 집게로 끓는 물속에 면을 담갔다 뺐다가 하더니 수프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달걀 하나를 풀었다. 그렇게 끓인 라면을 그릇에 담아 내 앞에 놓아주는데 나는 너무 감격해서 그만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디선가 배워 솜씨를 뽐내는 아이, 감사했다. 이제 어른들이 외출해 식사를 못 챙겨도 딸은 혼자 힘으로 잘 차려 먹는다. 남편과 나는 딸에게 서영이 표 라면을 끓여달라고 가끔 조른다. 우리가 엄지척 들며 맛있다고 감탄하면 아이는 “맛있어요?” 되물으며 정말 기뻐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영이의 꿈은 요리사였다. 우리 부부는 뭐든 아이가 원하기만 하면 든든하게 밀어주겠다 결심했지만 ‘과연 서영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늘 자신이 없었다.
“꼭 요리사가 아니면 어때?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정말 많고 서영이도 뭐든 도전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는 게 중요하지.”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줄 때 느리게 배우지만 끝내 해내는 아이를 보면 엄마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빵점 엄마의 살림 솜씨를 앞지르는 우리 서영이, 우리 집에는 세상에서 가장 이쁜 우렁각시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