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라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토요일 독서 모임에서 제기차기를 너무 심하게 한 탓이리라. 설상가상 열까지 났다. 처음엔 근육통이겠거니 싶어서 파스를 치덕치덕 바르고 누웠는데 시간이 흐르자 손가락 관절까지 통증이 번져 손을 쥐었다 폈다 할 수도 없었다. 요즘 파주다 독서 모임이다 친정이다 외출할 일이 많았다. 주말마다 집을 비웠더니 딸이랑 시간을 거의 못 보냈다.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 침대 위에 널브러진 엄마를 보고 서영이가 옆에 오더니 팔베개를 해 달라고 했다. 나란히 누운 채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도 딸의 관심은 다이어트다.
“오늘 아침은 ‘한 끼’ 타 먹었어요. 점심 먹고 밖에 나가서 많이 걷고 저녁 먹고 또 걸을래요.”
‘한 끼’는 따뜻한 물을 부어 조물조물 환을 만들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나 저녁 식사 대용 식품이다. 보기보다 먹고 나면 꽤 포만감이 있다.
“알았어요, 돼지 아가씨.”
“어... 저 날씬이 아가씬데요.”
말이 씨가 된다는 걸 아는지 항상 자신을 날씬이나 토끼로 불러달라는 딸이다.
“점심 뭐 해 먹을까?”
오래간만에 집에 있는 날, 요알못-요리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뭐든 해서 먹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런데 몸이 너무 아팠다. 특히 일어서면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 가기도 힘에 부쳤다.
“음... 생각해 볼게요.” 하더니 방을 나가는 딸.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 지금 11시예요.”
아까보다 몸이 더 아팠다. 이제 으슬으슬 한기가 오는 게 지난주 몸살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느껴졌다. 더 아프기 전에 밥 한술 뜨고 약을 먹어야 할 판인데 입 안이 까끌까끌한 게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전날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되는지 속도 더부룩하고 명치끝이 쿡쿡 쑤셔댔다. 귤 하나를 까서 절반을 우물우물 씹어 넘기고는 종합감기약 두 개를 먹었다.
“점심 뭐 먹을지 생각해 봤어?”
워낙 음식솜씨가 없어서인지 이런 질문을 할 때면 서영이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마치 돈 하나도 없는 사람이 뭐 사줄까 하고 묻는 것처럼.
“음... 1번 샤부샤부, 2번 돈가스, 3번 우동과 김밥, 4번 닭칼국수, 5번 순대국밥.”
서영이가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읊었다. 음! 나가서 먹자는 말이군. 집에서 이상한 음식 만들어서 자꾸 맛있냐고 묻지 말고 검증된 식당에 가서 음식다운 음식을 먹자는 거겠지.
“응, 엄마도 생각해 볼게. 지금 11시니까 엄마 12시까지만 좀 자도 될까? 몸이 너무 아파.”하고는 딸아이를 방에서 내보내고 다시 정신없이 잤다. 눈 감은 지 채 5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또 누가 흔들어 깨웠다.
“엄마, 12시예요.”
“벌써? 엄마 1시까지만 더 자면 안 될까?”
“네.”
거실에서 딸아이가 흥얼흥얼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또 잠에 빠졌다.
“엄마, 1시 반이에요. 저 배고파요.” 짜증이 약간 묻어 있는 딸아이 목소리에 잠을 깼다. 어째 자면 잘 수록 더 춥고 몸이 아팠다. 그래도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고 단단히 무장했다. 출발 전 차 시동을 걸고 히터가 빵빵하게 나올 동안 서영이에게 몇 번을 선택했는지 물어봤다. 딸아이는 대번 “3번 우동과 김밥”이라고 했다. 우리 집 근처엔 식당가가 하나도 없어서 간단한 분식점을 가더라도 옆 동네까지 가야 한다. 차를 타고 빙 둘러보니 일요일이라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았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다른 곳으로 갈까 하는 찰나 1년 365일 문을 여는 <김밥천국>이 눈에 띄었다. 가끔 나들이 갈 때 차 안에서 먹을 김밥을 사러 가는 곳이었다. 서영이는 참치김밥과 우동을 주문했지만 나는 앉아 있기도 힘들어서 도저히 뭔가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메뉴를 천천히 훑어보니 마침 잔치국수가 있었다. 따끈한 국물에 가는 면발의 국수라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도 같았다. 내가 잔치국수를 시키는 걸 보더니 서영이도 잔치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따뜻한 야채 멸치 국물에 쫄깃한 면발의 국수가 달걀지단과 김가루를 휘감고 나왔다. 서영이는 입맛을 다시며 맛있게 먹었다. 나는 영 입맛이 없어서 면발을 몇 가닥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젓가락을 놔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이불 두 개를 꺼내 덮고 그대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퇴근한 남편이 좀 괜찮냐고 묻는 소리, 청소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정적. 자다 깨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두두두두”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어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모래놀이 선생님이셨다. 오후 5시로 시간이 변경되어서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엄마 아프다고 아이 혼자 버스를 타고 간 모양이었다.
“오늘 서영이가 기분이 너무 좋던데요. 피규어가 모두 가족 모둠이었어요.”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것 같아 시작한 모래놀이였다. 첫 모래 상자엔 아기가 엄마 없이 혼자 있었다고 했다. 집에서 거리가 꽤 멀었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 서영이를 모래놀이 수업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 우리는 본격적인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청도로 바람 쐬러 다녀오기도 하고, 서영이가 좋아하는 점심 메뉴를 정해 함께 먹기도 했다. 신나는 노래를 틀어 놓고 운전하다 말고 흥겹게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남편이 시간이 되는 날은 셋이 다녔다. 몸은 고단했지만 서영이가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차츰차츰 아기가 엄마와 가까워지는 상자가 보였고 지난 9월 강화도 여행을 다녀온 뒤 집 가까운 곳으로 모래치료센터를 옮긴 후엔 아기가 엄마 옆에 착 달라붙은 상자가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은 모래 상자 안 피규어 전부가 아빠, 엄마, 아기 모둠이라며 지난주 이후 생활에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보셨다.
‘설마 점심때 일 때문인가?’
‘어디 보자. 오늘 메뉴 선택지 5개를 서영이가 정했고, 그중에서 골라 함께 점심을 먹은 것뿐인데.’
그러고 보니 집으로 오는 길에 “오늘은 내가 점심 메뉴 12345번 정했어요.”라고 여러 차례 말했던 기억이 났다. 선생님께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서영이는 작은 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서 자존감이 크게 올라가는데 그 결정의 이행을 엄마가 함께 해줬으니 기분이 더 좋았을 거라 하셨다.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눈으로 아이를 봐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서영이의 자존감은 매주 한 뼘씩 자라고 있다. 통화를 마치고 조금 있으려니 딸이 돌아왔다. 찬바람에 가득 상기된 얼굴로 다녀왔다고 씩씩하게 인사하는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울 딸, 저녁 뭐 해 줄까?”
“음... 됐어요. ‘한 끼’ 타 먹을래요.”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