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낳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쿵쿵쿵.
지하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을 향했다. 소리의 진원지는 지하철 개폐문 반대편,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과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한참 실랑이 중이었다. 아이는 연신 제 머리를 지하철 창문에 들이박았고 어머니는 그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부렸다.
“내가 가자고 했잖아. 가자고 했어, 안 했어?”
고목나무처럼 덩치 큰 아이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눌한 말투로 짜증을 부렸고 매미처럼 자그마한 엄마는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안절부절못하였다. 모른 체하고 싶었지만 내 눈길은 자꾸만 그 모자를 향했다. 일요일이라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속닥거리는 이야기도 다 들릴 듯한데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창문을 들이박고 있었으니, 휴대폰을 보고 있어도 모두의 신경은 두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악!”
외마디 비명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엄마의 팔을 주먹으로 내려친 것이다. 엄마는 아픔을 이기지 못했고 순간 당황하여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아이는 엄마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잠깐 주춤하는 듯했지만 이내 씩씩거리며 다시 폭주했다. 마침 하차 안내방송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명덕역이었다. 그곳이 목적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 엄마는 그만 내리자며 떼쓰는 아이의 소매를 끌어 열차에서 내렸다. 창문 너머로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 엄마를 때리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남 일 같지 않아 나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매일 딸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들던 시절이었다.
서영이는 다섯 살 때 대구대 특수교육센터에서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담당 선생님이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발달 상태를 관찰하는 동안 남편과 나는 방대한 부모용 설문지를 작성해야 했다. 서른 장은 족히 넘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답하라는 지시에 빠른 속도로 설문지를 넘기던 그때 내 눈을 사로잡는 질문 하나가 있었다.
‘나는 20년 후 내 아이와 ___________ 하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질문만은 떠오르는 대로 답하고 싶지 않았다. 서영이와 나의 20년 후 미래라고 생각하니 아무 말이나 적어낼 수 없었다. 나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후 빈칸에 ‘속 깊은 이야기를’이라고 적어 넣었다. 나중에 상담 선생님이 설문지를 넘겨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쓰시다니 그래도 어머니께서 참 낙관적이시네요.”
낙관적이라니! 모든 부모는 낙관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가장 긍정적이어야 할 분이 왜 저렇게 부정적일까? 발달장애아 부모들이 어떤 심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으며,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지 저분은 모르는 걸까? ‘사과는 빨갛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당신 아이는 발달장애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앞이 캄캄해져서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가 왜 그렇게 낯을 가리는지, 왜 그렇게 장난감을 일렬로 세워두는지, 왜 그렇게 걸음마와 말이 늦었는지 알게 되자 우리 부부는 마음이 바빠졌다. 종일 일터에 매여 있는 나를 대신해 남편은 일주일에 세 번 아이의 언어치료와 놀이치료에 나서주었다. 서영이는 의사 표현을 전혀 하지 못했다. 센터의 특수치료만 믿고 기다리기에는 진행 속도가 너무 더뎠다.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아는 어휘가 많지 않으니 당연히 말 못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2011년 2월, 우연히, 정말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렀다. 책이라고는 한 자도 들추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지성’이라는 작가가 쓴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매대 위에 쫙 깔려 있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책을 들어 책장을 펼친 곳에 ‘인문 고전 독서교육은 지능이 낮은 아이를 천재로 변화시킨다’는 글귀가 있었다. 좀 더 아래를 훑었다.
‘인문 고전 독서교육은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지적으로 성장시킨다.’
도끼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책값을 계산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인문 고전이란 생소한 단어가 궁금해졌다. 세월을 이기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문학, 역사, 철학(문사철)을 지칭하는 단어가 인문 고전이었다. 문사철을 아이에게 읽혀야 아이가 똑똑해진다는 데 그걸 읽히기에는 내 수준이 너무 형편없었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었다. 활자의 힘을.
매일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에게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어 주었다. 하루 종일 일터에서 학생들과 말씨름하다 들어오면 진이 빠져 입에서 단내가 찼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언어교육은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에 아이는 책을 읽어 줘도 별 반응이 없었다. 책을 읽는 소리에 전혀 관심 없었고 책을 나란히 늘어놓거나 크레용으로 책장에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었다.
세 돌 때 한글을 뗐니, 빨리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하느니 하는 극성 친구들을 만나면 괜히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20년 후 다짐을 떠올리면 그렇게 찌그러져 있을 수가 없었다. 20년 후면 내 나이 60이 될 터였다. 그리고 서영이는 20대 중반이 될 것이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엄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딸들이 몇이나 있을까? 말 한마디 못 하는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건 아닐까? 하지만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몇 권씩, 그렇지 않을 땐 책 한 권 겨우 읽어 주다 잠이 들길 1년이 훌쩍 지났다. 일곱 살 서영이에게 “우리 공주, 오늘도 책 읽을까?” 했더니 서영이가 종종걸음으로 책꽂이로 가서 책을 한 권 뽑아 왔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이었다. 주인공 이슬이가 동생을 돌보느라 바쁜 엄마 대신 생애 첫 심부름으로 우유 사 오기에 성공하는 이야기였다. 우유를 사기까지의 난관들을 극복하고 거스름돈까지 챙겨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길, 마중 나온 엄마와 동생을 발견하고 신나게 달려가는 이슬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그날부터 이슬이는 서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잠자기 전 두 번 이상은 읽어 주어야 책을 머리맡에 올리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