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통지서가 날아왔어요
본격적으로 치료와 돌봄을 병행하며 실낱같은 희망에 행복해하던 겨울이었다. 출근길 우편함을 열었더니 취학통지서가 놓여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로 배정되었다는 안내서와 예비소집일에 해당 학교로 갈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아이의 고사리손을 꼭 잡고 가방을 대신 둘러맨 엄마들이 학교 정문까지 줄을 이어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대열에서 함께 걷는 우리의 모습을 나는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오다니. 어린이집으로 보낼 때와는 확실히 다른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입영통지서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아이를 맹수가 득실거리는 정글로 떠나보내는 것 같은 불안감에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막 행복을 찾은 우리 가족의 삶을 방해하는 막무가내 불청객, 취학통지서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그렇게 하면 불청객이 제 발로 떠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방과 후 아이들과 영어 수업을 하던 때여서 1학년들의 학교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많았다. 유치원생 티를 벗지 못한 1학년 아이들과의 영어 시간은 무질서와 혼란의 연속이었다. 집중은커녕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고 여기저기서 꼬물거리는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대응하다 보면 수업 시간 40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아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고, 발랑 까진 또래보다 어리숙한 아이들은 무리에게 치이거나 놀림받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처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끌어주는 선생님은 보기 힘들었다. 이런 교실 분위기에서 발달도 느린 데다 의사 표현도 깜깜한 딸아이가 하루라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질병이나 해외 이주 등의 사유가 있으면 취학 유예를 할 수 있다는 행정복지센터 직원의 말을 듣고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 교육 문제만큼은 한마음이던 남편과 이번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남편은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고 무리에서 적응하는 법도 배워야 하니 제 나이에 입학 절차를 밟자고 주장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산만한 아이가 하루 종일 갑갑한 교실에 갇혀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이제 겨우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여 말문이 조금 트인 아이를 든든한 울타리 하나 없는 새로운 환경으로 등 떠밀어 보내야 한다니. 너무 애처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웬만한 건 다 양보할 수 있지만, 아이의 학교 문제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어서 나는 남편에게 내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아무리 대화를 나누어도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에 답답했고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마저 고개를 쳐들었다. 왜 여덟 살이 되면 아이들을 학교라는 달리기 경주 출발선에 세워야 할까? 과외 수업을 더 받거나 덜 받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호에 맞춰 일제히 출발하여 달리는 과정마저 같으니 우리는 개인의 격차는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만 자꾸 비교하게 된다.
‘쟤는 우리 아이랑 같이 출발했는데 벌써 저만큼 가 있네. 우리 아이는 뭐가 잘못된 걸까?’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같은 출발선에 세우고 같은 내용을 가르친 후 이해와 습득 정도를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하여 다음 종착지를 향해 또 다른 줄을 세우는, 작금의 교육이 못마땅했다. 옛날의 서당처럼 배움의 시기를 각자 상황에 맞추면 안 되는 걸까? 일찍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아이와 1, 2년 늦게 합류하는 아이의 수준 차이를 흔쾌히 인정한다면 또래 간의 비교나 경쟁이 훨씬 줄어들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부부는 한참을 대치하다 주위 의견을 구해 보기로 했다. 어린이집 원장님과 발달센터 원장님은 물론 특수학교 교사인 지인과 내가 근무하던 초등학교 선생님께도 조언을 구했다. 모두 나와 생각이 같은 건 아니었다. 아이가 생각보다 학교에 잘 적응할 수도 있고 학교생활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테니 입학 유예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따뜻한 조언들이 모였다. 나와 다른 의견이었지만 관심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새기며 남편과 며칠 더 고민하다 우리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학교는 한 해 더 준비한 후 보내기로. 어린이집에 1년 더 보내고 센터 수업도 형편 닿는 대로 시켜 보기로 했다. 매일 저녁 책 읽어주기 루틴도 계속했다.
뭐든 결정을 내리기 전엔 마음이 우왕좌왕 불안한 법이다. 두 갈래 길을 모두 갈 수 없으니 내가 가 보지 못한 길이 정답일까, 싶은 마음에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굳게 내린 결정을 두고 갈팡질팡 돌이킬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1년을 알차게 보내는 데 최선을 다하자 결심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입시 준비하는 수험생 가정처럼 입학이라는 목표를 향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학교에 간다고 믿고 있던 아이는 다음 해에도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친구들이 떠난 교실에서 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낯선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또래 사이에서 늘 동생 취급만 받던 서영이가 어린이집에서 언니, 누나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 것이다.
나이에 따른 서열에 상당히 엄격하셨던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서영이 언니’나 ‘서영이 누나’로 불러야 한다고 했고,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었던 아이들은 깍듯이 딸아이의 이름에 언니나 누나의 호칭을 붙여 불러주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외동딸로 자라 손위나 손아래 개념이 없던 서영이가 호칭이 주는 무게감 덕분에 한껏 의젓해졌다.
동생이 울면 다가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독이고 눈물도 닦아주었다. 먹을 것이 생겨도 꼭 동생들과 나눠 먹었다. 어디에 가면 손아래 동생이 있는지부터 궁금해했다. 그때부터 생긴 서영이의 동생 사랑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입학 유예로 가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관계의 기술을 익힌 셈이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다가오면 제 나이에 바로 입학시킬지 1년을 유예할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발달장애아 부모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 그 1년 때문에 아이 인생에서 큰 손해를 볼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도 저도 어리기만 했던 그 시절을 지나고 보니 어느 쪽이든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걱정했던 것보다 적응을 잘할 수도 있어요. 혹시 아이가 늦되어 새로운 시작이 불안하다면 한 해 유예해도 괜찮아요. 언어나 인지 학습 등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을 착실히 준비하는 시간으로 할애할 수 있어요.
출발이 조금 늦다고 아이의 인생이 뒤처지는 건 아니랍니다. 저마다의 상황에 맞추되 아이를 위한 계획에는 언제나 여유를 가지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면 좋겠습니다. 적령기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인생의 변곡점을 모두 같은 시기에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