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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Sep 27. 2024

퍼즐은 좀 맞춥니다만

삶은 함께 맞춰 나가는 것

서영이에게 장난감은 가지고 노는 데 쓰이는 물건이기보다 장식품이었다. 퇴근하여 고단한 몸으로 방문을 열면 바닥에 장난감이 줄지어 있었다. 자로 잰 듯 똑같은 간격을 두고 일렬로 늘어선 장난감은 볼 때마다 섬뜩했다. 장난감 통을 탈탈 털어 방바닥을 발 디딜 틈 없이 장난감으로 도배를 해 두고 아이는 안방에서 할머니와 놀고 있었다. 보는 데서 장난감을 치웠다가는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를 밤새 달래야 할 판이라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치우곤 했다.


 변변한 놀이터 하나 없는 주택가에 살고 있던 데다 일하느라 바쁘던 시기여서 아이는 늘 집에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봐주셨지만, 젊은 엄마가 아이와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놀잇감을 가지고 노는 법을 몰라서 늘어놓기만 하는 게 아닐까. 인형 놀이와 소꿉놀이를 함께 하며 상상의 공간에 장난감을 배치해 상황을 연출하고 그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의 언어와 인지 발달에 도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꿉놀이 냄비며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가상의 음식을 지글지글 소리 내어 볶고 있으면 서영이는 장난감을 몽땅 자기 앞으로 가져다가 일렬로 줄을 세웠다. 옷을 갈아입히고 치장을 마친 인형을 손에 쥐여주고 말을 걸면 옷을 홀라당 벗기고 인형 따로 옷 따로 줄지어 기찻길을 만들었다. 흡족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뚫어지게 살펴보다 비뚤어진 곳을 발견하면 살짝 틀어 일직선이 되게 했다. 심혈을 기울여 나열한 장난감 행렬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거나 하나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날은 심하게 떼를 썼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 몰랐고 저렇게 울다 숨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업었다 안았다 어르고 달래느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잠을 설친 어느 날 오후 대형 할인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담은 후 우리는 3층에 올라가 잠시 숨을 돌렸다. 그곳에는 쇼핑객들을 위한 작은 쉼터가 있어 아이를 동반한 고객들이 늘 많았다. 신발을 벗고 놀 수 있는 매트 위 작은 시소와 미끄럼틀은 줄을 서서 탈 정도로 인기 있었다.


 아이가 미끄럼 타며 노는 걸 지켜보는 동안 퍼즐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인기 만화 캐릭터를 20조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평면 퍼즐 4개가 한 묶음이었다. 서영이가 아침마다 챙겨볼 정도로 푹 빠져있던 뽀로로 캐릭터인 데다 3세 이상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어서 나는 별생각 없이 퍼즐 장난감도 함께 계산대 위에 올렸다.


 “자폐 성향이 있는 아이가 물건을 일렬로 늘어놓는 행동을 자주 한다던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서영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다 보니 그냥 넘어갈 일도 자꾸만 나쁜 쪽으로 곱씹게 되었다. 운전하던 남편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자폐 성향이 아니라 우리 둘 중 하나를 닮은 거라 우기고 싶었다.


 그래, 나를 닮은 거야. 평소에는 생활공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본체만체하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동하면 빗자루와 걸레를 집어 들고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보통은 화가 삐죽하게 솟은 날이었다. 그런 날은 스킨로션은 먼지 한 톨 없는 화장대 위에 가지런히 놓고, 책은 키 순서대로 나란히 책장에 꽂아야 직성이 풀렸다. 옷도 앞면이 같은 쪽을 보도록 길이를 맞춰 옷장에 걸어야 했고 장식장 위 물건이 약간 비뚤어져 있기라도 하면 찝찝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청소하느라 힘이 빠져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다가도 물건이 조금이라도 비뚤어져 놓여 있으면 실눈을 뜨고 미세하게 조정하여 바로 잡곤 했다. 우리는 붕어빵 모녀니까 엄마의 괴팍한 예민함까지 닮은 거라며 우기고 싶었다.


 장바구니 속 물건을 꺼내 정리하던 중 집에 오는 내내 서영이의 기이한 행동을 생각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퍼즐이 딸려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장난감을 길게 줄 세우며 분주한 딸아이에게 퍼즐 하나를 내밀었다.


 ‘볼 거 뭐 있어? 또 퍼즐 조각 분리해 기찻길 만들겠지.’

나는 옆에 가만히 앉아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퍼즐 조각을 몽땅 바닥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줄을 잇지 않고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보통 퍼즐을 맞출 때 네 귀퉁이의 굴곡진 부분을 먼저 맞추고 퍼즐이 잘린 모양에 따라 맞추기 십상인데 서영이는 상자 겉면을 유심히 보면서 퍼즐 조각을 그림에 맞게 중간부터 하나씩 맞춰 가더니 금방 하나를 완성했다.


 두 번째 퍼즐도 바닥에 쏟아붓더니 맞췄다. 이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더 빨리 완성했다. 퍼즐 조각 스무 개 맞추기 정도야 아이들은 식은 죽 먹기인가 보다 싶어 이번에는 네 개를 몽땅 털어 섞어 주었다. 서영이는 퍼즐 판 네 개를 위아래로 늘어놓고 알맞은 퍼즐 조각을 정확히 맞춰 넣었다. 80개였으니 하나씩 완성할 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각 퍼즐 판을 구성하는 기본 색조가 있긴 했지만, 한데 놓고 보니 엇비슷해 보이는 색깔과 그림의 퍼즐 조각 무더기를 어떻게 분류해 네 개의 퍼즐 판을 동시에 맞추는 건지 신기했다.


 무엇보다 물건을 늘어놓을 때 외에는 장난감 하나도 진득하게 갖고 놀지 않던 아이가 퍼즐 맞추는 시간만은 온전히 집중했다. 퍼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나는 쾌재를 불렀다. 우리 아이도 드디어 좋아하는 장난감이 생겼구나. 이제 퍼즐은 마트나 서점에 갈 때마다 우리가 사야 할 필수 품목이 되었다.


 만화 캐릭터가 담긴 작은 퍼즐은 100피스, 300피스, 500피스가 빼곡하게 담긴 명화나 풍경화로 업그레이드되었고, 물건만 손에 닿으면 꼬리 물기 하던 습관도 조금씩 사라졌다. 초등학생이 되자 설명서의 그림을 보고 입체 퍼즐도 곧잘 맞추었다. 레고 장난감도 상자 겉면의 예시 모형을 따라 똑같이 만들어 냈다. 마법의 요새와 해적선, 화려한 성이 한 시간 만에 뚝딱 완성되었다.     


작은 조각이 모여 전체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몇 달 동안 등교하지 못했을 때였다. 시간 맞춰 원격수업 듣고 선생님 지시에 따라 유튜브 링크로 접속하여 자료를 찾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일이 아이에게는 버거웠다. 선생님의 배려로 과제는 열외가 되었지만,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이를 남겨두고 출근하려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온라인 수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등교하여 선생님이 도와주시기로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던지 도움반 선생님이 보석 십자수 재료를 바리바리 챙겨 보내주셨다. 서영이 낳기 전 십자수는 즐겨했는데 보석 십자수는 처음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빨강도 채도에 따라 색의 영롱함이 달랐다. 그런 다채로운 색상의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보석을 일련번호에 맞게 구분하여 핀셋으로 하나하나 붙여 넣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다.


 재미있어 보여 도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이 아리고 손이 떨려 십자수 보드에 붙이기보다 바닥에 떨구는 보석이 더 많았다. 반면 아이는 내가 떨어뜨린 것까지 능숙하게 집어 설명서에 나온 대로 깔끔하게 갖다 붙였다. 대여섯 가지 색깔의 보석만으로 소박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던 아이는 곧 노트북 화면 두 개 크기의 작품도 척척 만들어 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긴 세월을 견디며 쉬지 않고 걸작을 작업하는 장인처럼 서영이는 지칠 줄 모르고 틈만 나면 보석 십자수에 매달렸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티끌 같은 보석이 언제쯤 어엿한 작품으로 변신하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사이에도 서영이는 묵묵히 그날의 할당량을 완성했다. 아이의 뒷모습 너머 십자수 보드에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더니 마침내 반짝이는 빨간 장미와 쏟아지는 햇살이 멋지게 어우러진 십자수 작품이 탄생했다.


 우리 아이의 공간 감각이 남다른 게 아닐까 했던 착각은 영어 천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와 더불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폐성 발달 장애아가 간혹 음악, 미술, 수학, 암기력, 기계 조작 등 특정 영역에서 평균 이상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나 서영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하지만 물건을 길게 나열하던 습관을 다른 흥밋거리로 돌릴 수 있고 관심 있는 영역은 장시간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에 끈기 있게 도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마침표까지 찍은 서영이가 너무 대견한 나머지 할 말을 잃은 채 아이의 대작을 보고 또 보았다.


 흩트려 놓으면 아무 짝에 쓸모없는 퍼즐 조각 하나도 제자리를 찾아 맞추면 이가 꼭 맞는 작품이 된다. 떨어뜨리면 눈에 띄지도 않을 깨알 같은 보석 조각도 있어야 할 자리에 갖다 붙이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딸과 함께 할 미래에도 헝클어진 퍼즐 조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일이 수없이 일어나겠지.


 때로는 어긋난 퍼즐 조각처럼, 땅에 떨어진 보석 한 개처럼 방향을 찾지 못해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날의 환희를 떠올릴 것이다. 오늘도 아이는 하루 몫의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피곤해하는 아이를 배웅하며 애잔한 뒷모습에 대고 “서영이 파이팅!”하고 외쳤다. 아이도 뒤돌아 “파이팅!”하며 밝게 웃었다.                


모든 아이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

 1989년 개봉했던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의 “레인맨”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나요? 더스틴 호프만이 의사소통이 힘들고 고소공포증이 심해 비행기도 못 타지만 숫자에 관한 기억력이 비상한 자폐 환자 역할을 맡았지요. 아무리 긴 숫자도 줄줄 외우는 장면을 보며 천재가 아닌가 경외심 마저 들더군요.


 현실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례가 있습니다. 두꺼운 전화번호부 한 권을 통째로 외우고 지하철역 이름을 모두 말할 수 있는 아이, 설명서 없이 복잡한 퍼즐 조각을 맞추거나 노래를 한 번 듣고 바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아이도 있어요.


 이렇게 특별한 재능이 아니면 또 어때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요리든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부모님도 함께 관심 가져 주세요.


 “그까짓 것 가지고 뭘 해?” “그거 한다고 밥 먹고 살 수 있겠어?”


 부모의 섣부른 판단으로 아이의 장래를 속단하지 마세요. 부족한 점도 많지만, 장점이 더 많은 아이니 까요. 아이들의 양육자인 부모가 아이들만큼 풍부하고 유연한 상상력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놀이가 직업이 되는 세상,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삶의 수단이 될 수 있어요. 누가 아나요? 우리 아이가 만든 레고 성 하나가 제2의 디즈니랜드가 될 수 있을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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