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고 싶었던 알파벳의 함정
“이거는 무슨 글자고?”
한껏 흥이 난 친정아버지가 알파벳 자석 놀이 글자 S를 서영이에게 들이밀었다. 할아버지를 마주 보며 통통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할머니가 떠먹여 주는 요플레를 받아먹던 서영이는 글자를 흘낏 보더니 혀 짧은 발음으로 “에슈”라고 말했다.
“허허, 거참. 그러면 이거는 무슨 글자게?”
알파벳 P를 보여주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서영이는 “피이”하고 대답했다. 친정 부모님은 서영이에게 연신 새로운 글자를 내밀었고 아이가 맞힐 때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으셨다. 신기한 일이었다. 보여주는 족족 알파벳 이름을 맞추는 두 살 아이라니.
뿐만 아니었다. 서영이는 알파벳을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정확하게 나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 천재가 틀림없었다. 똑똑한 내 아이의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니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수학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사 와 임신 기간 내내 풀었더니 아이가 수학 하나만은 정말 좋아하더라는 친구 이야기를 들었다. 학원 수업 준비하느라 반강제로 하던 영어 공부가 태교로 작용한 걸까. 우리 아이도 태교 덕 좀 보려나. 잔뜩 기대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이 늦되지?”
남편의 걱정 섞인 한마디가 한껏 들뜬 마음에 찬물을 뿌렸다. 두 돌이면 단어를 조합하여 짧은 문장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그때까지 아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정도였다. 그마저도 발음이 어눌했다.
걷기도 늦되었던 아이는 19개월이 되어서야 첫발을 떼었다. 걸음마 연습시키느라 몇 걸음 앞에 세워 이리 오라며 손짓하면 아이는 다리를 파르르 떨며 허공에서 두 팔을 휘젓다가 다시 네 발로 기어버렸다. 그런 딸이 추석을 맞아 부산에서 놀러 온 조카와 손을 잡고 한 발짝씩 발을 떼더니 갑자기 걷기 시작해 우리는 모두 한시름 놓았다.
“우리 집안 애들이 원래 좀 늦되다.”
딸아이가 걸을 둥 말 둥 식구들의 애간장을 태울 동안 누구보다 속이 탔을 시어머니가 아장거리며 돌아다니는 딸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남편도 말이 늦되어 대여섯 살까지도 어버버 하다 갑자기 말문이 터졌고 부산 사는 조카도 어린이집에 다닐 때까지 말을 심하게 더듬더니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말문을 쏟아냈다고 했다.
‘그래,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야. 뭐든 차야 넘치는 법이지.’
어머니 말씀에 위로받으며 나는 딸아이에게도 펼쳐질 그 어느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콩 볶아대는 조바심을 달랬다. 하지만 그 어느 날은 찾아오지 않았다. 딸아이의 언어발달은 그대로 멈춘 듯 아무 진전도 보이지 않았다. 알파벳 이름을 척척 맞혀 우리를 놀라게 했던 천재성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았다.
서영이만 보면 알파벳 모형을 꺼내 드시던 친정아버지의 반응도 점점 시큰둥해졌다. 색 바랜 알파벳 장난감은 장롱이며 서랍장 아래에서 한두 개 발견되다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홈쇼핑에서 사들였던 유아 영어책 전집은 포장도 벗기지 않은 채 책장에서 나오지 못했다. 슬쩍 비쳤던 천재성에 들불처럼 일어난 기대감도 함께 처박혔다.
누워 있던 아기가 뒤집기만 해도 부모는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생각한다는데 말도 못 하면서 알파벳 이름 아는 게 뭔 대수인가 싶었다.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보였다. 오늘은 혹시 딸아이의 입에서 유의미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오감을 곤두세우며 유심히 살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말이 늦된 아이’나 ‘아이의 언어발달’을 밤새도록 검색하며 불안이 극에 달했던 시기도 그즈음이었다.
영유아 검진에서 무료로 시행하는 발달검사에는 의사소통 영역의 언어발달 검사가 포함되어 있어요. 말이 늦어서 걱정이라면 아이의 연령에 맞춰 영유아 검진을 꼭 받아 보세요. 언어발달은 개인차도 크고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의 영향도 있어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아닌지 부모나 가족이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부부처럼 두려운 마음에 유전적 요인의 가능성을 믿고 검사를 미루면 자칫 언어 지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백날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널뛰는 기분을 다스리기보다 최대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최선의 처방입니다. 주위에 아이 좀 키워 봤다는 선무당 엄마들의 얕은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안심시키는 말에 현혹되지 마세요. 확신 없는 위안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오아시스가 될 수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