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 치유기
악몽 같았던 거제도 여행의 잔상은 그 후로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마중물 독서모임 여행 제안이 처음부터 그리 내키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데면데면한데 그런 사람들과 여행이라니. 그것도 서영이까지 데리고 감당이 될까? 즐거워야 할 여행을 우리 때문에 망칠까 봐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문득 몇 년째 버킷리스트 1번을 차지하고 있던 <서영이와 단둘이 가는 제주도 여행> 항목이 떠올랐다. 혹시 이번 기회에 그 꿈이 이루어질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독서 모임 초반에 우리 아이는 발달장애아라고 털어놓았지만, 며칠을 함께 보내는 게 괜찮을지 걱정되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진영이가 말했다.
“여럿이 가는 여행인데 뭐가 걱정이에요? 이모 셋에 어린 동생도 있으니 서영이는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동선도 아이들한테 맞춰서 최대한 무리 없이 짰고, 차로 오랜 시간 이동하지 않으니 괜찮아요. 분명히 즐거운 여행이 될 거예요.”
특수교육 전공자로 온 세상 아이들을 다 예뻐하는 공부방 선생님 진영이가 그렇게 말하니 마음이 든든해지며 용기가 생겼다.
‘그래! 서영이도 많이 컸으니 이번에는 좀 다를지도 몰라. 너무 겁먹지 말고 가 보는 거야!’
드디어 출발하는 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이번 여행 서영이와 무사히 잘 다녀왔으면 좋겠어요. 함께 하는 친구들과도 멋진 추억 만들게 해 주세요.”
기도 덕분인지 잔뜩 얼어있던 불안감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서영이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처음 만난 아홉 살 동생에게 이름이 뭔지, 몇 학년인지 살갑게 묻더니 이내 친해져 공항 이곳저곳을 신기하다는 듯 함께 돌아다녔다. 이모들에게도 깍듯이 인사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착륙 때는 살짝 긴장했지만 기내에서는 창밖을 내다보며 차분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몰고 숙소로 가며 '볼 빨간 사춘기'의 ‘여행’을 크게 틀었다.
피아노로 시작하는 경쾌한 전주 부분에서 짜릿한 자유가 느껴졌다. 가사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저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핸드폰 꺼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 줘..."
“우리 오늘은 모두 다 집에 안 들어가도 되네.”
“꺄!!!”
3박 4일 동안 아내, 며느리, 아이들의 선생님이란 속박에서 벗어나 철저히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낯선 곳에서의 나날이 너무 기대되었다.
렌터카로 30분 남짓 달려 숙소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번갈아 가며 씻고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하나둘씩 주방의 긴 탁자에 모였다. 진영이가 미리 선곡해 둔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나와 선인이는 책을 읽고 효진이는 뜨개질을 했다. 진영이는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두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집에서 챙겨간 스케치북 위에다 사인펜과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늦은 밤까지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으며 낯선 시간과 공간을 즐겼다. 다른 사람들이 무얼 하든 무심하게 각자 하던 일에만 몰두하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까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뭐야, 서영이 너무 잘 지내는데? 저렇게 순한 애를 데리고 그동안 여행 한 번 다니지 않았다니 믿기지 않아.”
첫 여행을 너무 두려운 기억으로 소환한 탓일까. 다들 알게 모르게 서영이나 내가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살펴주고 있었다.
“아직 차 타고 돌아다녀보지 않았잖아. 아마 내일 되면 왜 그런지 알게 될걸. “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다음날 늦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 선인 이모가 차려 준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자기들끼리 그림 그리며 놀고 있었다. 음식을 가리는 아이가 이모가 만들어 준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아침을 여유롭게 보내는 걸 보니 신기했다.
날씨가 맑아서 산책하기 딱 좋았다. 함덕 해변에 내리쬐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서영이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서영이가 신이 난 표정으로 읊조렸다.
“엄마, 비행기 타고 제주도 왔어요. 나랑 엄마랑 진영 이모랑 선인 이모랑 효진 이모랑 은호랑. 렌터카 타고 펜션에서 하룻밤 잤어요.”
“우리 그랬지? 비행기 타고 이렇게 먼 곳에 왔는데 짜증 한번 안 부리고. 우리 서영이 진짜 짱 멋진데!”
출발 전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서영이는 3박 4일 내내 제주도 여행을 온전히 즐겼다. 삼시세끼 잘 먹고 집에 가고 싶다고 보채기는커녕 이모들과 수다 떠느라 엄마가 옆에 없는데도 잘 잤다. 동생이 함께여서일까? 의젓한 누나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샤워는 물론이고 머리까지 혼자서 잘 감고 말렸다. 레고랜드에선 거의 반나절을 걸어 다니면서도 다리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내색 하나 없었다. 오후 내내 각자의 속도에 맞춰 레고 작품을 관람하느라 뿔뿔이 흩어졌다. 서영이는 기특하게도 동생인 은호가 혹시나 일행을 못 따라올까 싶었는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은호를 챙기고 있었다.
입 속에만 들어가면 살살 녹아 없어지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을 배가 터져라 먹으며 일행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언니, 정말 그동안 여행을 안 다녔던 거야?”
“응,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여행이 정말 악몽이었거든.”
“믿기지 않네. 서영이는 저렇게 잘 지내는데?”
거제도 여행 이야기가 과장이 심했나 싶어 괜히 머쓱해졌다.
둘째 날은 일요일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효진이와 진영이가 은호를 데리고 근처 교회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서영이도 함께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먼저 대중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한참 동안 기분 좋게 목욕했다. 옆에 앉아 계시던 인심 좋은 할머니께서 제주에 처음 왔냐며 말도 붙여주시고 등도 밀어주셨다. 몸에서 발산하는 뽀송뽀송한 향기를 맡으며 목욕탕을 나와 조금 걷다 보니 함덕 해안 주변에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조용한 카페 한 곳에 들러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달달한 크림을 스푼으로 떠먹으며 창문 너머로 갈매기가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행복감이 들었다. 혹시나 엄마를 찾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서영이는 낯선 교회에 가서도 예배 잘 드리고 성령이 임한 얼굴로 돌아왔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힐링 그 자체였다. 렌터카를 타고 이동하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 치며 떼창을 했다. 밤에는 숙소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두런두런 서로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시간을 그간 얼마나 바랐던가. 멋진 장소에서 멋진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서이기도 했지만, 제주도 여행이 더 특별했던 건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틀을 현대적인 느낌의 펜션에서 머문 후 마지막 날은 색다른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 체크인 전 근처 시장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는데, 은호가 갑자기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타지에서 여행하던 중 아이가 아파 병원까지 다녀오니 갑자기 모두 긴장모드가 되었다. 게다가 여행의 마지막 날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서 예약한 숙소는 막상 도착해 보니 사진으로 봤던 것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통 가옥을 리모델링했는데 외풍이 몰아쳐서 춥고 휑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은호야, 아파?”
“응...”
“깔깔깔깔.”
“...”
서영이의 마지막 한 방으로 가뜩이나 조심스럽던 분위기에 찬물을 훅 끼얹은 꼴이 되고 말았다. 은호가 병원에 다녀와 약 먹고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하필 서영이가 까르르 웃어 버린 거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갑자기 웃음을 터뜨려 주변 사람을 의아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서영이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서투르다. 친구가 화난 얼굴일 땐 "미안해." 아파서 울고 있으면 "괜찮아?"라고 말하도록 감정카드를 보며 감정을 익혔다. 하필이면 전후사정 모르는 은호가 아플 때 웃으면 의미 없는 웃음이 터져버린 거였다. 여행 내내 저 누나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던 은호는 자기를 보고 깔깔 웃는 누나에게 단단히 삐쳤다.
“엄마, 서영이 누나 좀 이상해.”
효진이는 짜증 부리는 은호를 방으로 데려가 서영이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생각이나 행동, 이해가 느리고 다를 수 있다고 한참 동안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그 대화로 초등학교 2학년인 은호가 발달장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해하든 못 하든 아이의 눈높이에서 참을성 있게 말해주고 아이의 끝없는 질문에 지치지 않고 답하는 효진이의 모습을 보며 내가 그간 서영이를 대했던 태도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상태를 내가 먼저 재단해 버렸구나.’
‘이야기해 봐야 알아듣지 못할 텐데 뭐.’라고 미리 판단하고 아이를 무시하던 내 모습이 스쳐갔다.
서영이에게 도움 되는 수업 정보가 있을 때 “이런 수업이 있는데 서영이는 어때?” 하며 아이의 반응을 기다려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부부는 늘 우리끼리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아이에게 통보했다.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딸아이가 떼를 써서 거제도 여행이 힘들었다는 건 핑계였을 뿐 그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서영이와 절대 장거리 여행은 갈 수 없다며 아예 시도해 볼 생각도 않고 대안을 찾지 않았던 우리의 불찰 때문이었다.
그날 효진이와 은호 덕분에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서영이 누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웃음의 포인트가 약간 다르다는 걸 수긍했는지 기분이 한결 누그러진 은호가 엄마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엄마, 힘들었을 것 같아.”
“누가? 서영이 누나가?”
“아니, 서영이 누나 엄마가.”
“...”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후 은호의 말을 전해 들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내게 ‘너 참 힘들었을 것 같아.’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어린 은호가 그렇게 말했다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은호에게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위로를 받은 셈이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이 너무 아쉬워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은호가 조금 낫자 우리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숨바꼭질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숨바꼭질이 싫었다. 내겐 놀이가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못 찾겠다, 꾀꼬리” 소리가 들릴 때까지 술래를 피해 어둡고 좁은 틈새에서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 술래가 저벅저벅 가까이 다가오면 들킬까 무서워 오금이 저렸다. 밖에서 잘 놀다가도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을 위로 쳐들며,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하면 행여나 손가락을 붙들릴까 싶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그날 40년 만에 처음으로 숨바꼭질을 했다. 한옥을 리모델링한 숙소라 숨을 곳이 많다고 누군가 말을 꺼내자 얼떨결에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난 싫어. 너희들끼리 해.”라고 말하기엔 모두가 너무 들떠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술래가 50을 세는 동안 까치발로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리는 탓에 50을 다 셀 동안 제대로 숨지도 못하고 마루청 아래에 얼굴만 가리고 엎드려 있었다. 제일 먼저 들켰다. 어리석게도 내 눈에 안 보이면 남들 눈에도 안 보인다고 생각하다니! 얼굴만 가리고 몸은 다 보이게 숨어 있던 내 모습을 보고 모두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서영이도 깔깔깔깔 신나게 웃었다. 숨바꼭질 덕분에 휑하고 을씨년스럽던 숙소가 따뜻하고 재미난 곳으로 마법처럼 변했다.
밤하늘에 별빛 향연이 펼쳐졌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흑단 같은 밤하늘을 반짝거리며 수놓았다. 바람이 찼지만 모두 윗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서영이도 지금처럼 잘 자란다면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여기 오기 전 걱정도 모두 기우였잖아. 힘들 때도 있겠지만 서영이를 믿어 보자."
희망이 생겼다.
마지막 밤까지 우리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 직장 이야기로도 모자라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제주도 여행을 미리 추억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서영이는 제주도 여행을 고스란히 스케치북에 옮겼다. 공포의 숨바꼭질 그림도 그렸는데 누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내가 몸을 훤히 드러내고 마루청 아래 숨어 있던 모습도 실감 나게 그렸다. 서영이의 그림을 들춰 보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다음 날 아쉬운 마음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어둠이 내려앉은 대구의 밤이 어슴푸레 내려다보였다. 이제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물건을 주섬주섬 정리하는데 갑자기 사위가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하다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선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웅성거렸지만 기장의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영이도 불안했는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이대로 죽더라도 여한이 없었다. 서영이와 여행 가고 싶다는 꿈이 실현되어서일까. 아니면 옆에 앉은 딸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일까. 다행히 비행기는 선회에 성공하여 활주로에 잘 안착했고 승객들은 모두 안전하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지금도 우리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니.”라며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어쩜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했냐며 한바탕 웃는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우리 가족은 마치 그간 가지 못했던 여행의 봉인이 해제된 듯 명절마다, 휴가마다 시간을 내 여행 다니고 있다. 이제는 조금 먼 곳도 다녀온다. 서영이는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며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을 즐긴다. 물론 휴게소는 꼭 들른다. 나에겐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서영이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 보는 것이다. 서영이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얼마나 멋진 기회가 많은지 보여주고 싶다. 그날을 위해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마중물 친구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