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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Aug 05. 2021

조금 변했고 조금 그대로인 일상에서

내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새롭게 살고 있어


가끔 인생에서는 변화가 작정하고 몰아쳐 올 때가 있는데 나에게는 몇 달 전이 그랬다.

최근 몇 달 동안 내 일상과 삶은 많이 변했다.


자취를 시작했다. 조금 기다린 일이기도 했지만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사실 조금 무서웠다. 기댈 곳이 없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나는 언제나 기댈 곳을 찾았다. 


'나는 원래 이렇구나'

요즘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나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창 밖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창밖에 열심히 우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청소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청소기를 돌리는 기분이 너무 좋다.


아침에는 밥보다 샐러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과일이 많이 들어간 샐러드를 좋아한다. 요즘에는 무화과가 좋다. 무화과 하면 생각나는 추억들이 많아서 더 좋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성격이 많이 변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생각해보니 영국에서 공부하며 혼자 살 때에도 이런 성격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내 성격이 나오는 것일까?


성격이 많이 차분해졌다. 내 공간에 혼자 있으면서 내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나온 결과인 것 같다.

고민거리들이 생겨도 이제는 그냥 쉽게 쉽게 해결한다. 복잡한 것들을 싫어하는 성격이 되어가고 있다.

화를 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웃음이 많아진 것 같다.

힘든 일이 있거나 무언가 걱정되는 일이 생기면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한다.

다 마치고 나면 어느새 작아져있는 것이 보인다.


나의 집을 온전히 꾸려나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자존감이 높아지고 있다.

혼자 살기에는 조금 넓은 곳일 수도 있지만 이곳을 이렇게 잘 지켜나가고 있다니!


취미생활을 즐기는 나답게 최근에는 또 다른 일을 벌였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라서 기대 안 했는데 은근히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이다. 일을 더 열심히 해야지.


얼마 전에는 회사에서 중요한 시연을 무사히 끝냈다. 임원진 분들께 칭찬을 받고 나의 팀원들에게 부족한 팀장을 따라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자신들보다 어린 선임을 따라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어려울지 알기 때문에 더 고맙다. 더 발전해야지.

더 높은 이상으로 가기 위해서 데이터 공부를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하니 더 책임감이 생긴다.


자취를 하면서 새로운 집에 택배가 계속 온다. 다가오는 내 생일의 선물들이다.

집들이를 오는 친구들의 선물들도 집안을 채우고 있다. 내 취향을 잘 아는 친구들이 신기할 정도로 모두 다른 선물들을 가지고 온다.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는 PT를 시작했다. 트레이너님 성격도 너무 좋아서 나긋나긋 잘 가르쳐 주신다. 식단도 그렇고 매일 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약간 엄마 같은 부분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밥은 빼놓지 않고 항상 건강하게 제대로 잘 챙겨 먹었음 한다.

살도 찌고 있다. 스트레스받지 않는 삶에 정착하여 그런 걸까, 먹다 보니 건강하게 찌고 있다. 운동하면서 살이 찌니까 예전에 보지 못한 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신기하다. 이번 여름에는 몇 년 전에 찜해둔 비키니를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주말 낮에 샴페인과 브런치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그런 나를 닮은 사람들 덕에 매주 주말 낮이 행복하다. 오늘도 와인 한 잔과 브런치를 즐길 예정이다.

내일은 데이트가 있다. 차분해진 성격 탓인가 예전에는 활기차고 특별한 데이트를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도란도란한 데이트가 좋다.


나만의 공간이 확실해져서 인지 나만의 생각과 시간도 확실해졌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시간도 확실해졌다.

내가 내 시간과 내 생각을 가지고 싶은 것만큼 그들도 그렇겠지.

그 사람의 시간과 생각을 존중해야지.


이 전의 나를 알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놀랄 것 같다.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여전히 친구들을 만나면 왁자지껄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는 말에 내심 뿌듯하다.

나 잘 살고 있나 봐!


다음 달에는 운전면허에 도전한다.

차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 하나씩 하나씩 꾸려나가야지.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어느새 뒤돌아보니 꽤 많은 일들이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고

지금 잠깐 멈춰보니 나도 꽤 많이 변했다.

세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사람은 이렇게 변할 수 있다.

타의가 아닌 자의라서 가능한 일들이었나.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때는 힘들고 화가 났지만 지금은 고맙다. 그런 폭풍이 없었다면 이런 시간도 없었을 거야.

안 좋았던 기억들에 행복을 빌어줄 만큼의 대인배는 아직 되지 못했지만 그때의 나에게 행복을 빌며 이렇게 잘 서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잘했어!

나도 조금씩 변하고 그 속에서 또 묵묵히 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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