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의 어려움
이사님이 퇴사하신다는 말에 나의 기분은 정말 오락가락했다.
PM(프로젝트 매니저)가 프로젝트 기획 중간에 빠진다는 것은 신입인 나에게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사실은 조금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를 일할때마다 혼란에 빠트리게 만드는 주인공이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퇴사하신 나의 '전' PM이신 이사님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이사님은 우리회사에 동업자로 오셨다. 초창기부터 계셨던 건 아니었고 내가 입사하기 5달전쯤 회사로 들어오셨다. 대표님과 건너건너 아는 사이셨던 이사님은 대표님과 꽤 가깝게 지냈지만 동시에 두분 사이에는 굉장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사님은 친근한 성격이셨고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눈에띄게 보였다. 그래서 쉽게 가까워진 분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들어가고 나서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먼저 이사님은 ux기획에 문외한이시다.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 이사님은 인테리어회사에서 영업직을 맡고 계셨고, 모바일이나 웹사이트에서의 ux기획은 해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나와 함께 기획을 해야하는 사람이 전문가도 아니고 경력자도 아닌 사람이라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사님이기에 믿고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 이사라는 직함을 달고있는데에는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사님은 열정적인 분이셨다. 처음하는 이쪽일을 재밌어하셨다. 그 모습에 일하면서 나도 함께 기운이 났던 것은 사실이다. 꼼꼼한 성격이신 탓에 매번 회의는 이사님에 의해 ppt 파일로 정리되어졌고, 나는 따로 노트필기를 해둔 것을 보지않고도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잠시, 이사님의 이런 성격들은 점점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사님의 열정은 회의를 4시간까지도 늘리곤 했다. 자고로 회의라는 것은 1시간만해도 진이 빠지는 것 아닌가.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몸이 비틀거리는데도 이사님은 4시간동안 줄곧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셨다. 나는 4시간 내내 그 아이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려하는데 시간을 썼다. 이사님이 내신 아이디어는 물론 좋은것도 많고 획기적인 것도 많았지만 확실히 개발자입장에서 부담이 되는 것들이 많았다. 또한 ux디자이너인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굳이 필요한가 싶은 부분까지 말씀하시곤 하셨다. 너무 재밌어하시는 이사님의 표정때문에 나는 4시간동안 회의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님의 정많은 성격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대응에 민첩할 수 없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사실 왠만하면 받아주는 것이 맞고 그것이 일하기에도 편하지만, 정해진 가격과 일정안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은 어느정도 돌려서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서 제시하는 것이 옳다.-개인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이사님은 특유의 정많은 성격탓에 클라이언트미팅이 끝나면 엄청난 수정사항을 들고오곤 했다. 물론 기획단계에서의 수정이었다면 아무도 불만이 없었겠지만, 디자인 중이거나 개발이 들어갔을 때의 이사님의 발칙한 행동은 프로젝트 멤버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이사님은 프로젝트 멤버나 대표님에게서 이런 분위기를 느끼신 듯 했다. 스스로가 갑자기 회의시간을 1시간정도로 줄이겠다고 선언하셨다. 이사님과 회의를 자주하던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결정에대한 후폭풍은 더 대단했다. 이사님은 회의하지 못하는 대신에 엄청난 서류를 만들어내셨다. 본인의 아이디어와 앞으로의 일정 등 중복되는 내용들이 가득담긴 문서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것을 똑같은 내용인 줄 알면서 읽어내야 했다.
이사님은 퇴사하시기 몇주전부터 대표님과 크게 싸우곤 하셨다. 자존심싸움은 점점 유치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백기를 든 건 이사님이었다. 중간에서 눈치만 보던 직원들은 싸움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감을 가지면서도, 이사님의 업무스타일을 좋아했던 직원들은 한편으로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사님은 결국 2주일 후 퇴사를 하셨고 이 프로젝트의 기획은 나와 대표님이 함께 맡게 되었다.
대표님과는 직접적으로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전문가는 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지 못했던 대표님의 문제를 알게되었다.
epilogue)
이 글에서 보면 이사님에게 문제가 많은듯 해보이지만 사실 이사님은 꼼꼼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좋은 분이시다. 하지만 이 분야의 지식이 없다는 부분이 프로젝트를 하는데 있어서 직원들에게 불만을 주게 된 것일뿐이다. 나는 이사님이 분명 다른 곳에서 더 잘하실 거라고 믿는다.
이사님의 끝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 선택이 이사님과 회사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선택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