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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Oct 20. 2020

우리만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

돈가스가 좋아졌어

예전에 인상 깊게 봤던 하정우, 공효진 주연의 '러브픽션'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사랑해라는 말을 그들만의 언어인 ‘방울방울 해' 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것이 처음에는 참 유치해 보였는데 사실 알고 보니 정말 자연스러웠던 일인 것이다. 그 일이 얼마 전 나에게도 있었다.


누군가를 크게 좋아하면 그 마음은 재채기만큼이나 숨기지 못한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티 나는 것뿐만이 아니다. 나 자신 스스로가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도, 참을 수도 없어서 와르륵 흘러나오는 것.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툭,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이야!


공공장소에서나 집에서는 말하기 부끄러운 애정표현의 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난 정말 참을 수 없었나 보다. 기어코 말해야겠다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조심스럽게라도 말한 그 문장을 휴대폰 건너편에 있던 남자친구가 잘못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들었는지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돈가스..?!


돈가스? 보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돈가스로 들을 수가 있어...? 출근길 내내 웃느라 혼난 지하철. 그 이후로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고 싶다는 말을 돈가스라고 하기로 정했다. 우리는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을 치즈 돈가스나 고구마 돈가스, 혹은 고구마 치즈 돈가스 등으로 표현하며 보고 싶은 만큼의 마음을 토핑에 담았다. 때로는 돈가스라는 말 조차도 작게 얘기하곤 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들을 텐데 그리 말한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돈가스라는 단어가 더 이상 음식 이름으로 들리지 않기 때문 아니려나.


우연히 잘못 들어서 시작된 우리만의 언어 '돈가스'가 생기고 나서부터 나에게 이 음식은 더 특별해졌다. 사실 무얼 먹고 싶냐는 질문을 들을 때 한 번도 돈가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이것이 특별한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순간부터 돈가스를 먹을 때마다, 돈가스 집을 지날 때마다, 말할 때마다 생각나버리는 것 아닌가. 가끔은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말하고 혼자 피식하고 웃는다. 마스크를 써서 정말 다행이야.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음식 이름을 붙이다 보면 이제 모든 음식이 다 달달해져 버려 살이 더 쪄버리고 말겠네.


숨길 수 없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말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서 만드는 것. 참지 못하는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말하고 싶은 마음. 그걸 공유하는 것이 우리만의 언어가 아니려나. 보고싶어가 돈가스가 되고 나서부터는 보고 싶다는 말이 더 특별해졌다.

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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