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함께 리트릿

[북스테이] 파크로쉬, 정선 / 『The Incendiaries』Kwon

by 예주연

한 달 전 코로나19 때문에 중국 여행을 취소했다. 독일 유학 시절 만난 중국인 친구와 가족까지 대동해 다 같이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 같지 않던 코로나19의 추이가 심상치 않아 바로 전날에 취소해야 했던 것이다.


황금연휴를 그냥 버릴 수는 없어 국내로 눈을 돌려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가면 밖에 나올 필요 없이 숙식은 물론이고, 여가 시간을 채울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곳이라고 했다. 갑작스레 변경한 여행이라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가족과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리트릿 여행에 안성맞춤이었다.



강원도 산골짜기 굽이진 길을 반나절 정도 달렸다. 목적지 근처에 다다르자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설마 저게 리조트인가 실망을 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로쉬(roche)는 프랑스어로 바위라는 뜻으로 강원도 정선 숙암리에 위치하고 있다. 옛 맥국의 갈왕이 고된 전쟁 중에 한 암석 밑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숙면을 취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리조트는 그런 만큼 편안한 잠과 바위를 모티브로 지어졌다. 바위로 벽을 채우는가 하면 강원도의 자작나무, 단풍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명상, 요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체크인을 할 때 일주일 동안의 프로그램 스케줄을 받아서 전화로 쉽게 예약할 수가 있었다. 나는 욕심을 부리느라 저녁 명상, 요가, 오전 명상을 다 신청했다가 쉬러 온 곳에서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인 6시에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 명상 수업에 가서는 "잠 잘 자는 법"을 배우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편안한 잠을 추구하는 곳이니만큼 방 안에도 커피 대신 차가 다기와 함께 놓여 있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차 종류를 선택해 우려서 창가 소파에 앉아 홀짝대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밖에서 봤을 때는 볼품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주변이 개발되지 않아 시야가 탁 트이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산의 품 안에 안긴 듯 아늑했다. 연휴 동안 미세먼지도 없고 공기도 적당히 차가워 청명했다.



리조트에는 라이브러리도 있었다. 숲, 자연, 건축, 예술 등을 다룬 흥미로운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 있고, 감각적이면서 편안한 소파들이 있어 오래 머물기에 좋았다. 나는 사두고 바빠서 읽지 못했던 밀린 책들을 읽는 기회로 삼았다.



이렇게 휴식에만 집중하던 설 연휴가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내국인 감염자가 나오는 등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다. 서울로 돌아가자 모두들 그 얘기였다. 내가 중국 여행을 취소했다는 걸 들은 지인들은 안도하고, 중국에 대한 편견과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고 잠잠해지나 했던 바이러스가 대구 신천지를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대구는 나의 고향이기도 해서 사건이 터지기 전에 부모님 댁에 다녀온 바람에 직장의 권고로 지난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관계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친구도 못 만나고, 당분간 고향에 갈 수 없어 이산가족 신세가 되어 버렸고, 모임도 줄줄이 취소되어 혼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집 안에 갇혀 있으려니 무척 답답했다. 뉴스를 확인한다는 핑계로 계속해 새로고침하는 인터넷 창 안에는 불안하고 화난 사람들의 이런저런 추측과 날 선 댓글들이 가득했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가족이 신천지에 걸려들어 겨우 빼냈다는 이야기를 도시 괴담 같이 접하다 드러난 신천지의 규모와 실체가 놀라웠다. 처음에는 이런 비상식적인 교리를 왜 믿는 걸까 싶었는데, 포섭 방법이 교묘할 뿐만이 아니라 이 시국에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여 사실을 곡해 편집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 선동해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과 그걸 믿고 열심히 퍼 나르는 이들의 모습도 사이비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설 연휴 동안 읽은 책 중 하나가 사이비 종교를 다룬 소설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리즈 오경 권(R. O. Kwon)의 『The Incendiaries』로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영어 원서로 읽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가 믿음 잃은 남자 윌이 여자친구 피비가 사이비 종교 모임에 빠져들어 점점 과격하게 변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내용이다. 피비는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한 이로, 그걸 처절하게 깨달은 날 평소 안 하던 운전을 우겨서 하다 교통사고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던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있다. 삶의 의미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그걸 되찾고 싶은 마음, 어딘가에 전적으로 기대고 싶은 마음이 아프게 와 닿았다.


People with no experience of God tend to think that leaving the faith would be a liberation, a flight from guilt, rules, but what I couldn't forget was the joy I'd known, loving Him.
- R. O. Kwon, 『The Incendiaries』123p.


그리고 그런 취약점을 이용해 파고드는 사이비와 자신의 회의를 감추기 위해 더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신도의 악순환... 사이비 종교의 리더 존 릴은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중국 국경지역에서 탈북민을 돕는 일을 하다가 북한에 납치되어 강제수용소 생활 뒤 풀려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특이한 이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단주의 주장을 펼치고, 거기에 적지 않은 사람이 가담하며 소설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우리도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각자의 방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차단한 채 인터넷에 접속해 우리가 믿고 싶은 정보만 선별해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정치 성향도, 생활 습관도 달라 정선 리조트에서 함께 지내면서도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가족, 나와 정반대 성격과 성장 환경을 가지고 있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 가끔은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중국인 친구가 그리웠다.


당분간 사람들을 대면해서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코로나19로 주어진 이 리트릿 기간 동안 나는 책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작가가 자신의 사상을 주입하려고 쓴 프로파간다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은 다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으니깐. 『The Incendiaries』도 윌의 시선 뿐 아니라 피비와 존 릴의 이야기가 담긴 챕터를 교차시키며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목소리들에 때론 공감하고 때론 부딪히면서 내 사고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가짜 뉴스와 사이비 등에 넘어가지 않도록. 『The Incendiaries』서 묘사하듯 완벽한 믿음을 잃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의심하고 방황하면서 우리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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