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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Jun 15. 2020

신념을 실천하기

[북스테이] 생각의 오름, 제주도 / 공정무역 손바늘질 동화책

제주도는 마을마다 특색이 있었다. 지난 화에서 소개한 종달리도 예뻤지만 그다음에 간 송당리도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웠다. 송당리는 소나무로 만든 신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무려 18개가 되는 오름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무조건 바다파인 나도 싱그러운 녹색 언덕 사이에 들어선 아기자기한 마을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중 내가 오른 오름은 18개의 오름에 더해 지어진 '생각의 오름'이란 곳이다. 인문 서점 겸 북카페 '제주살롱'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공간으로, 책방 뒷문의 비밀스러운 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주인 부부가 생활을 하는 2층을 지나 3층에 다다르면 다락방 두 개가 나온다. 각각 동쪽과 서쪽을 향하고 있어 일출과 일몰 중 감상을 희망하는 쪽을 선택해 방을 고를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을 택하든 옥상 테라스에 나가면 뻥 뚫린 전경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창 곁에는 책상이 놓여있고 심플한 침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아늑한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하루 종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천창이다. 방명록에 따르면 내가 묵기 하루 전에 묵은 게스트가 이곳에서 별똥별을 보기도 했다고!



다음 날 아침 서점 문을 열기 전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집 마당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 샐러드와 감자 수프로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였다.


서울 출신으로 제주도에 여행을 왔다가 반해 집을 지어 서점과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1층 공간은 책을 파는 서점과 진열된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로 나뉘어 있었다. 손때 묻은 소장 책들이 묘한 감동을 주었다. 에리히 프롬의 책도 많았는데 "소유보다 존재" 등 그의 책 구절들이 벽 곳곳에 붙여져 있었다. 나도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철학자라 반가웠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으로 채운 집을 지어 사상을 벼리며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급자족하고 싶다던, 잊고 있었던 꿈이 떠올랐다.


송당리의 매력을 알아챈 게 주인 부부와 나뿐만은 아닌지 마을에는 특색 있는 공간들이 많았다. 그중에 SNS로만 보던 활동가 김키미가 운영하는 '달빛서림'이 있었다. 오래된 난로와 선풍기, 여기저기서 모아 왔을 옛 가구와 나무토막을 괴어 만든 책장 등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장에는 제주도 환경, 생태, 신화, 로컬 문화에 관한 책들이 가득했다.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팟캐스트 《네 시 이십 분 라디오》을 통해 그녀가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 모임'의 일원으로 농성을 하러 떠났으며, 그에 따라 '달빛서림'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비자림은 송당리 가까이에 위치해 나도 '생각의 오름'에 가던 날 다녀왔던 곳이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비자나무가 조선 시대 과도한 세금정책에도, 가구재로 대량 반출해가던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아 500~800년 수령의 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이었다. 제주도에는 강이 없어 빗물이 스며들어 깨끗한 물을 만들어내는 숨골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산책 내내 이런 숨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과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숲을 통하는 길을 확장하려는 공사가 계획 중인 것이다. 실제 삼나무를 베어내다가 '시민 모임'이 팔색조 등 멸종위기 생물을 발견하면서 중단했다고 한다. 정부와 개발업자들이 한 자체 환경평가가 부실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고단한 싸움을 시작한 그녀에게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민주주의란 다른 이에게 내 권리와 의무를 맡겨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당연한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방 안에 앉아서 보고 "좋아요"만 누르지 말고 실제로 나가서 힘을 보태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꼭 비자림로가 아니라도 주변의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기를". 오랫동안 그녀의 활동을, 수년 전 월정리에서 ‘고래가 될 카페’를 열었다 닫고, 송당리로 옮겨오기 전까지 강정에서 ‘달빛서림’을 열었다 닫는 것을 온라인에서 지켜보고 흠모해오기만 했기에 뜨끔했다.


그녀가 말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얼마 전부터 동네서점에 가면 책을 구경만 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소 한 권씩을 꼭 사려고 한다. 온라인 대형 서점에서 사는 것보다 할인과 적립금 면에서 손해고, 무거운 책을 낑낑대며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불편할지 몰라도 그게 자신만의 큐레이션으로 세상에 좋은 책을 알리고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빛서림' 방문에서는 라오스에서 공정무역으로 들여왔다는 손바느질 동화책을 구입했다. 몇 장 넘기면 끝나버려 선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의미 있어 두고두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잊고 있던 꿈을 찾다. 그리고 그 꿈과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조금씩 노력해갈 것이.


*생각의 오름 북스테이 유튜브 보러 가기:

https://youtu.be/VTbYydgdJ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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