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축축하게 내렸고, 집에 가는 길에는 황홀할 만큼 각양각색을 뽐내는 낙엽길이 만들어졌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낙엽을 밟고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어릴 때는 낙엽을 기다리고, 온전한 것을 찾아 살피고, 색과 모양을 분류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주워 갖는 것이 참 좋았다. 가장 아끼는 책의 아끼는 구절마다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모양과 색의 낙엽을 끼워두고는 했다. 아니면 아끼는 사람에게 잘 펴지고 단단해진 낙엽을 선물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잎은 뗄 수가 없는데 가을만 되면 심지어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 잎들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
마음대로 주울 수 있고 가질 수 있으니 나에게는 그것은 황금이 땅에 떨어지는 계절과도 같았다.
나이가 들고 낙엽을 주운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대학 다니던 시절 은행잎에 물이 고인 것이 예뻐 핸드폰 카메라를 무심히 켜 사진을 찍고는 돌아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예쁜 것들을 그저 쓰레기통에 담기도록 놓아둔 나는 그때의 나와 얼마나 다를까
지금은 눈에 카메라 롤에 담을 마음이라도 남아있는데
이제 곧 그 마음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번 가을에는 꼭 마음에 드는 잎 하나를 아끼는 책 구절속에 잘 물들도록 숙성해두었다가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