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일하던 시절에 상수동을 참 자주 갔다.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상수동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카페의 원두 라벨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기도 했다. 또 그와 별개로 그때 나는 그 동네를 참 좋아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때 그 동네는 늘 볕이 좋았고, 커피가 맛있었고, 길에 꽃을 잔뜩 쌓아놓고 아무 신문지나 투명 비닐에 대충 싸서 파는 곳이 많았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앉아 친구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해가 길어지던 때라 낮 근무를 마치고 나와도 하늘이 푸르렀다. 저녁을 먹을까 하며 걷던 길에 꽃을 파는 노점을 맞닥뜨렸다.
그날은 로즈데이였다. 난 물론 몰랐다.
친구도 모르고 있었다. 친구는 여자 친구에게 주기 위해 장미를 한 단 샀다. 옆에서 어물쩡거리다 괜히 나도 스타티스를 삼천 원어치 샀다. 로즈데이니 저녁은 애인과 먹어라 친구를 보내고 보라색 스타티스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병에 꽂았다. 삼천 원어치 꽃을 나눠 담는데 맥주병이 5병이나 필요했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빈병들에 담긴 기다란 보라색들.
마음에 드는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