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와 에어컨 바람에 지쳐 산책을 나왔다. 덥긴 해도 형광등 기운이 눈에서 사라지니 살 것 같았다.
우리 집은 현관문을 나와 오분만 걸으면 탄천과 연결이 된다. 늘 사람이 많은 길인데, 코로나가 심각해진 영향인지 너무 더운 날씨 탓인지 사람이 없었다.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면서도 늘 사람이 많아 혹시나 재촉당하거나 사고가 날까 무서워서 자전거 탈 생각을 못하는 곳이었는데 사람이 없어서 용기를 내 카카오 바이크를 빌리고 반찬가게까지만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반찬가게까지 사람은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은 버리고 여름 기운 가득한 바람과 반짝이는 물빛과 온몸에 느껴지는 달그닥거림에 한껏 집중할 수 있었다.
저녁거리를 사들고 돌아서 걸어오는 길,
‘우리 동네는 역시 정말 걷기 좋은 곳이구나!’ 하고 이 동네 길을 7년째 걸으며 매일 하는 감탄을 또다시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늘 산책하기가 좋은 동네에 살았다. 걷는 게 좋아 그런 곳에 살게 된 건지 좋은 곳들에 살다 보니 걷는 게 좋아진 건지 모르겠다. 그저 집에서 머리가 복잡할 때나 혹은 티브이나 보며 누워있는 시간이 싫을 때 튀어나와 익숙하게 걸을 길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이다.
이사를 하고 나면 집을 나와서 어느 루트로 걸을 것이냐를 제일 먼저 정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며 가장 마음에 드는 길을 탐색한다.
성신여대 앞에 살 때는 예쁜 카페와 테라스가 있는 술집들이 즐비한 골목의 손님들을 염탐하며 성북천까지 걷고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돌아오며 천변에 있는 삼겹살집들 냄새도 맡고 오리들 구경도 하고 마지막으로 단골 바에 들리는 코스였다. 대학로에 살 때는 아르바이트하던 가게를 거쳐 낙산공원까지 올라갔다가 마로니에 공원 입구에서 커피를 샀다. 버스킹을 하고 있으면 꼭 구경을 하고 들어왔다. 겨울엔 커피가 식으면, 여름엔 얼음이 녹으면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 알맞았다.
한번 가장 맘에 드는 코스를 선택하면 다른 길로 가는 법이 없었다. 혼자 있으면 늘 그 길로만 걸었다. 이곳에 가족도 없고 어린 시절의 추억도 없고 월세방에 살고 있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한 길을 꾸준히 걸음으로서 이 동네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나만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