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우리 이모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
86세 이모에 대해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여든여섯 해를 살아가고 있는 이모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엔 몇 날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지만 오늘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담아내고 싶은 만큼만 담아낼 것이다.
지금 이모는 29세에 결혼한 후 처음으로 혼자만의 삶을 살고 있다.
이모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며, 책 보고 싶을 때 책 보고, 사춘기 소녀처럼 밤늦도록 깨어있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우하하.. 누가 뭐랄 것인가.. 이모가 그러고 싶다는데...
카톡이라는 신세계를 처음 맛본 이모는 발랄하고 상큼한 카톡을 지인들에게 날린다.
내게 보낸 카톡의 한 장면을 공개하자면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6시 20분
베란다에서 잿빛 하늘에 해도 회색빛으로 빛을 대지위에 내리고 있어서 사진 한컷 했어.
맑은 하늘에 붉은 해보다 오늘처럼 회색의 잿빛하늘에뜬 해님이 있는 이런 아침 내가 오늘 재수 좋은 날이구나 하고 신나네 하지
이비인후과병원 갔다가 왔는데 버스로..
안 피곤하고 버스 안에서 책도 읽었네 ㅎㅎㅎ
이제부터 자야지..
이모에게 이런 카톡을 받으면 우리들은 오늘 정말 재수 좋은 날이네 할 만큼 기분이 좋다.
아침이면 이모는 느지막이 일어나 느리게 기지개를 켜고, 베란다에 서서 오래도록 아침해를 바라본다.
커피 한잔과 호밀빵 한 조각을 먹으며 천천히 신문을 본다.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냈다는 광고를 보면 동네서점으로 전화를 넣어 책을 주문한다.
테이블에 앉아서 생일을 맞이한 지인들에게 보낼 직접그린카드에 축하글을 적고 평생을 간직한 책이나 멋진소품들을 포장하여 우체국도 다녀온다.(이제 이모는 이모의 물건들을 모두 나누어 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모의 편지글과 물건들을 받고 눈물 콧물을 흘린다.
이모는 천천히 걸어서 우체국을 다녀오며 떨어진 꽃들이나 모양이 특이한 나뭇잎들을 주워와서는 두꺼운 책속에 끼워 말린다.
이 말린 꽃들은 우리들에게 책을 선물할 때 함께 끼워 넣어준다.
이모가 보내준 책 안에서 말린 꽃과 식물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툭툭 나오면 세상 가장 조심스러운 손길로 잎사귀를 만져본다.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나는 이모가 이 꽃을 주워들은 그 시간으로 함께가 있다.
오후엔 잠시 누워 낮잠도 한숨 즐기고 찾아온 지인들과 차도 마신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면 이모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만의 시간은 또 돌아온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동생과 (우리 엄마) 하루에 있었던 시시한 일들을 이야기하며 여느 집 여자들처럼 전화통을 붙잡고 있기도 한다.
마음껏 책을 보다가 펼친 책을 배 위에 올린 채 잠이 살짝 든다.
예술가였던 독특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내것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모의 시간이 이제는 이모만의 시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들도 정신이 나갈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새로움을 익히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데.. 86세의 이모는 어찌나 세상을 빨리 배우는지.. 그런 이모가 귀여워서 웃다가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이모의 혼자서 살아가는 삶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뛰어가 바쳐줄 채비를 하고서 말이다.(옆구리에 다들 이모를 바쳐낼 매트리스를 끼고 산다)
조심조심 그렇지. 그렇게.. 천천히 오세요.. 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박수를 쳐댔는지 마음속의 손바닥은 늘 새빨개져 있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친다.
'너희 이모가 오늘 이걸 해냈어.. 정말 대단하고 너무 똑똑하지 않니?'
작년에 엄마의 아파트가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느라 엄마는 한 달 동안 지방에 있는 이모의 집으로 피신을 가 있었다.
두 자매는 각자가 그 옛날 결혼식을 한 후 처음으로 둘이서만 함께 지냈다.
79세 86세가 되어서...
두 자매는 매일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불에 나란히 누워 어릴 적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 그때 부르던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 시절 잊지 못했던 영화들을 다시 보며 감동으로 흥분하고 그렇게 난생처음 한 달을 같이 보냈다.
엄마가 서울로 다시 떠나는 날 이모는 오래오래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시기에 꿈속에서 외할머니를 만났다.
너무나 환히 웃고 계신 외할머니..
아마도 두 딸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바라보며 너무 흐뭇한 나머지 내 꿈속까지 찾아오신 듯하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86세의 이모를 상상한다.
마음으로 이모를 본다면 이모의 버스 안에서 책 읽는 모습은 20대의 새침한 꿈 많은 아가씨의 그 모습일 것이다.
누구보다 빛나는 눈을 가지고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고있는 이모를 나는 매일 안고 등을 토닥이며 속삭인다.
이모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