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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블루 Dec 02. 2024

Week 4

11월 25일 월요일- 잘못 간 택배 해결하기

뜨악.... 머리끝이 쭛볕 선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어쩐지 택배가 도착했다고 며칠 전에 문자가 왔는데.. 딸아이는 못 받았다고 하고..

혼자 사는 딸아이 집으로 이불커버와 프라이팬을 오더 했는데 주소를 3년 전 살던 뉴욕집으로 클릭한 것이다.

엘에이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5시간이다.

찾으러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고, 대체 왜 3년 전 살던 집으로 오더를 한 것일까...

이건 내 손가락의 단독범행이다.

나는 절대로 3년 전 주소를 클릭하라고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요즘 좀 풀어줬더니 버릇이 아주 나빠졌다.

붙잡고 단단히 일러줘야겠다. 명령을 내리지 않은 일을 혼자만의 생각으로 처리하지 말라고.. ^^

아침부터 스토어로 전화를 건다.

다급함과 세상 가장 불쌍한 목소리를 조합한다.

'저기 말이지.. 내가 예전에 살던 곳으로 오더를 했지 뭐야.. 여기 엘에이인데.. 찾으러 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알지 알지.. ㅎㅎㅎ 내 실수라는 걸..  ㅎㅎㅎ'

전화를 받은 인도영어를 쓰는 직원은 명랑하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주소만 다시 불러줘~~'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다 있을까?

무겁고 불안에 떨던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나의 목소리는 감격으로 한층 높아졌다.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리고 정말 정말 미안해요.

방송인 허지웅은 자신이 먹을 햇반 한 박스를 헤어진 지 오래된 전 여자친구 집으로 오더 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그는 얼마나 수많은 밤을 이불킥을 했을까 싶다.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비행기로 5시간 떨어진 거리로의 오더는 심하긴 했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며  오늘은 더 이상 개구리 못 먹지 싶다.


11월 26일 화요일-대학원 원서 작성하기

지난주에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쭉 살펴보았으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원서 작성을 시작했다.

2시간이면 충분하지 뭐.. 하며 호기롭게 시작한 원서작성은 새벽 1시에 끝을 내었다.

기가 막혔다.

머릿속의 신경이 모두 깨어 있으니 잠을 쉽게 잘 수도 없어 나의 소중한 구독자들의 글을 읽으며 머릿속이 잠을 자겠다고 선언할 때까지 기다린다.

윽박지른다고 잘 놈도 아니고.. 모른 척하며 기다릴 수밖에

새벽 3시쯤 되니 더는 못 버티겠는지 자겠다고 항복의 흰 깃발을 올렸다.

오늘은 하루종일 '개구리 먹기'로 진을 뻈으니 내일은 5분 안에 끝낼 개구리를 찾아봐야겠다.


11월 27일 수요일-끝내지 못하고 질질 끌며 잡고 있는 책 진도 좀 빼기

이 책의 제목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만'이다.

1928년쯤부터 연재를 시작한 소설 이라는데 내가 읽어본 책들 중 참으로 희한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이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 것인지 아니면 이 다니자키라는 작가가 특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인지 그의 다른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느 정도까지 진도를 뺴야겠다고 생각하며 앉았는데 읽다 보니 엔딩이 하도 궁금해서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끝의 몇 장은 정말 어이가 없어서 크게 소리 내어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어제는 오늘은 기필코 5분 안에 '개구리 먹기'를 끝내고 룰루랄라 지내야지 했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개구리 먹기' 덕분에 끝맺음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야무지게 매듭을 짓고 척척 쌓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쉬는 시간은 정말 달콤하다.


11월 28일 목요일-떙스기빙데이 저녁준비

친척처럼 지내는 지인의 집에 아침부터 방문한다.

미국의 추석인 '떙스기빙데이'에 제사를 지내는 지인의 집에서 제사가 끝나자마자 어서 와서 함께 밥을 먹자고 한다.

아침 10시에 남의 집에 방문해 함께 아침을 먹는다.

제사상은 여느 한국집의 제사상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제사상의 한가운데  커다란 칠면조 구이가 올라가 있는 것이다.

사과도 있고 배도 있고 약과도 있고 다 있는데.. 칠면조도 있다.

처음엔 칠면조의 두 다리가 가지런히 모아져 있는 제사상을 보고 웃음이 터져서.... 지금은 이것이 미국에 살아 해외교포가 된 우리들의 삶이지 싶다.

함께 탕국에 밥을 먹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에 치러질 우리 집 만의 '떙스기빙데이' 디너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치마를 척 두르고 크리스마스 음악으로 기분을 업 시켜 귀찮은 마음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도록 철통 방어를 한다.

내일은 이렇게 지낼 것이다.


11월 29일 금요일- '블랙프라이데이'에 물건 주문하기

날씨는 흐릿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저 침대에서 나오기도 싫다. 오늘은 연휴의 느낌이 팍팍 나며 파자마를 입고 하루종일 뒹굴러도 당연한 날이다.

당당하게 가장 게으르게 지낼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블랙프라이데이 쇼핑'이다.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이고 그다음 날인 금요일이 대박 세일의 날이라 '블랙프라이데이'라고 이름 붙인 쇼핑의 날이다. 보통 새벽 6시쯤 스토어가 문을 연다)

이날 일 년에 단 한 번만 세일을 하는 스토어가 꽤 있기 때문에 꼭 사야 할 물건들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지인들에게 해야 하는 선물도 이날 구입을 하는 게 좋다.

그래도 지난주에 미리 리스트를 작성해 놓은 것이 있어 훨씬 수월했다.

개구리를 성실히 먹어 놓으니 짐을 나눠서 지고 가는 느낌이다.

재빨리 끝내고 빛의 속도로 파자마로 환복 후 침대로 다이빙을 한다.^^


11월 30일 토요일-냉장고 정리

냉장고의 빛이 사라졌다.

뒤에서 환하고 산뜻하게 비춰주는 냉장고의 불빛을, 꽉꽉 채운 음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목요일에 먹고 남은 음식부터 남편이 먹다 남긴 와인까지 모두 쑤셔 넣으니 이 꼴이 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무언가 하나가 틀어진 집안일은 거기에 더욱 가세가 됐으면 됐지 나아지지 않는다.

한심한 냉장고를 열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냉장고는 냉기를 뺴앗긴다며 뺵뺵 울어댄다.

냉정하게 모른척하며 뒤죽박죽 되어 있는 밀폐용기들을 모두 꺼내어 빨리 먹어야 할 음식들은 칸을 지정해 모으고 절대 더 이상 먹지 않을 것  같은 음식은 꺼내 모두 폐기한다.

신선한 음식은 몸의 보약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냉장고 속의 재료를 없애려고 요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게 뭐가 싶다..

즐거운 마음으로 신선한 재료를 꺼내 몸에 에너지를 채워줄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더 이상 두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 같은 재료들을 꺼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으니..

미리 사두지 말자.. 좀 귀찮아도 적게! 자주 사자.

2025년 새해에 다짐할 일이 생겼다.

신선한 음식 먹도록 노력하기!


12월 1일 일요일-Y에게 연락해서 시간 약속 하기

Y는 남편 친구의 딸이다.

주재원으로 이곳에 오래 있었던 남편의 친구는 한국으로 귀국에서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 딸아이를 외국인 학교에 보냈고, 보통 외국인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대학을 미국으로 오게 된다.

Y는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학으로 오게 됐고, 혼자가 되어 대학기숙사에 남았다.

딸아이를 뉴욕의 대학으로 보냈던 경험이 있는 나는 아이가 얼마나 집밥이 그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주는 못하지만 1-2 달에 한 번은 Y를 만나 밥을 먹인다.

까다로운 룸메이트 이야기며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Y.

18살인 Y와 말이 통하는 것을 보면 내가 철이 없는 건가, Y가 그만큼 성숙한 것인가 알쏭달쏭 하다.

함께 교사를 하는 D는 95년생, 우리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재말로 대화를 하지만 여행을 가면 그곳에 사진을 보내주며 큭큭 거리며 잘 논다.

함께 자원봉사를 하는 B할아버지와는 수다를 떠느라 슈퍼바이저의 치켜뜬 눈초리를 감당해야 한다.

나의 소망은 나이를 떠나 그냥,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마음속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거기에 '너를 지지해'라는 눈빛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Y를 만나서 차돌박이와 된장찌개를 해 먹일 생각이다.

문자를 보내 시간 약속을 해야겠다.

이렇게 신나는 개구리를 먹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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