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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블루 Nov 21. 2024

Week 2

11월 11일 월요일-배추 겉절이

월요일 아침부터 웬 겉절이냐 하시겠지만,

한 달 전쯤 사다 놓은 배추 한 포기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말라죽어가고 있다고 울분을 토한다.

저 배추를 데려다가 그럴싸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선뜻 손이 가지를 않는다.

사실은 스끼야끼를 해 먹으려고 산 배추인데, 그토록 심하게 먹어왔던 육식의 절제에 들어가면서 스끼야끼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말았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가엾은 배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배추는 통째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될 터였다.

'명동교자'에서 만나게 먹던 겉절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배추의 시든 잎을 뗴어내고 하나씩 낱장으로 뜯어 가로로 반을 가르고 세로로 죽죽 자른다.

소금을 뿌려 절여지도록 내버려 둔다.

오후가 되어 말랑하게 잘 절여진 배추에 기본양념과 마늘을 듬뿍 넣어 명동교자 겉절이의 흉내를 내본다.

휘딱 만들어진 겉절이 한 작은 통을 보니 이리 쉬운 것을 안 해서 한 달이나 냉장고 문을 열떄마다 무거운 마음을 달고 살았나 싶다.

'개구리 먹기' 덕분에 매일이 개운하다.

오늘 저녁은 돌솥밥에 색깔 고운 겉절이를 척 올려서 먹어야겠다.


11월 12일 화요일-수술한 지인에게 안부 문자 보내기

8시 30분부터 스케줄이 있는 마음이 더 바쁜 날이다.

그래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일 한 가지.

지난주 월요일에 목 디스크 수술을 한 지인께 안부 인사를 묻는 일이다.

문자 한 통 보내는 일이지만 정성을 다해 최대한 조심스러운 안부를 묻는 일이므로 글자 한 자 한 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저 획 보내는 문자와는 다르다.

예전 19세기때라고 생각해 보면, 일단 드레스를 속치마까지 모두 챙겨 입고 책상에 앉아 깃털 펜에 잉크를 묻혀 정성껏 글씨를 쓴 다음 촛불로 녹인 인장을 찍고 편지를 가져다 줄사람을 불러 부탁을 하고 또 다녀온 이에게 그 집 사정은 어떘는지 물어보고.. 이렇게 복잡한 일을 이제는 손가락 하나로 해결이 되지만 이것조차도 마음을 제대로 먹고 해야 할 일이라 '개구리 먹기'에 들어갈 카테고리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볼 수 있다.

'좀 어떠세요?'라는 인사말로 시작을 한다.

'많이 불편하시죠?' 하며 지인의 고충을 이해하는 짧은 편지를 보내고 나니, 좀 있다 답장이 왔다.

음식 먹는 것도 괜찮아지고 좋아지고 있다고..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환자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답장.

지인이 병원에서 집으로 오면 달큰한 약식을 만들어서 방문을 해야겠다.

찹쌀이 몸을 따뜻하게 해 입맛 없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이 된다.

오늘도 기분 좋은 '개구리 먹기'를 완료했다.


11월 13일 수요일- 전기차에 대해 리서치하기

요즘 미국은 지나가는 차 5 대중 2대는 전기차다.

점점 전기차가 늘어나고 있어 기름을 넣어가며 차를 타는 일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제는 전기차 구입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루빨리 리서치를 해보고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전기차의 장점은 그저 경제적인 면이 가장 크다고 한다.

주행거리를 늘리려 배터리를 크게 달면서 환경에 도움이 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전기차로 바꾸면 개스값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전기차 쪽으로 기운다.

한번 알아봐야 되는데.. 했지만 마음먹고 리서치까지 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으로 미루는 일에 가장 먼저 들어 있었다고나 해야 할까.

정보를 얻고 나니 실행은 언제라도 할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11월 14일 목요일- 튀김냄비 설거지 하기

요즘 자주 해 먹는 요리는 '새우튀김'이다.

손바닥 만하게 자른 구운 김밥 김에다가 밥과 바삭하게 튀긴 새우튀김을 올리고 여린 샐러드 채소를 듬뿍 얹어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는다.

단점이라면 너무 맛있어서 한도 끝도 없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새우튀김을 하고 나면 냄비의 기름처리가 즉시 되지를 않는다.

뜨거우니 당장 설거지를 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다음 날이 되면 더 하기가 싫어진다.

일주일이 넘도록 싱크대 위에서 언제 목욕을 시켜주려나 하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를 더 모른 척하며 그쪽으로 아예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개구리 먹기'로 정했으니 무조건 해야 한다.

튼튼한 비닐봉지를 가져와 기름을 쏟아 버리고 밀가루를 조금 넣어 나머지 기름을 키친타월로 싹 닦아서 버린 후 비누거품을 낸 수세미로 꼼꼼히 닦아 뜨거운 물로 기름기를 날린다.

마른행주로 닦아 놓으니 반짝반짝한 냄비가 보기 좋다.

내가 목욕을 마친 듯 시원하다.

별것 아니지만 결과물의 만족도는 별 다섯 개다.


11월 15일 금요일-고양이들 손톱 자르기

꾹꾹이를 할 때마다 낫처럼 생긴 하얀 손톱이 나와서 이불의 올을 뜯는다.

걸어 다니면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난다.( 사실 이 소리는 듣기에 좋다.)

어깨에 걸쳐 안다가 힘주어 잡은 고양이의 손아귀 탓에 어깨가 찢어질 수 있다.

고양이의 손톱을 깎아야 할 시간이다.

이 일도 하루하루 미루다 어딘가 살이 찢어지고 피를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 부랴부랴 손톱 깎이를 꺼내드는 형국이 된다.

다행히 우리 고양이들은 손톱 깎는 일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손톱 관리받으러 온 시크한 아가씨처럼 손을 척 내밀고 가만히 기다린다.

오래 걸리면 혹 마음이 바뀌어 사납게 돌변할까 봐 빛의 속도로 손톱손질을 끝낸다.

'벌써 끝났어?' '이 집 잘하네..' 하는 얼굴로 집사의 무릎에서 사뿐히 내려가 유유자적 갈길을 간다.

오늘도 집사는 바닥에 흩어진 고양이 손톱 줏느라 마룻바닥을 기어 다니지만 그들은 눈 내리깔고 한번 쳐다볼 뿐이다.

그래도 몇 주는 손톱에 살갗 찢어질  없으니 마음 놓고 둥가 둥둥해줘야겠다.


11월 16일 토요일-화분에 물 주기

새벽 6시에 나갔다가 저녁 6시쯤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개구리 먹기'를 하기로 했으니 해야 한다.

좀 쉬운 '개구리'를 찾아본다.

집안 식물에 물을 안준지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힘이 없어 보이고 잎이 고개를 떨군다.

식물도 관심을 못 받으면 생기를 잃는다.

큰 비커에 물을 가득 담아 부어주고 분무기로 넉넉히 물을 뿌려 흡사 비를 맞은 것처럼 해준다.

식물이 기분이 좋아 허리가 쫙 펴지고 이파리들이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나도 10분 만에 '개구리 먹기'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허리 좀 펴 본다.

할 일을 외면하고 쉴 때는 '완전한 쉼'에 도달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머릿속에서 계속 '일어나라'를 외치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쨌든 나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티브이 보면서 더 크게 웃으리라.


11월 17일 일요일-뒤죽박죽 된 차고 정리하기

미국은 거의 집집마다 차고가 있고 혹 지나가다가 차고가 열려 있는 집을 보면 왠지 슬쩍슬쩍 쳐다보게 된다.

저 집은 차고에 얼마나 물건이 많은가 혹은 얼마나 효율성 있게 정리했나 하는 묘한 호기심이 인다.

생활을 하다가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물건이 생기면 일단 차고에 갖다 놓게 된다.

그것도 어딘가 제자리를 찾아 놓는 것이 아니라 아무 데나 훅 던져 놓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지만 차고 정리의 순서는 항상 맨 마지막이라 도무지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정말 큰 맘을 먹고 차고정리를 해치우기로 했다.

면 장갑을 찾아 끼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철통으로 막는다.

더 이상 안 쓰는 가구를 꼭 필요할 것 같은 지인에게 연락해 물어보니 당장 가져가겠다고 하고,

헌 물건 수거함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것들은 차 트렁크에 실어 놓는다.

여름 신발은 깨끗이 닦아 박스에 잘 넣어놓고 겨울 신발을 꺼내 가지런히 정리한다.

깨끗해진 차고에 원래 주인인 차를 세운다.

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안정을 되찾은 느낌이다.

그의 집안 상태는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라는데..

깨끗해진 차고처럼 불필요한 감정들은 모두 내보내고 살아갈 때 필요한 기쁨과 희망과 연민만 마음에 자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차 한잔을 만들어 말끔해진 차고를 바라보며 마신다.

일주일의 '개구리 먹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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