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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블루 Dec 16. 2024

Week 6

12월 9일 월요일- 영어공부

왜 나는 두루두루 다 하지 못할까.. 이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저 일이 뒤쳐지고, 그래서 저 일을 또 챙기다 보면 또 다른 일은 그런 게 있었나 하게 되니 말이다.

요즘에 내가 매일 하는 일들 중에 가장 왕따를 당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영어공부'다.

미국에 그렇게 오래 살고 있으면서 아직도 영어공부를 하느냐고 웃으실지 몰라도 이 영어공부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아이러니를 아시려나 모르겠다.

요즘 말이 안 나온다. 즉 영어가 안 나온다는 말이다.

한국말은 아무리 안 쓴다고 말이 안 나오지는 않지 않은가.. 

그것이 모국어의 힘인 것 같다.

영어공부는 조금만 소홀히 하게 되면 피아노 연습을 쉬었더니 손가락이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다.

다급하게 '개구리 먹기'로 지정, 입을 풀어야 한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영어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발음을 다시 해보고..

우 씨.... 정말 남의 나라 살기 어렵다...



12월 10일 화요일- 읽고 있던 책 끝내기

좀 오래 붙잡았던 책이다.

이 책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아두고 자기 전에 읽다가 자야지 했지만 왜 침대에 누우면 바로 넷플렉스를 틀고 싶을까...

오늘의 '개구리 먹기'는 이놈이다.

먼지까지 쌓이려고 하는 책의 책장을 다시 펼친다.

하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앞선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몇 장 앞에서부터 다시 읽는다.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이다.

지난번에 이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만'을 읽다가 박장대소를 했는데.. 이번에도 안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구애를 하도 절대 받아주지 않자, 그녀에게 정을 떼기 위해 그녀의 요강을 훔친다.

그녀의 배설물을 보면 혹시 정나미가 떨어져서 그녀의 대한 사랑이 식을까 하고..  

이렇게 징그러운 것을 배설 하다니 그녀도 역시 사람이군 하며 정을 떼려고 생각해 낸 묘안이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웃었다. 정말 기이하다. 

혹시 이 책을 보시고 싶은 분이 있을까 봐 이쯤에서 이야기를 그만둘까 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 표지를 닫으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책을 책장에 꽂는다.



12월 11일 수요일-양말사기

나는 여름에는 주로 발이 훤히 보이는 신발을 신기 때문에 양말을 많이 신지 않는다.

겨울이 되어 긴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니 양말이 문제가 되었다.

가지고 있는 양말들이 모두 발목이 짧은 양말이라 움직이다 보면 양말이 반쯤 벗겨져 신발 안에서 발 앞쪽에만 걸쳐져 있으니 무슨 일을 해도 신경은 온통 반쯤 벗겨져서 슬쩍 걸쳐져 있는 양말과 너무 싫은데도 억지로 견디고 있는 발에만 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내 정신은 발에만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의 발이 신경질이 나서 화를 팍팍 내고 있는데.. 정신이 다 혼미해지려고 한다. 

산만해지는 정신을 온 힘을 다하여 붙들고 있다고 해도 진짜 과언이 아니다.

양말을 사러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집 앞에 있는 운동화 할인점에 가서 발목이 제일 긴 것으로 세 켤레를 샀다.

저녁에 나갈 일이 있어서 새 양말을 뜯어서 신고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오마나... 딴 세상이다.

걸어도, 뛰어도, 무슨 짓을 해도 다리에 딱 붙어 있는 양말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착 붙어서 절대 내려가지 않는 양말덕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해도 자신감이 붙고 절대 집중력을 뺴앗기지 않는다.

발이 웃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 양말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오늘 글의 제목은 '양말단상'이다.


12월 12일 목요일-책상정리

매일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책상정리를 한 번씩 해야 한다.

펼쳐놓은 책에 책갈피를 꽂아 잘 덮어두고, 다 나와있는 필기구도 제자리로, 포스트잇에 휘갈겨 놓은 메모도 버릴 것은 버리고 두어야 할 것은 따로 모아 놓는다.

나는 책상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책상을 참 좋아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책상이 더 좋아졌다.

이 집안 전체를 내가 꾸미고 가꾸었지만 거의 모든 공간이 가족과 함께 쓰는 곳이다.

그러나 책상은 다르다.

내 책상은 나만이 쓰는 곳이다.

나만 앉고 내 물건만 있다.

읽고 싶어 가져다 놓은 책 몇 권, 일정을 적어놓은 책상용 달력, 영어공부를 위한 책과 노트, 일기장, 용도가 다른 수첩들, 필기도구를 꽂아놓은 컵, 간단한 문구도구를 모아놓은 나무함, 색색가지 사인펜, 향초, 메모지, 종이학을 접는 예쁜 종이로 가득 찬 상자....

책상 물품을 나열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나는 웃고 있다.^^

나의 천국이다. 

나는 책상에 있으면 모든 일을 잊고 나만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엄마도, 아내도, 딸도, 며느리도 선생님도... 아무도 아니다.

나는 그저 '미스블루'이다.



12월 13일 금요일-선생님들 선물 포장

이번주에는 한국학교가 방학을 하기 때문에 방학 전 선생님들을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 다가온다.

준비해 놓은 선물들을 포장해야 한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타주로의 이사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시게 되었다.

한국에서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하셨던 O선생님을  나는 참 좋아했다.

인자한 성품의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다.

O선생님을 더 이상 못 만난다는 것이 많이 슬프다는 나의 말에 동료 선생님이 눈을 동 그렇게 뜬다.

'정말 그렇게 슬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나는 왜 그렇게 슬픈 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있는 이곳을 방문한다. 우리 집에 며칠 머물기도 하고 호텔에 머물려 밖에서 만나 놀기도 하지만 며칠 후, 몇 주 후엔 결국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다. 

나 역시 한국을 방문해도 아쉬워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두고 떠나야만 한다.

늘 작별인사만 하는 나는 누군가 떠나는 것이 몸서리치도록 싫게 된 것 같다.

한국 방문 후 집으로 돌아올 때쯤 되면 마지막으로 만나는 지인들과 작별인사를 한다.

'안녕..' '잘 지내...' 또 올게...' '갈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나 같아서 많이 울었다.

'나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가...


12월 14일 토요일-햄버거 먹기

왜 햄버거 먹기가 '개구리 먹기'에 들어가는지 의아하실 것이다.

한 달에 한번 크레딧 카드 회사에서 주는 멤버십 혜택이 있다. 

온전히 주는 혜택이 아니라 내 돈도 좀 내야 한다.

그래도 안 쓰면 없어져 버리니 아까워서 쓰긴 하는데.....

햄버거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소비자에 이익인가/ 카드회사에 이익인가/아니면 햄버거 가게에 이익인가?

강제로 햄버거를 먹으며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으음... 햄버거가 맛있네~~~





12월 15일 일요일- 마당에 있는 다 죽어가는 꽃 물 주기

여름 내내 정말 열심히 가꿨다.

엘에이는 날씨가 많이 드라이하기 때문에 여름엔 특히 키우는 꽃에 정성을 더 쏟아야 한다.

요번 여름엔 기특하게도 열심히 물을 주어 꽃들이 그렇게 힘이 있고 파릇파릇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 된밥에 재를 뿌린다고.. 더운 날씨가 사라지고 나니 마음이 느슨해지면서 꽃들을 내버려 두게 되었다. '이만하면 혼자서 할 수 있겠지? 제발 나 좀 쉬자.. '하는 마음이 슬쩍 들었던 것 같다.

오늘 항아리 같은 큰 화분에 담겨 있는 마당에 있는 꽃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랗게 핀 그 화려한 꽃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시골집의 담벼락에 걸어둔 무청시래기가 따로 없었다.

하..... 정말 집안일은 왜 이리 끝이 없을까..

조금만 손을 놓으면 재앙이 덮친다.

좋아하는 심리학자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오렌지 색깔의 금문교는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페인트를 꼼꼼히 바르며 관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금문교에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 딱 1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이유는 그냥 페인트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포로 녹슨 부분은 말끔히 갈아내며 칠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1년 동안 페인트 칠을 하여 완성이 되고 나면 맨 처음 칠한 부분이 다시 녹슬기 시작해 페인트 작업은 다시 시작이 된다고 한다.

작가는 집안일이라는 것이 이렇듯 다 하고 나면 또 어질러져 있는 곳이 생기니 금문교를 칠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손을 놓아버리지도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금문교를 칠하는 마음으로 다시 무거운 호수를 들고 물을 준다. 

무청시래기를 부채만 한 잎사귀로 다시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냥 쉬지 말고 계속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가..

인생은 누가 가장 끈기가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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