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어졌다.
결혼하고 8개월 정도 후부터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사라졌다.
평생 몸이 약했던 아빠는 내 결혼과 동시에 쓰러져 8년을 병원이 집이 되어 사셨다.
엄마는 아빠의 병간호로 나에게 전혀 신경을 써줄 수 없게 되어 나는 엄마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상하게 서둘러 치러졌던 나의 이른 결혼의 이유가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나 보다라며 어른들은 수군거렸었다.
남자친구와 유학을 함께 가서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고 이른 나이에 결혼까지 해가며 시작한 공부는 아빠의 병환으로 더 이상 이어 나갈 수 없었고, 하루아침에 나는 남편의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는 가정주부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해 주시는 밥만 먹으며 학교만 왔다 갔다 하던 나는 나와 남편이 먹는 매일의 밥의 책임자가 되었다.
사막에 홀로 떨어진 비행기 조종사 같은 기분이었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친정엄마의 전화통이 불이 날 정도로 전화를 해대며 일일이 물어보며 산다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그냥 한순간에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필 한국사람도 드문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남편 덕에 나는 요리법을 물어볼 친구 하나 없었고, 그때는 지금처럼 '만개의 레시피'도 없었다.
이곳에서 식구도 친구도 없는 나는 요리책과 살림에 관한 책들을 섭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처음부터 무조건 읽어 내려갔다. 글씨로 보이는 건 다 읽었다.
재료 준비부터 손질하는 법, 요리법을 모조리 읽고 인테리어 책과 집안 정리법들을 읽으며 집안살림이라는 곳에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요리책을 말없는 엄마 삼아 나의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집안일에 열중하며 마음 깊숙한 곳으로 내려 보냈었던 거 같다.
그렇게 지금까지 100여 권이 넘는 요리책과 집안살림에 관한 책을 읽고 나니 밥상을 차리는 일은 나의 취미의 한 부분이자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일이 되었다.
언젠가 라스베이거스의 유명한 호텔에서 뷔페를 먹는데 한국음식 코너가 있었다. 잡채와 엘에이 갈비며 오이무침 김치볶음밥 등이 놓여있는데 그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잡채의 고명은 양파와 당근이 전부였고 갈비는 얼마나 단지 사탕을 먹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몇 시간만 부엌을 맡겨 준다면 같은 재료로 차원이 다른 한식코너를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한식코너를 자꾸 쳐다보며 손이 근질거려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아무것도 몰라 그토록 어렵고 서글폈던 나의 공부와 맞바꾼 부엌일들은 여행을 가도 내 부엌에 가고 싶어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요리책을 많이 읽다 보니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요리책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사진을 보면 근사해 보여, 열심히 따라 해 봐도 해낼 수가 없는 요리들이 있다.
그건 나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요리라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요리들은 다음에 다시 하려고 해도 다시는 할 수가 없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해도 어렵기만 할 뿐 손에 익지를 않는다.
반면 수많은 요리책 안에 나의 필살기로 간직이 되는 요리들이 있다.
거기에 나의 입맛에 맞게 재료와 양념의 개량을 조금 바꾸고 창의력까지 더해지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의 최강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유난히 친해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도 엄마랑 놀일이 생기면 그 약속을 걷어치우고 엄마와 시간을 보냈었다.
결혼 후 엄마와 재잘거리며 길거리를 걷던 그 수많은 날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엄마 없는 사람이 되어 마음 한구석에 깊은 슬픔이 자리했었다.
영화 '마더'에 나오는 한 장면이 생각난다.
교도소 면회실의 장면인데 엄마로 나오는 김혜자 씨가 아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 씌운 아이에게 찾아가 너무나 미안한 얼굴로 묻는다.
'너..... 엄마 없어?' 하고...
너에게 엄마가 있다면 너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고... 자식을 위해 살인까지 하는 자신 같은 엄마가 너는 없냐고 묻는 그 장면이다.
관객들은 각자 자신과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며 숨을 죽였을 것이다.
나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인데.. 처음 살아보는 엄마 없는 삶이 고약하게 슬펐었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지나자 아빠는 엄마의 지극한 병간호 덕에 연장된 수명을 끝까지 채우고 하늘로 떠나셨고, 엄마는 비행기를 타고 나에게 오셨다.
결혼 8년 만에 엄마는 결혼한 딸 집에 처음 오신 것이다.
엄마랑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엄마와 함께 타고 가다가 잠이 와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나의 얼굴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자 엄마는 두 손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나의 얼굴을 가렸다.
잠에서 깬 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엄마의 치마를 적셨다.
그래..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햇살에 눈이 부실까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오렌지를 까서 내 입에 넣어주는 엄마가.. 나도 있었다.
엄마가 너무 그리워 입 밖으로도 그 말을 못 꺼내고 살았었다.
그 말을 하고 나면 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아픈 세월 끝에 다시 만났다.
엄마가 나에게 오고 내가 엄마에게 간다.
우리는 다시 만나 손을 잡고 산책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아픈 세월들은 옛이야기가 되어 가끔 우리의 가슴을 적실뿐이다.
요리책이 없었다면 살 수 없었던 날들이었음을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나의 키친에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