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시부모님이 집을 방문하셨다.
2주 동안 우리 집에 머무르시며 추석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반갑고 기쁜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두 명이 더 늘어난 식사의 걱정이 왜 없었겠는가.. 거기다 가장 어려운 시 부 모 님이라는 껄끄러운 명찰을 달고 계신 분들인데..
몇 달 전부터 수도 없이 머릿속은 자동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간헐적 단식을 몇 년째하고 있는 우리는 아침을 먹을 일이 없어 아침시간이 좀 여유로웠었는데.. 아침부터 밥상을 차려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시뮬레이션 중인데도 실제와 똑같은 감정으로 느끼며 마음을 짓눌렀고, 짧은 여행을 마치고 한밤중에 돌아와도 분명 그동안 밖에서 사 먹은 한식이 아닌 식사들로 인해 김치에다 밥 한 숟가락 먹자고 하실 테고.. 그러면 또 어떻게 김치와 밥만 드리겠는가 국이라도 끓여야 하지 않겠나..
나 역시 여행으로 고단한데 짐 풀기는 고사하고 집으로 뛰쳐 들어와 부엌으로 직행해야 한다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상상들이 오시기도 전에 나를 지치게 했다.
항상 그랬다.
오시기도 전에 나는 지쳐버렸다.
나는 성격이 왜 이럴까.. 그냥 닥쳐서 하면 되지 뭘 그리 시도 때도 없이 상황극을 하고 오두방정인가.. 느긋하지 못한 내 성격에 내가 화를 낸다.
그러던 시간들이 흘러 시부모님은 집에 도착하셨고, 이제 나는 내리지 못하는 자전거에 올라타 그저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일에 놓였다.
핸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자전거를 몰고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 넘어질지도 모르는 아주 괴로운 상황에 울면서 페달만 밟게 될까?
나도 내가 궁금했다.
20대에 일찍 결혼을 한 나는 50대에 갱년기를 맞이한, 그땐 몰랐지만 어쩌면 정말 젋었던 한 여인을 만나 서로 무던히도 마음을 할퀴고 할큄을 당하고 울며불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결혼이라는 단어를 저주하며 살았던가..
시어머니와 나는 어느 날부터 가족이라며 함께 동그라미 쳐 놓은 운명이라는 이 에게 휘둘리며.. "잘 지내 둘이!"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처분에 따라.. '잘 지내야 한다'는 제목아래 모든 게 처음인 서로를 외계인 보듯 하며 어찌나 힘이 들었었는지..
이제 우리는 그때의 어머니의 나이에 다가가고 있는 한 여자와 80의 나이에 근접해 가고 있는 한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났다.
일단 우리는 서로가 싫어하는 걸 안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동안의 강제의 교육으로 인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만큼 알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음식을 하고 먹고 즐기는 일을 가장 좋아하시는 분이니, 나는 책 한자를 못 봐도 그저 하루종일 부엌에만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지냈다.
고양이를 가장 싫어하는 우리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일은 물론 고양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까지 나를 위해 하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매일 '고맙다' '괜찮다'라는 말을 달고 지내셨고 나는 어머니께 '괜찮아요 제가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가장 자주 했다.
무조건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 덕분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깍뜻한 매너와 따뜻한 말들을 건넬 수 있었고 길을 걸으며 스치는 손을 슬쩍 피하지 않고 힘주어 잡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서로의 마음을 할퀴는 일은 없었다.
'그때 참 우리 둘 다 힘들었다'라는 말을 '미안했다'라는 말대신 하셨고 나는 '어머니나 저나 처음이라서 그랬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미국에서 추석을 맞은 어머니는 당신이 손수 추석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오랜만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셨다.
나는 최애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좋아하는 놋그릇을 꺼내 추석 상차림을 준비했다.
부드러운 갈비찜과 녹두 빈대떡 만으로도 추석의 기분이 났다.
2주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시부모님은 인천공항으로 떠나셨고,
시뮬레이션을 하며 겁을 먹었던 상황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 부모님이 떠나신 자리엔 서로가 서로에게 매 순간 진심이었던 진짜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김미경 강사님이 쓰신 '시어머니가 처음이라'라는 열 줄 일기엔 고부사이에 필요한 노력은 딱 두 가지
'품격과 예의'라고 쓰여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노력해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머니와 나는 2주간의 동거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그 노력 덕분에 서로에게 품격과 예의를 지킬 수 있었다. 품격과 예의를 지키니 서로가 그저 고맙기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두 여자가 만나 그 마음이 만날 때까지 25년이 걸렸다.
쉽지 않았지만 해낸 것 같다.
자전거의 핸들은 나의 의지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페달을 밟은 다리는 기쁨으로 힘이 넘쳤다.
이제 그만 자전거에서 내려와 잠깐 쉬어 갈 것이다.
2주 동안 펼치지 못했던 책장을 다시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