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잠깐 비웠던 집이 낯설다.
길지 않았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왜 집이 낯설까?
집은 여기 내가 떠났던 그 상태로 그대로 있는데 나 혼자 낯설다.
서둘러 낯선 흔적들을 지워 본다.
큰 볼을 꺼내서 정수기에 있는 물을 한번 실컷 뺴준다. 화분에 물을 주고, 고양이들 화장실 정돈을 한다.
청소기도 꺼내 한번 휘딱 돌린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이 집안을 지나가게 한다.
그제야 이제 나의 집에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이 조금은 든다.
피곤한 몸을 밤새 잠을 자 쉬게 한 다음 아침에 개운하고 조용히 일어난다.
흰쌀을 꺼내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오이를 꺼내 채칼로 수북하고 넉넉하게 썰어 놓는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칼집을 넣어 반으로 가르고 엇갈리게 돌려 나누어 놓은 후 커다란 씨앗을 빼내고 (아보카도 씨앗은 볼 때마다 반들반들하니 너무 예뻐서 버리기 아깝다.) 껍질을 벗긴 후 가만가만 썰어 얌전히 접시에 담는다.
게맛살은 손으로 곱게 찢어 놓는다.(게맛살은 최대한 게살 함류량이 많은 것으로 구입해 먹어야 게살을 먹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
마요네즈에 주홍빛 날치알을 섞어 작은 볼에 담는다.(주홍빛이 많이 날수록 마요네즈 보다 날치알이 많다는 의미 이므로 맛있다.)
김은 직화로 연한 녹색빛이 나도록 구워 넉넉한 사이즈로 자른다.
고추냉이 간장을 준비하고 식탁에 앉으면 준비 끝이다.
김에 흰쌀밥을 조금 펴서 놓은 후 각각의 재료를 얹어 고추냉이를 곁들인 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시원한 오이와 부드러운 아보카도, 고소한 날치알과 게살 같은 게맛살이 어우러져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 음식의 이름은 '캘리포니아롤'이다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
여행지에서 먹은 기름진 음식들이 안녕하고~ 내 몸속에서 나가고 싱싱한 채소들이 다시 몸속을 지배하는 느낌이다.
아~ 집에 돌아왔다.
여행을 좋아하는 블로거가 말한 것이 생각이 난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찰나의 느낌이 너무 좋다고...
나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찰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집밥을 해 먹는 때인 것 같다.
나의 식탁에서 나의 그릇과 수저로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그 순간 말이다.
첫 숟가락을 떠 입에 넣는 찰나, 그제야 나는 정말 집에 다다랗고 여행지에서 벗어났다.
늘 듣는 집안의 백색소음들, 익숙한 냄새와 발끝에 닿는 차가운 마루의 느낌, 고양이들의 소리 없는 발걸음..
늘 찾아오는 파랑새들, 담벼락을 달려 나뭇가지로 점프하는 청설모들.. 흰 꼬리를 달고 나의 정원의 풀들로 무럭무럭 자라는 야생토끼들, 정말 '앗 뜨거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태양. 태양아래 늠름히 서있는 하늘 끝까지 계속 자라는 야자수들..
내가 집에 왔음을 확인시켜 주는 이 모든 것들을 보고 나의 일상을 다시 안는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은 나의 착각이었던 것임을 꺠닫는다.
나는 아직도 사랑해야 할 사람이 많이 남았고, 안아 줘야 할 사람도 한가득이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나의 마음은 또 한 뼘 컷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집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조금 커서 돌아와서 일 것이다.
나는 계속 자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