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ersjoo Nov 01. 2023

'맹물'이라 부르기로 했다

행복한 마음, 평정심 

갑작스러운 장기기증 신청이었지만 난 생각보다 큰 마음의 파동을 느끼며 며칠을 보냈다. 뚜렷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작은 행복이란 감정까지 느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면 받는 사람만큼 기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추측만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메마른 마음이었다.

차라리 일을 하다가도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던 며칠 전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아하여 수없이 돌려본 드라마의 슬픈 장면에도 이젠 고개만 삐딱하게 기대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걸을 때면 멍하니 보도블록만 응시하고 걸었다. 조류 공포증이 아주 심하지만 발 옆에 비둘기가 떼로 있는 것도 못 느끼곤 했다.


그렇다. 나는 '0'의 상태를 잘못 겪고 있었다.


-

계속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정기적인 심리 상담을 받다 보니, 난 여러 가지 철학적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한 가지는 '대체 행복한 기분이란 어떤 걸까' 하는 질문이었다.


"선생님, 행복하다는 기분은 대체 어떤 거예요?"

"음... 행복한 건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에요. 행복한 기분은 사실 '0'의 상태예요"

"네?"

"보통 사람들은 좋거나, 기쁘거나, 즐거운 것을 행복한 기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니에요. 마음의 레벨을 포물선 그래프처럼 그린다면 그런 기분의 상태는 '+'죠. 반대로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한 상태는 '-'고요. 그런데 이 둘이 아닌 '0' 상태가 있어요. 바로 그 '0'점의 기분이 행복한 기분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어요."


평정심.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에서 나온 바로 그 평정심.

가부좌를 틀고 기도에 빠져든 스님들의 마음이라는 그 평점심.

그것이 바로 진짜 '행복한 기분'이라는 말이었다.


ⓒ 쿵푸 팬더


그렇지만 헷갈리면 안 됐다.

삶의 의미를 잃어 무덤덤한 지금 나의 상태는 결코 선생님이 말한 평정심의 상태가 아니었다. 평정심은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아 언제나 모가 나지 않은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고, 나의 무덤덤함은 삶을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마음이었다. 결국, 존재의 이유까지 잃었다는 말이었다.


행복한 기분이 아니었다.


-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맹물'이라 칭하기로 했다.

맹물은 '0'의 상태같이 느껴져 마치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도 다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으니 말이다.

이전 01화 감정 소화불량자의 도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