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측면에서 바라본 관계의 힘

5장 4절

by 정신과의사 이주영

♪ Air Supply – Even the Nights are Better



아이들을 갖기 오래전부터 애완 고양이를 키웠다. 약 2개월 된 어린 암컷 고양이를 입양해 와서 정성껏 키웠다. 한겨울인 2월에 가족이 되었기에 이름은 “이월이”로 지었다. 밤에는 짧은 다리로 매트리스를 낑낑거리며 힘겹게 올라와 곁에 와서 함께 자곤 했다. 이월이는 내 겨울 잠옷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있는 걸 좋아했었다. 한번 넣으면 나올 생각 없이 캥거루 새끼 마냥 그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그러던 이월이는 사료를 먹으며 폭발적인 속도로 무럭무럭 자랐다. 매주 찍어 기록한 사진들을 보면 매번 몰라볼 정도의 속도였다. 내가 없으면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월이는 빠르게 독립적으로 집안을 배회했다. 가족이 된 지 2달쯤이 지난 후부터 이월이는 현관문 앞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출근을 위해 아침에 문을 열면 그 틈을 타고 이월이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 아파트 계단을 용감하게 달려 내려갔다. 이월이를 쫓아가 매번 데려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월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현관문에 게이트를 설치해야 했다. 이월이는 1차로 설치한 약 50센티 높이의 난간은 쉽게 뛰어넘었기에 최종으로 1미터가량 높이의 철제 난간을 설치해야 했다.


탈출이 좌절된 이월이는 점점 더 서글프게 울었다. 기존에는 듣지 못했던 기묘한 느낌의 울음이었다.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4-6개월이면 번식이 가능한 나이가 되는 것이었다. 인간이 생후 최소 11-12년은 지나야 오는 청소년기가 빠르게 찾아왔던 것이다.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고 집안에 가두고 기르면, 짝을 찾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고 들었다. 반복되는 도망, 다소 듣기 거북한 울음소리, 그리고 냄새나는 분비물을 뿌리는 행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분비물 분비를 피하기 위해서 이월이는 결국 5개월 무렵 중성화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 후 이월이는 더 이상 문 앞에서 울지 않았다. 도망도 가지 않았다. 짝을 찾거나 독립을 하고자 하는 내적 동력은 소멸된 듯했다.




중성화 수술 전후 이월이의 극적인 행동 변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첫째, 생명체의 의존 욕구와 독립 욕구 모두가 유전자 수준에 새겨져 있는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점을 체감했다. 아기 고양이일 때 나에게 와서 몸을 부대끼며 의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월이가 때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와 거리를 두고 시작했고, 자신을 물리적으로 제한하는 공간인 집을 벗어가려고 했다. 청소년기에 부모로부터 신체적, 독립적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차 개별화(second individuation)라고 부른다.


둘째, 독립 욕구가 폭발하는 청소년기 이후 자녀를 부모 곁에 두려는 노력은 생물하적 운명을 거스르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행위라는 것이다. 중력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 없어질 물을 계곡에서 계속 볼 수 있는 이유는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태양이 강렬하게 물을 달궈 수증기로 만든 뒤 산 위에 비를 내리거나, 인간이 인위적으로 펌프를 설치해서 산 아래 물을 산 위로 끌어올린 뒤 흘려내는 것이다. 이월이는 주인과 한 공간에서 공존하기 위해 성 호르몬 분비 기관을 적출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청소년기 이후의 강력한 개별화 동력 때문에 자녀와 부모가 한 공간에 성공적으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에너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 수준에서 저장되어 있는 청소년기 이후 인간의 개별화 욕구는 현대 사회라는 복병을 만나 충족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미국에서도 성인 자녀가 자력으로 집을 구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부모와 한 집에서 성인 자녀가 증가하게 된다. 초혼 나이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물가가 비싼 대도시 부근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추세이다. 한국은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에 문화적으로 관대하기 때문에 이러한 패턴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 캥거루(Kangaroo) 족이나 부메랑(Boomerang) 세대 모두 동서양을 막론한 이런 현대 사회의 추이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러한 추이를 보면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녀와 더 오래까지 가까운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부모가 관계를 통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 보다 길어지고 있다.


앞에서 이월이의 예를 들면서 의존과 독립과 관련된 행동이 얼마나 생물학적 수준의 욕구인지를 언급했다. 그렇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유전자가 발현되는 순리에 따라 자녀의 발달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면 된다는 뜻일까? 아니다. 부모와 자녀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자녀의 뇌는 다르게 발달하게 된다. 뇌는 단순히 태어날 때 주어진 유전자 염기 서열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 뇌는 생각보다 역동적으로 발달하는 기관이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인 뉴런은 지속적으로 연결패턴을 수정한다. 이러한 수정은 개인이 경험하는 외부환경과 인간관계의 영향을 받게 된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유전자가 지니고 있는 염기서열 이외의 요인에 따라 단백질 발현 양상의 변화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후생유전학은 부모-자녀와의 관계가 자녀의 뇌에서 생산되는 단백질의 양과 질을 바꿀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번 장에서 독자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부모가 자녀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고 신뢰 있는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하면, 자녀의 뇌를 구조적, 기능적으로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유전자라는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관계를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정신치료(psychotherapy) 역시 환자의 뇌에 생물학적인 수준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이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Rat-mom_01.jpg 마이클 메니의 쥐실험 - 어미쥐가 더 잘 보듬어 주었던 아기 쥐의 뇌에는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생물학적 영향력을 보여준 연구는 마이클 메니(Michael Meaney)의 쥐 실험이다. 이 실험을 통해 어미가 자주 핥아주고 쓰다듬으며 키웠던 어린 쥐가 그런 돌봄을 받지 못한 쥐에 비해 성체가 되었을 때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쥐가 어미 쥐에게 물리적으로 자주 밀착되어 충분히 의존할 수 있는 초기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뇌에서 스테로이드 수용체(glucocorticoide receptor)의 발현 수준이 유의미하게 변했다. 이러한 생화학적 수준에서 변화된 뇌로 인해 쥐는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어린 시절 안정되고 지지적인 양육자와의 관계를 경험한 개인에게는 뇌의 편도체(amygdala)의 반응성, 옥시토신(oxytocin) 수치, 바소프레신(vasopressin) 수치, 뇌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활성도, 뇌 보상회로 (brain reward circuit) 활성도, 미주 신경 (vagus nerve) 기능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생화학적 변화로 인해 해당 개인은 양육자로부터 독립된 이후에도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며, 감정 조절 능력을 키워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경우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David Benoit – Waiting for the Stars to Fall



이번 장에서 안정한 애착(부착) 형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우선 기술했다. 그리고 인간은 자라면서 양육자, 선생님, 사회의 규범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대상 표상 및 자기 표상을 확립해 나간다는 중요한 사실을 논했다. 또한, 의식적인 수준의 학습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이 양육자와 교육자에게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충분히 긴 시간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이런 맥락에서 양육자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즉, 자신에게 물리적,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기간) 어떠한 원칙을 견지해야 할까?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은 중요한 발달 과업으로 심리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한 개인이 홀로 있을 때 (스스로와의 동행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과 친밀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 불안 회피를 목적으로 필사적으로 맺은 관계에서는 즐거움과 의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니컷이 언급한 것은 물리적 혹은 경제적 독립보다는 정서적 독립이었다. 대상관계 용어를 사용하자면, 외부의 위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확고한 자기 표상(self representation)을 발달시킨 상태를 일컫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언급한 발달상의 목표는 관계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 초기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성인인 타인에게의 의존을 의미한다. 아무리 훌륭한 인지기능 (예를 들어, 지능)을 타고나도 개인은 혼자서 안정적인 자기 표상을 확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양육자가 미성년 자녀의 관계에서 견지했으면 하는 대원칙을 나열하면서 이번 장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를 통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한 개인을 양육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대원칙은 성인과 성인 사이의 관계에서 지켜질 경우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 줄 수 있겠다. 다만, 인생 초기의 관계가 한 개인의 대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광범위하기에, 특별히 강조를 한 것이다.



1. 관계의 질이 양보다 중요하다


바쁜 현대 양육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자녀와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양육자가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아래 나열된 나머지 대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면, 아이에 좋은 대상관계를 발달시켜 나갈 수 있다. 아이는 짧은 시간이라도 양육자이 자신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자세, 참을성 (자기 조절 노력), 문제 해결에 임하는 자세를 자신의 기억 속에 새긴다. 이것은 앞에서 기술했듯이 의식적인 기억을 통해서 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수준의 대상관계 확립을 통해 일어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집 밖에서 전투적으로 바쁜 삶을 살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자녀를 마주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하기에 에너지가 부족할 경우가 있다. 전공의 때 내가 힘들어했던 것 중 하나가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급한 응급 상황을 처리하고 외래에 바로 들어가야 했을 때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외래 환자의 정신치료에 임해야 했음에도, 이전에 벌어지고 있었던 일에 대한 정신적인 잔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긴 불가능했다. 이렇게 시작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헐레벌떡 외래에 도착하면, 항상 몇 분씩 늦던 환자들도 제시간에 도착해 나는 일어나는 죄책감을 마주해야 하곤 했다.


바쁜 사회생활 후 집에 와서 자녀를 마주하기 전 양육자는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 상사에게 들은 비난, 고된 업무량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자녀와의 관계에 까지 항상 영향을 미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기 전에 ‘오늘은 생각보다 내가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자기 조절을 못할 수 있겠구나’라든지 ‘한번 크게 심호흡하고 오늘은 소리치지 않게 특별히 조심해야지’라는 자기 점검을 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이 과정을 건너뛰는 것은 본 운동 전에 준비 운동을 빼먹는 것과 비슷하다. 자녀와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비록 그 시간이 짧더라도, 많은 에너지가 드는 과정임을 인지해야 한다. 양육자는 자신이 맡은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동시에, 자기 조절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겠다.



2. 중용을 지키자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미묘한 시각 (nuanced view) 보다는 윤리시간에 배워서 유교 가르침인 “중용”이 한국인에게 훨씬 친숙하겠다. 중용은 극단을 피하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인간을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아닌 그 중간의 존재로 이해하는 능력은 정신건강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능이다. 각종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이용자에게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현실에서 중용의 미덕을 지킨다는 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진 것만 같다. 항상 선하거나 항상 악한 존재는 부재함과, 자기 자신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할 수 없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를 있는 꾸밈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zisi.jpg 중용(中庸)을 저술한 중국 전국시대 유학자였던 자사(子思)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레인(Melanie Klein)은 이 능력의 함양 여부에 따라서 한 개인이 편집-분열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 또는 우울자리(depressive position)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전자는 부모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한 개인에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나를 안아주고 먹여줄 때의 부모는 절대적으로 좋은 존재이지만, 나를 방치할 때의 부모는 절대악이 된다. 편집-분열 자리에서 개인은 현실의 일부(양육자의 나쁜 면)를 외면하고 부정함으로써 평안을 찾는다. 부모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이기에 불안할 것이 없다. 이러한 개인은 이상적인 인간상이 실재한다고 믿게 되고, 성인이 되어 독립한 이후에도 이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완벽한 상대를 찾기 위해 힘쓰게 된다. 그리고 그 목표가 반복적으로 좌절될 때 (좌절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용어 자체 그대로 우울자리에서 개인은 다소 우울하다. 자신의 양육자에게 좋은 면뿐만 아니라 나쁜 면이 항시 보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끌어줄 양육자가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은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참으로 슬픈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우울자리에 머물 수 있는 개인은 현실의 미묘함(nuance)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 다는 것은 현실의 괴로움 또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양육자가 자신의 어두움이나 세상의 어두움에 대해서 자녀 앞에서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자녀는 그런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부모가 피하고, 숨기고, 부정하는 대상에 자녀는 더 큰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멜라니 클레인의 용어로만 보면 편집-분열자리 보다 우울자리가 마치 우월한 영역인 것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실상은, 한 개인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두 자리 사이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람은 급성 불안 상황에서 차마 인생의 어두운 면까지 바라볼 여유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현실의 일부를 부정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편집-분열 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


winnicott.jfif "충분히 좋은 엄마" 개념을 널리 전파한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이 사용한 용어인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은 분열 자리를 특히 잘 설명하는 개념이다. 양육자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항상 파악하고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계의 분열을 완전히 피해 갈 수 없다. 양육자는 자녀 외에도 충족되어야 하는 자신만의 욕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양육자들도 자녀의 관계 외 다른 일이나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는 건 자연스럽고 건강한 모습이다. 이러한 부모의 불완전한 모습이 자녀가 인생의 실재하는 면모를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양육자가 자녀에게 충분히 잘하는 것이 완벽하게 잘하는 것보다 자녀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 양육자들이 이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절대 선(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규칙, 변하지 않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자녀에게 말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 같은 맥락에서 양육자 자신을 완벽하고 흠 없는 존재로 자녀가 믿게 하는 것도 지양해야겠다. 끝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때론 깊은 불행을 느낄 수 있음을. 한없이 강해 보이는 사람도 쓰러지는 순간이 있음에 대해서 자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양육자가 되면 좋겠다. 이렇게 자신을 거리낌 없이 우울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양육자를 보면서 자녀는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마주하고 최대한의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된다.


양육자 기준에서 자녀가 보지 않았으면 하는 세계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마냥 인위적으로 차단시키거나 ‘절대악’으로 치부한다면, 자녀는 미래에 필요 이상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게 될 가능성이 발생하게 된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가장 안타까운 순간 중 하나는, 동성애를 용서하지 못하는 죄악으로 치부해 온 부모의 자녀가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부모에게 밝히지 못하고 숨기고 살아가는 경우이다. 참고로 동성에게 더 끌리는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은 인종과 국가를 불문하고 남자에서 약 5%, 여자에서 약 2.5% 라는 통계 보고가 존재한다.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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