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解離): 나 자신을 배신해야만 할 때

6장 2절

by 정신과의사 이주영
“고통의 가장 큰 원천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 엘빈 셈라드(Elvin Semrad)


“사람의 마음은 때론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숨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Damasio)




미국에서 심리적 외상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시작된 건 100년이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외상 경험은 무시되거나 축소보고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렇기에 정신과적으로도 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효율적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미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가정에서 여성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신체적 폭력 및 성폭력 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된 심리적 외상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성폭력 보호 센터와 가정 폭력 쉼터가 세워지면서 폭력의 생존자(‘피해자’ 보다 능동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갔음을 강조하는 더 선호되는 용어이다)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feminist movement.jpg 1970년대 미국에서는 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한 많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여성이 가정에서 겪는 외상도 많은 조명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이 1975년 종결되면서 심리적 외상에 대한 미국 내 인식은 전환기를 맞이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귀국 후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 대한 치료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1980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III)에 등재되며 공식적인 정신과 질환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초기 PTSD는 참전자에게 국한된 심리적 증후군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vietnam.jpg 베트남 전쟁은 생존자들에게 극심한 상흔을 남긴 역사적 비극이었다.


이후 1990년 초, 주디스 허먼 (Judith Herman) 교수는 [외상과 회복] (Trauma and Recovery) 서적을 통해 복합 (complex) PTSD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가정 폭력과 성폭력 피해자가 보이는 증상은 참전 군인이 겪는 외상 관련 증상과 유사점을 보였다. 그들은 가정에서 자신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던 것이다. 기존 PTSD 진단 기준만으로는 심리적 방임이나 학대에 장기간 노출된 환자에서 나타나는 차별되는 증상군을 설명할 수 없었다. 복합 PTSD은 가장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환경에서 벌어지는 외상 경험이 가지는 복잡성과 지속성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매년 약 30만 명의 아이들이 아동 학대와 방임의 피해자로 신고되고 있다. 미국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어린 시절 폭행, 유기, 방임, 강간을 당했거나 가정 내 폭력에 노출되었던 것으로 보고된다.



♪ MUNA – I Know a Place (Brian Robert Jones remix)



도라(Dora)는 첫 만남 이전에 이미 그림 하나를 팩스로 보내왔다. 자신의 현대 뇌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말보다 그림이 더 유용하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그림은 가느다란 펜으로 깔끔하고 정교하게 그려졌다. 그림에 따르면 도라의 뇌를 약 12가지 구역을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구역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라”의 이름도 뇌 아래쪽의 한 구역에 적혀 있었다. 작은 글자로 각 구역이 담당하는 기능이 적혀 있었다. 도라 아래에는 일(work)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다른 글씨는 크기가 너무 작아 읽을 수가 없었다. 여러 화살표가 구역 사이사이를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각 구역의 기능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표시하려고 한 것 같았다. 신경과학에서 다루는 많은 난해한 뇌신경회로(brain neural circuit) 일러스트를 비웃는 듯한 매우 복잡한 그림이었다. 여러모로 도라와 만나서 자세한 부연 설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료실에서 처음 만난 도라는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에 가족 중 한 명에게서 반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 수년간 이어진 성폭행에도 도라는 한동안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갔을 때 학교 상담사에게 처음으로 성폭행에 대한 과거를 꺼냈고, 가해자는 법의 합당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성폭행의 피해자였던 자신을 케이라(Keira)라고 불렀다. 케이라는 혼란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생존을 위해선 가족을 지켜야 했고, 가족과 함께 가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해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넘보기 위해 기회만 노리는 것 같았다. 당당했던 그녀는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공포에 떨게 되었다. 이차 성징이 발현되고 성욕을 느끼게 된 케이라는 그런 자신을 증오했다. 세상을 사는 매 순간이 멍하게 느껴졌다.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케이라는 자해를 통해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고통을 느껴야만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라는 또래들이 많은 학교를 도저히 다닐 수 없었기에 검정고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brain circuits.jpg 도라가 그려준 자신의 뇌구조는 이 그림(Brain connectome)만큼이나 복잡했다.


“케이라는 아직도 수치심에 떨면서 울고 있어요.”


도라는 외상의 피해자인 자신의 정체성에 케이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성폭행 가해자와 한때 함께 있었던 자신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도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서 그 부분을 지워야 했다. 그건 자신이 아니라고. 그건 자신일 수가 없다고. 그렇게 해야만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단순히 버텨낸 정도가 아니었다. 도라는 훌륭한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성적을 냈다. 케이라의 존재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의 일부를 분리해 냄으로써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도라는 그 이후에도 많은 이름을 만들어 냈다. 도라는 이름에 따라 특화된 기능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스포츠를 좋아하는 자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도라가 연애를 하기 시작했을 때 이런 방어 기전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라는 연인들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이름들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 안에 여러 이름을 가진 인격들이 있음을 알린다면 연인이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에서 때문이었다. 도라는 연인과 친밀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신체가 접촉하는 순간 자신 안에서 깨어나는 케이라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케이라의 출현과 함께 그녀의 몸은 완전히 뻣뻣하게 굳어져 버렸다. 케이라에게는 능동적으로 타인을 갈망할 수 없었다. 케이라의 등장과 함께 그녀는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소녀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이런 반응에 연이들은 떠나갔다. 도라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이해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바람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어릴 적 벌어진 일, 그리고 남겨진 외상과 싸우며 적응해 온 과정 모두가 수치스러웠다.


도라와의 정신치료에서 나는 그녀가 정해진 시간에 치료실에 와서 안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도라의 파편화된(fragmented), 그래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면모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펼쳐질 수 있도록 했다. ‘내면의 그 어떤 부분도 숨길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은 일관된 경청의 자세였다. 진료실이 다른 이름을 가지고 표출되는 도라의 면모가 모두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했다.


도라는 스트레스를 마주하면 더 다양한 이름의 인격을 출연시켰고, 그 사이의 상관관계를 바라보려고 했다. 그럴 때면 도라는 감정을 뒤로하고 연구에 골몰하는 과학자가 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도라는 그렇게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대처했다. 치밀하게 지식적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일수록 도라가 어떤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지에 대해 느끼려고 했다. 논리적인 분석은 더욱더 도라를 현재에서 멀어지게 했다. 화려한 논리 저변에 발견되길 거부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도라와 함께 찾아야 했다. 자신의 외부로 분리되어 버려진 (‘케이라’라는 이름에 할당되어 더욱더 내가 아닌 부분이 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현재의 도라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 과거의 외상이 기억이 통합되는 순간, 어린 시절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존재를 볼 수 있게 된다. 현재의 나는 더 이상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현재의 나는 외상 후에도 삶을 용감히 살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인지기능과 물적,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음을.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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