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다시 써나갈 이야기

7장 1절

"가족은 우리를 인도하는 나침반입니다. 우리가 큰 목표를 달성하도록 영감을 주고, 우리가 때때로 흔들릴 땐 위로가 되어 줍니다." - 브래디 헨리 (Brad Henry)




소아 정신과 수련을 시작했던 2021년에 CHA병원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원격 진료가 점점 일상의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을 때였다. CHA병원을 포함한 매사추세츠 응급실에는 자해 시도 및 자살 사고로 방문하는 아이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어린 환자들이 입원을 기다리며 응급실에서 일주일 넘게 기다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CHA병원은 주(state)의 지원을 받아 소아 정신과 입원 병동과 발달 장애 병동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수련 내용 측면에서는 가족 치료(family therapy)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당시에는 가족 치료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정신건강 위기와는 전혀 무관한 일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가족들이 치료를 통해 그들만의 더 나은, 살맛 나는 이야기를 써나가는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 가족의 변화로 구성원 전체의 삶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 한 가족 치료가 얼마나 필요한 도구인지를 느낄 수 있다.


CHA병원 소아정신과 전임의 과정에서는 전통적으로 1년 차 때 가족치료에 관한 이론 수업만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전임의 2년 차 때부터 외래에서 가족 치료 환자와 지도 교수님을 배정받았었다. 내가 수련을 시작한 해부터는 전임의 1년 차 때부터 가족과 지도 전문의를 배정받았다. 매주 1-2시간의 이론 수업을 병행하면서 1시간씩 배정된 가족을 만났고, 녹화한 치료 과정을 재생하면서 1시간씩 배정된 선생님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았다. 1년 차 때 나를 담당했던 신티아 미텔마이어(Cynthia Mittelmeier) 선생님에게서 해결 중심 가족치료(solution-focused family therapy)를, 2년 차 때는 질 하카웨이(Jill Harkaway) 선생님께 전략적 가족치료(strategic family therapy)와 구조적 가족치료(structural family therapy)를 배웠다. 도로시 캘러허(Dorothy “Dot” Kelleher) 선생님이 진행을 맡았던 이론 수업 시간에도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은 칼 톰(Karl Tomm), 살바도르 미누친(Salvador Minuchin), 밀턴 에릭슨(Milton Erickson)의 오래된 글들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오래된 책들은 수련의 월급으로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에 온라인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다행히 하버드 의과대학 도서관 서비스를 통해 많은 스캔본을 받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이것들을 다시 꺼내 읽곤 하는데, 그럴 때면 케임브리지 시절 기억들이 하나씩 묻어 나오곤 한다.


cambridge.jpg 눈에 파묻힌 차를 꺼내려면 열심히 삽질을 해야 했던 추억의 도시 케임브리지


내가 CHA를 선택한 것은 개인 정신치료 수련에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CHA를 최우선으로 골랐을 때만에도 가족 치료 커리큘럼이 특별하다는 것은 내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수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가족 치료에 매력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수련을 마친 시점에서 나는 가족 치료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수련 중에 가족 치료의 힘을 체감했고, 그랬기에 좋은 가족 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치료법을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 소아정신과 학회 (AACAP) 가족 위원회 (Family committee)의 문을 두드렸다. 이 위원회는 가족 치료 교육을 표준화하고 더 보편화시키는 데에 뜻을 함께 하는 미국 소아정신과 의사들의 모임이다. 위원회에서 미국 전역의 소아정신과 수련 프로그램 다수는 가족 치료 교육을 최소한으로만 유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육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외래에서 가족 치료 케이스를 전임의가 전담하여 진행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은 소수에 불과했다. 별도의 치료사에게 가족 치료를 의뢰를 하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가족 치료를 제대로 경험한 의사만이 진료실에 오는 어린 환자를 가족이라는 살아있는 유기체(living organism)의 일부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족 치료 경험은 문제가 장기적으로 고착화되어 보이는 가족 앞에서도 무기력해지지 않게 해 준다. 자신이 그러한 가족에게도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게 된다.



♪ Yoko Kano – Close to Home



쉐리(Sherry)는 14세 여자 아이였다. 전임의 2년 차 때 새로운 가족 치료 의뢰가 들어왔을 때 의뢰서에 적혀 있던 이름이었다. 가족 치료의 대상은 가족 전체이지만 의뢰가 들어올 때는 한 환자의 이름이 명시된다. 모든 가족 치료의 흔적은 모두 이 한 사람의 의무기록으로 저장된다. 이러한 사람을 ‘환자로 지목된 사람(identified patient, IP)’이라고 칭한다. 쉐리가 의뢰된 이유는 집에 있을 때 자신의 방에서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였다.


쉐리는 3년 전 편두통을 진단받고 두통약을 주기적으로 먹었다. 잊을만할 때면 몇 개월에 한 번씩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고, 그럴 때면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머리 MRI 검사에서는 다른 질환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만성 질환이 있는 와중에도 쉐리는 학업과 운동 능력 모두 뛰어난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부모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쉐리의 친부인 릭(Rick)과 친모인 홀리(Holly)는 쉐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릭과 홀리가 답답한 마음에 말을 좀 해보라고 쉐리를 닦달하면,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집에서 보이는 행동을 단순히 우울 증상으로 인한 의욕 저하, 기력 저하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쉐리가 학교에서 보이는 활력 있고 열정인 모습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인 릭과 홀리는 어떻게 해야 쉐리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지, 자신들과 말을 하게 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했다. 이런 부모의 고민을 들은 쉐리의 소아과 의사는 가족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의뢰를 하였다.


비디오를 이용한 원격 진료로 쉐리 가족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쉐리의 가족은 CHA병원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었다. 부모 모두 바쁘게 일을 했다. 가족 치료를 위해 둘 다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하루 오후 6시에 겨우 맞춰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수련의 2년 차 때 일주일에 하루는 오후 7시까지 외래를 열었다. 코비드 유행으로 시작된 원격 진료가 아니었으면 쉐리의 가족은 오후 6시에 맞춰 시작하는 가족 치료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 치료는 강한 치료 효과를 발휘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한적으로 실시될 수밖에 없다. 모든 가족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족이라면 부모의 퇴근 이후로 약속이 잡히게 된다. 하지만, 오후 늦게 혹은 저녁에 기꺼이 일을 하고자 하는 가족 치료사들의 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미국은 퇴근이 오후 4시 전후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족 치료가 가능한 시간이 길다. 한국은 이보다 늦은 오후 6시 전후에 성인들이 퇴근하기 때문에 가족 치료가 규칙적으로 이루어지기에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겠다. 치료자들은 본인들 가족과 보내야 하는 저녁 시간을 희생하면서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큰 기회비용 때문에 가족 치료는 의료 보험이 보장하는 영역 밖에서 일어난다. 의료 보험에서 일반적으로 책정하는 정신치료 수가로는 가족 치료를 기꺼이 제공하려는 공급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치료 회기의 목표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로 찾아오게 된 계기나 가족이 직면한 문제가 아닌, 각각의 구성원들을 인격체로서 호기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처음에 기울이게 된다. 쉐리의 가족은 총 4명이었다. 쉐리의 아버지 릭과 어머니 홀리는 남미의 한 국가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1세대 이민자였다. 둘 다 20대 초반에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모국어가 아직도 영어보다 편했다. 그렇기에 가족 치료는 원격 통역가의 참관하에 이루어져야 했다. 부통역가는 부모의 모국어를 나에겐 (아직도) 외국어인 영어로 통역해 주었다. 나의 영어 문장 하나하나를 통역가가 쉐리 부모님을 위해 통역을 해야 했다. 내가 쉐리를 향해 영어로 어떤 말을 하더라도, 가족 치료 특성상 이 말을 가족 모두가 들어야 했다. 그래서 매 문장이 통역이 되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간을 만나도 막상 30분 분량의 치료 성과가 났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전략적으로 아껴서 효율적으로 꺼내야 했다. 이런 통역사의 배석 때문에 쉐리 가족 내에 존재하는 언어 장벽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 내에서 언어의 차이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고, 꼭 들어야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대를 뛰어넘는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