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그리고 그곳에 존재할 관계들

8장 1절


"평범한 교사는 말한다. 좋은 교사는 설명한다. 뛰어난 교사는 시범을 보인다.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준다." - 윌리엄 아서 워드 (William Arthur Ward)
“튀어나온 못은 망치질을 당한다” - 일본 속담




내가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은 삶에서 ‘의존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가 가지는 중요성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타인이 주변에 지속적으로 있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교류에 필요한 고위 기능 (언어 능력, 기억력, 구조화 능력 등)을 발달시켰다. 사회적 고류를 통해 협력하면 사냥도 쉬웠고, 농사짓기도 수월했다. 그렇기에 뛰어난 사회성을 가능케 하는 큰 뇌를 가진 개체들이 생존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들에 비해서 두꺼운 대뇌 피질을 갖게 되었다.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의 뇌의 성격에 맞는, 즉,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오래된 격언은 타인과의 관계가 가지는 기능을 잘 표현해 준다. 기쁨을 공유하는 것은 누구와도 쉽게 느껴진다. 반면, 슬픔은 타인과 나누기가 왠지 조심스러울 수 있다. 듣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또한, 슬픔과 치부를 아무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실제로 위험이 따른다. 자신의 슬픔이 가벼운 소문이 되어 퍼지거나, 자신의 등에 칼이 되어 꽂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칠흑 같이 어두운 이야기라도 집중해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인생에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인간은 인간관계의 절대적인 양을 통해서가 아니라, 깊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수월하게 대사(metabolize)할 수 있다. 이런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인간은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불안을 더 쉽게 잠재울 수 있으며 (앞에서 설명한 ‘상호 조절’ 기전),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보급으로 2010년 대부터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의 양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실시간으로 서로의 표정에 반응해 가면서 이루어지던 상호작용은 온라인(online) 문자(text) 기반의 의사소통으로 변화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포스팅이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작성할 때는 상대방의 반응을 그때그때 확인할 수가 없다. 과거엔 타인을 앞에 두고 어떤 말을 했을 때, 타인의 답변뿐 아니라 즉각적인 표정변화나 행동변화를 통한 다채로운 정성적(qualitative)인 피드백을 받았다. 즉, 1:1 대면 교류 상활들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되는 정신화(mentalization) 기능을 뇌가 자연스럽게 활성시켰다. 더 자주 활성되는 뇌의 기능은 발달하게 된다. 즉, 타인과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정신화 기능이 발달할 수 있고, 이런 정신과 기능을 기반으로 타인과의 더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기술적 발달은 더 많은 사람을 향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경청하는 청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양의 물을 잔디에 줄 때 넓게 흩뿌리는 것과 좁은 구역에 많이 주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넓은 지역에 뿌린 물은 공기 중이나 잔디 표면, 혹은 땅 표면에서 대부분이 증발되어 버린다. 어떤 잔디도 제대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버티지 못하게 된다. 좁은 구역에 깊게 물을 주면, 비록 적은 범위의 잔디겠지만, 살려낼 수 있다. 여기서 좁은 구역 깊게 물을 주는 방식은 방해물 없이 1:1 상황에서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에 대한 비유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양육자와 가족은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안전한 환경에 충분히 의존할 수 있는 타인이 있어야만 어린아이는 독립된 성인으로 잘 발달해 나갈 수 있다. 타인과 대면해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자기 제어 능력, 감정 표현 능력, 공감력, 주체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학업적, 직업적으로도 자신의 최대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사회전반에서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관계를 맺어갈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타인과 관계 맺어지는 경험을 충분히 하는 것이 점차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 가기 전인 영유아에게 가족과 양육자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경 과학에서의 근거들은 결국 자기 제어력을 최대한 발달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친구와의 놀이와 별개로 성인인 양육자와 하루 10분이라도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놀이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의 가장 앞 장에서 놀이를 다룬 이유도 놀이는 아이의 발달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걸 제어하는 것을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상호 조절(co-regulation)의 장이다.


양육자는 가족 내에 심리적 어려움을 언어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내에선 아이가 속상하면 울고 분노가 치밀면 화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물건을 파괴하는 행동이나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행동을 통해 감정 표현을 한다면, 그건 권장되어야 한다. 사회가 아무리 “다 큰 사람이 뭘 그런 걸로 우냐 “고 묻더라도, 가정은 한 개인이 느끼는 연약함을 눈물로, 혹은 언어로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양육자는 자녀의 슬픔이나 분노를 함께 느껴보고 이름 붙임으로써 오히려 자녀가 향후에 그런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자기 제어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이 어린 시절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면 그 아야기를 자녀에게 공유해 주는 것도 좋다. 연약함(vulnerability)을 공유함으로써 관계가 더 친밀해질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사회에서 흔히 ‘실패’라고 정의하는 상황에서도 깊은 좌절감 대신 회복을 향한 희망을 갖게 된다.


대한민국 부모는 강한 유교 영향력 하에 놓인 사회에서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잘 교육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양육자는 자녀가 세상을 살면서 주관적으로 빚어가는 내면세계(internal world) 보다 사회로부터 요구되는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 여부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사회에서 기대되는 행동 양식을 교육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눈에 보이는 행동은 가족이 아닌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를 통해서 가다듬어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아이가 품은 생각과 느끼는 감정들에 호기심을 갖고 관심을 줄 수 있는 것은 가족이며, 그중에서도 부모라고 믿는다. 양육자가 보기엔 아이의 생각이나 감정이 비이성적이고 미성숙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 경험이라도 양육자가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을 가족 내에 조성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언어화될 수 있고 타인과 공유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걸 배우게 된다. 즉, 아이는 자신의 내면과 그것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렇게 내면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개인은 스스로의 감정을 더 잘 제어하며,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서도 독립된 개체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 모노 - 넌 언제나



학령전기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놀이(play)이다. 놀이에 대한 내용을 책 가장 앞에 배치해서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모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루 적어도 10분씩이라도 아이들과 1:1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의 연출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부모가 온전히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 보면 좋겠다. 집 밖에서는 아이들끼리 실제로 만나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놀이 중에 아이들은 수많은 감정과 충동을 경험하게 되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양육자가 친구들의 존재로 인하여 감정과 충동을 제어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상호조절).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타인과의 셀 수 없이 많은 관계의 작은 단절과 회복을 경험한다. 결과적으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성, 감정/충동 제어능력, 갈등 해결 능력, 창의성, 정신화 기능을 발달시킨다. 어린 시절 놀이는 절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다. 어린 시절 타인과 충분히 많은 시간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심리적으로 인생 초기 목돈을 마련하는 과정이 열심히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신경과학에서 이미 잘 입증된 명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과 함께하는 놀이는 즐겁다. 놀이를 통해 ‘나는 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표상과 ‘타인은 나와 기꺼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라는 대상 표상을 갖은 사람은 이후 삶에서 쉽게 깊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놀이가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체력이 되는대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엔 집밖으로 아이들을 내보내서 친구들과 어울리게 한다. 콜로라도에 이사 온 후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또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이 점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양육자를 떠나 집 밖에서 점점 타인과 많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시기 공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아이들의 심리사회적 발달을 위해 어떤 환경을 제공하는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우선, 아이들이 전자 기기 없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충분한 자유시간이 필요하다. 한 공간에서 함께하는 놀이의 중요성은 학령기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서 문해력(emotional literacy)을 발달시키는 내용이 초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서 확대되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그 저변에 깔린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를 아이들과 함께 궁금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학교마다 심리 상담 전문가가 배치될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학생들을 위한 또래 상담(peer counseling) 프로그램을 함께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른 시기에 다양한 감정을 이름 짓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는 아이들의 감정 및 충동 조절 능력을 길러준다. 또한, 자신의 감정적 연약함을 공유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용감함의 표현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이른 시기에 할 수 있다.


이 시기 공교육은 학생들이 선생님과의 안전한 관계를 통해 효과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습 환경에서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잘 풀었을 때 칭찬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도움을 구하는 과정은 칭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의과대학 실습 중에도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고 교수들에게 혼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을 통해 다른 학생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잘못할 알고 있던 걸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사람도 있다. 교육자들은 질문의 내용을 통해 아이들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질문한 사람은 답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대상관계를 형성한다. 즉,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보살펴주는 존재“라는 자기 표상과 “타인들은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대상 표상을 무의식 중 갖게 되는 것이다. 안전한 학습 환경에서 반복되는 즐거운 질문과 답변 경험은 모이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변질문을 한 학생은 자신뿐 아니라 교실 전체에 큰 기여를 하게 된 것이기에 많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많은 경우 청소년기에 학업적인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은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이는 우울과 불안과 같은 감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인지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 장애가 생기기 때문이다. 불안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막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몰라 두려움에 휩싸인다. 학업적 어려움이 있을 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존하지 못한다면, 문제해결은 요원해진다. 감정 조절 능력과 타인에게 의존할 수 있는 능력을 학령기 초기에 발달시켜야만, 청소년기 이후 잠재적인 인지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미래의 학업 및 직업적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서 인생 초기에 필요한 것은 선행 학습이 결코 아니다.



♫ One Direction – Night Changes



정신 치료(psychotherapy)에서 두 사람 간의 관계-즉, 환자와 치료자와의 관계-는 치료의 성과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매주 약속한 시간에 같은 장소로 대변되는 안전한 환경에서 환자는 자신의 생각들과 감정에 최대한 가감 없이 닿아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치료자는 환자가 공유하는 내면세계를 평가하기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을 한다. 환자가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어서’ 지금 이 상황까지 왔고, 그래서 ‘생각을 고쳐야만 한다’는 전제를 치료자는 내려놓아야 한다. 환자가 살아온 환경을 되짚어 보면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생존과 적응에 유리한 판단일 경우가 있다. 우선 ‘환자의 입장이 되어 삶을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경험인가’를 느끼는 데에 치료자는 집중해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에게 어떤 철학이나 해결책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환자가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최대한 자신다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완벽한 정신분석적 해석(interpretation)이 환자를 정신적 고통에서 꼭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온전한 경청을 통해 자신을 점점 더 이해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경험, 그런 경험이 쌓여 치유가 찾아온다. 정신치료 과정에서 환자는 치료자에게 분노와 실망감을 느끼는 시점이 온다. 이렇게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단절된 관계도, 다시 치유될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관계에 대한 희망을 치료실 밖에서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치료실은 과거 환경적인 제약으로 환자가 놓쳤던 심리적, 정서적 발달이 일어나는 곳이다. 정신치료를 ‘생각과 감정을 재료로 이루어지는 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소아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나서 이에 대한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신치료의 목표는 환자가 내면에 존재하는 생각, 충동, 감정을 이해하고 고통 없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상태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정신치료는 실제로 환자의 뇌의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정신치료는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을 활성화시킨다. 이는 의사 결정과 감정 조절 능력의 개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신치료는 과하게 활성화된 변연계(limbic system)를 진정시킨다. 이는 불안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발달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신치료는 뇌 안의 새로운 신경세포 연결을 촉진시킨다. 이는 여러 생각을 통합해서 결과적으로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뇌가 변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신치료에 기반이 되는 정신분석 이론은 현대 사회 속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 보스턴 정신분석학회 및 연구소(BPSI)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과거 이론을 현대 사회에 맞게 지속적으로 다듬으려는 진보적인 기관 내의 분위기였다. 프로이트가 임상 활동을 하던 1900년도 초반에는 여성들의 권리가 많이 제한되던 시절이었다. 프로이트의 기록을 보면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에서 쌓인 여성 환자의 내적 갈등이 히스테리아 (현대에는 ‘기능적 신경 장애 [functional neurological disorder]’로 불림) 형태로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무의식에 ‘남성의 성기를 선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극단적인 분석을 하곤 했다. 그리고 당시 남성 우월주위 사회에서는 이러한 분석이 용인되었다. 사실 정신분석의 역사에는 인종차별을 합리화하는 분석도 존재한다. BPSI 구성원들이 과거의 무지와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와 겸허함에 감화되었다. 그곳에선 현대 사회에서 정신분석 이론이 어떻게 새롭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열정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내가 BPSI를 통해 배운 것은 정신분석 이론이나 기술(technique)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의 이론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비판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믿음,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하는 ‘현대사회 맥락에서’ 환자를 바라봐야만 한다는 큰 사고의 틀(meta cognitive frame)을 얻었다.




(나머지 내용은 오프라인 서적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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