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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5. 2018

언시생 작문 #2

제시어: 개저씨

가상의 단체가 있다는 설정으로 두어번 글을 썼다.
중년남성들의 문화지체에 대한 빡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너무 주절주절 설명이 많았던 것 같다


제시어: 개저씨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들린다. 몇 년 전 그와 처음 통화했을 때와 똑같은 컬러링이다. 그에게 다시 전화할 일이 생길 줄이야. 이게 다 김무성의 ‘노룩패스 갑질’ 때문이다. 인디펜던트에 ‘gaejeo-ssi’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더니 바이럴 미디어 쿼츠에는 영상까지 실렸다. “개와 ‘중년의 남성’을 일컫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 ‘개저씨’의 건방진 행동은~” 설명까지 적나라하다. 수신음이 들렸다.


“네, 이사님.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말하는 것만 들으면 한국인 같다.

“타일러 씨, 시대가 변하긴 했나봐요.” 

“시대는 한참 전에 변했죠. <젠틀맨 프로젝트> 때문에 전화하신 거 맞습니까?”


<젠틀맨 프로젝트>는 중년남성들이 권위주의와 무례를 벗고 품격을 입도록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몇 년 전, 타일러가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 협회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랬던 우리가 그의 도움을 찾는 날이 오고 말았다. 


나는 중남미 협회의 홍보이사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멕시코와의 우호 증진이 아니라 중년 남성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알리기보다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을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꼰대라는 표현이 갑자기 널리 쓰였을 때, 대학이나 여성 집단 안의 권위주의 문화를 들추어 꼰대라는 단어에서 중년남성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타일러의 말이 이어졌다. “억지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효과가 없다는 거 이제 아시지 않습니까.” 휴, 한숨이 나온다. 개저씨의 문제로 지적되는 성희롱이나 식당에서의 갑질은 몇 십 년간 이어져 온 중년남성의 특징이었다. 중년남성들은 변한 게 없지만 사회가 변했다. 원래 우리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희생적인 아버지를 강조하는 전략이었다. 직장이나 식당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은 개저씨지만, 우리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아버지는 존경과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절정은 2000년대 중반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가 깔린 광고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가족은 예전만큼 끈끈한 공동체가 아니다. 가장 고통 받는 세대는 중년이 아니라 청년과 노년이고,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희생적인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활용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전화를 끊기 전, 타일러가 덧붙였다. “<젠틀맨 프로젝트>는 근본적인 대안입니다. ‘아재’를 부각시키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얘기하시죠” ‘아재’는 최근에 내놓은 대응책이었다. 약간의 비하적 의미가 담겨있지만 친근함을 강조한 표현을 통해 중년남성의 이미지를 바꿔보자는 시도였다. 작년에는 ‘아재 개그’, ‘아재 파탈’ 등의 표현이 주목받으면서 조금만 더 버티면 중년남성의 이미지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던 차였다. 그런데 김무성이 그만 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제 진짜 중년남성들이 스스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 온 것일까. 나는 초조함을 안고 협회장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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