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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5. 2018

언시생 논술 #2

논제: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연출의 범위

언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처음 썼던 방송논술
다들 비슷한 사례(KBS 수달)를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쓴다면 조금 달라질까?


논제: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에서 상황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의 ‘연출’을 하게 될 경우 그 한계와 범위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라.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기초해 진실을 전달하는 장르이다. 시청자들은 다큐멘터리가 픽션과 달리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픽션의 감동이 상상력으로 빚어낸 인물과 사건에서 온다면 논픽션, 즉 다큐멘터리의 감동은 리얼리티에서 온다. 따라서 사실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사실이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의 땅값이나 시간당 최저임금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맥락과 메시지가 빠지면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SBS의 <수저와 사다리>는 땅값, 임대료, 임금수준과 같은 사실로부터 21세기 계급론이라는 진실을 이끌어냈다. 사실이라는 문으로 들어가, 진실이라는 문으로 나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아무 개입이 없는 자연 상태의 사실이 아니라 연출된 사실도 활용한다. 거미의 생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먹잇감이 거미줄에 걸리는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다. 이런 경우, 먹잇감이 거미에게 잡아먹히는 과정 전체를 다큐멘터리에 담기 위해서는 먹잇감을 거미줄 근처로 유인하는 방식의 개입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아니지만, 이미 거미줄에 걸려있는 먹잇감이 분명히 겪었을 과정이라는 점에서 진실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개입을 통해 거미의 생태에 대한 진실을 더욱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다. 


문제는 인위적인 개입이 항상 진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연출은 진실을 위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시청자에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극적이거나 매력적인 장면을 담기 위한 연출은 거짓에 불과하다. 자연 상태의 수달을 촬영한 것처럼 방영했다가 조작으로 밝혀진 KBS의 자연다큐멘터리 <수달>이 좋은 예이다. <수달>의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전달하거나, 연출된 화면을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위장했다. 조작된 내용은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전체와 KBS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다큐멘터리에서 인위적인 개입과 연출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이 방송된다면 방송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잘못된 정보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 대개 다큐멘터리 제작현장에는 PD와 메인작가, 촬영감독 등 소수에게 의사결정권이 집중되어 있다. 이들이 조작과 연출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진실을 밝힌다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임무를 잊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획, 촬영, 편집 등 제작단계마다 해당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진실이 무엇이고, 그 진실에 위배되는 연출은 없었는지 점검하는 절차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연출된 장면에 대해서는 자막을 통해 연출임을 알리는 등의 내용을 모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28문장, 147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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