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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5. 2018

언시생 논술 #5

논제: 공영방송과 젠더 이슈

세 번인가 네 번을 고쳐 쓴 글이다. 모든 글이 그렇지만 지금 봐도 불만족.
성인지적 관점을 채택한 방송 제작은 프로그램 하나를 잘 만드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걸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 읽는 제작자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너네 다 마초잖아! 개념 없어!)
쓸 수 있다면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논제: 공영방송으로서 젠더이슈를 다루는 방법론에 대하여 논하시오.


2016년 출판계의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2015년 대비 2016년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은 204% 성장했고, 2012년과 비교하면 679% 늘어났다. 2015년 SNS에 등장한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거치며 페미니즘이 문화계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한 것이다. 방송분야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엿보인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EBS의 젠더토크쇼 <까칠남녀>다. <까칠남녀>는 제모, 피임, 시선강간 등 그동안 지상파 방송에서 드러내놓고 다루지 않던 소재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공영방송으로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만 공영방송의 역할은 사회문제를 밝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젠더 이슈라면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성차별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성평등 실현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공통의 인식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까칠남녀>가 “대한민국의 젠더 감수성을 높인다”는 기획의도를 달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까칠남녀>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설득과 합의는커녕 현실에서 벌어지는 성별 갈등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까칠남녀>의 시청자 게시판을 살펴보면 90% 가까운 글이 ‘남녀갈등을 유발한다’는 의견이다. 반면에 한 평론가는 <까칠남녀>의 남성 패널 한 사람이 “여성차별이란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남성들의 마이크”라고 비판했다. 이런 대립은 젠더 이슈를 다룰 때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계적 중립을 버리고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온스타일의 <뜨거운 사이다>와 <바디 액츄얼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성 중심이라는 특성이 강조되는 순간, 남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젠더 이슈가 여성과 남성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면, 여성들만 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는 근본적 해결로 나아가기 어렵다.


더군다나 공영방송은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안에서 자연스럽게 젠더 이슈를 녹여내는 것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좋은 사례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기존 버라이어티 예능의 문법을 토대로 다수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는 포맷을 확보하고, ‘꿈계’라는 장치를 통해 새로움을 추가했다. 꿈에 대한 도전이라는 코드는 남녀노소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금요일 저녁 프라임타임에서 전통의 강자인 <나 혼자 산다>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젠더 이슈를 정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프로그램의 핵심에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비롯해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연진 사이에 서열이 존재하고, 소위 ‘망가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남성중심적인 관계망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다르다. 도전 과정에서의 신체적 고통이나 몸개그를 통한 웃음보다 멤버들 사이의 배려와 공감을 강조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문법의 차이는 대중의 시선을 변화시켰다. <진짜 사나이>에서 ‘최악의 여군’이라 낙인 찍혔던 제시는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는 대형면허에 도전하는 ‘센 언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 특정한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 등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것을 성인지적 관점이라고 한다. 최근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요 채널의 시청률 상위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성역할 고정관념 강화, 외모지상주의 조장,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내용이 상당수 발견됐다. 이런 결과는 방송프로그램 제작 과정에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 공영방송에게 요구되는 것은 젠더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제작 전반에 성인지적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다. ‘여성은 주체적이다’라는 말 한마디가 몇 차례 방송을 타는 것보다, 실제로 주체적인 서사를 구축해가는 여성 캐릭터가 많은 시청자가 보는 프로그램에 등장할 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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